맛도 있고 멋도 있다. 재미와 익살을 넘어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단 이야기다.
지난 4일부터 서울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아트’는 슬쩍 보면 세 남자의 우정을 다룬 코미디 같다. 서울 청담동의 잘 나가는 피부과 의사 수현이 무려 2억8000만원이나 주고 구입한 그림을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이 극의 골자다.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치사하게.
90분 동안 펼쳐지는 아저씨들의 신경전에는 끝내 엉성한 몸싸움까지 동원된다. 가당치도 않은 이단 옆차기와 뒷발길질, 허술한 멱살잡이까지. 익숙한 장면이다.
지방 공과대학 교수인 규태에게 수현의 그림은 하얀 캔버스일 뿐이다. 그런데도 갖은 예술 사조를 운운하며 뻐기는 수현이 얄밉다. 이들의 오랜 친구인 덕수는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하는 인물. 그는 어쩌다 규태와 수현의 싸움에 말려들어 쩔쩔 맨다. 물론 덕수의 속마음도 규태와 같긴 하다. 문방구 주인인 자신의 처지에선 그림값만한 전셋집 구하는 것도 버거우니 말이다.
이 작품이 관객에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면죄부 아래-거칠게 표현하자면-개나 소나 예술품이 돼 버리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툭 하면 ‘우정’ 운운하는 남자들의 그것이 정말로 영속적이고 순수한 것인가.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지겹도록 싸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수현에게선 원칙과 위상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을, 규태에게선 근대의 권위를 확 까발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구석을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물론 해체주의니 뭐니 하는 용어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땐 아는 만큼만 귀담아 듣고 두 번째 질문에 초점을 맞춰 감상하면 된다.
자격지심과 우월감이 뒤엉킨 자리에 술까지 더해지면서 극은 종반부로 향한다. 지루한 싸움에 치를 떨던 수현이 벌떡 일어나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승자는 가려진다. 힘껏 쳐든 손. 2억8000만원짜리 그림에 낙서를 하려는 순간이다.
두 친구는 사색이 돼 비명을 토한다. ‘판때기’요 ‘널빤지’라며 비웃던 그들이지만 실제로는 그 가치를 기억하고 곱씹었던 게다.
서로 옳다고 우겨댄 시간이 민망하게 느껴지지만 다같이 망가지는 그때, 남자들의 우정은 제자리를 찾는다.
때론 몇 발짝 떨어져야 더 잘 보이는 법, 남자들의 이야기를 퍽 근사하게 그려낸 이 작품의 산모는 놀랍게도 여류 작가다. 프랑스 출신의 야스미나 레자가 1994년 발표해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아트’는 한국 남자들의 우정이란 걸쭉한 양념에 비벼져 감칠맛을 뽐낸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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