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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대차대조표 불황’ 한국도 전염



자산가치 하락과 함께 유동성 위기로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오르고 가계 부실이 가시화되면서 한국판 ‘대차대조표불황(balance sheet recession)’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8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주식, 펀드, 부동산 등 1년 전 올랐던 자산가치가 빠르게 붕괴되면서 한국에서도 이미 진행 중인 미국식 ‘가계발 대차대조표불황이 진입 국면에 있다”고 밝혔다.

대차대조표불황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강조해 주목받은 불황 개념으로 자산가격의 하락으로 기업이나 가계의 부채 부담이 커졌을 경우 발생한다. 즉 불황에 어려움을 겪는 경제 주체는 채무 과다 상태를 해소키 위해 차입금을 최우선적으로 상환하기 때문에 유동성을 풀어도 소비나 투자의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은 해외조사실 정훈식 부국장은 “일본이 기업발 ‘대차대조표불황’으로 장기 침체를 경험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밝혔다. 우리도 ‘재고 증가→소득 하락→소비 위축→경기 침체→재고 감소→경기 반등’ 등의 통상적인 경기순환 패턴이 ‘자산가치 하락→부채 증가→소비 악화→내수 침체→경기 위축→물가 하락’ 등 비정상적인 경기 패턴으로 왜곡돼 대차대조표불황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기업들의 ‘유동성 사재기’만 극심할 뿐 돈이 돌지 않고 고금리로 기업과 가계의 부채만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연구위원은 “한국은 가계부채가 워낙 높은 데다 금리 상승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 최근 부동산 버블 붕괴와 맞물려 대차대조표불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가 지난해 1.48배로 지난 97년(0.80배)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해 가계발 대차대조표불황 가능성을 높게 했다.

또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도 “금융자산보다는 실물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대차대조표불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가계발 대차대조표불황과 함께 유동성 위기로 인해 과거 일본 기업들이 90년대 ‘잃어버린 10년’ 기간에 겪었던 기업발 대차대조표불황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는데 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오랫동안 잠재된 가계쪽 부실이 있는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로 기업이 타격을 받아 실업이 늘어나면 그 부실고리가 가계로 다시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 연구원은 또 “우리나라는 유동성위기에 취약해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 등 양쪽에서 모두 부실 위협이 있다”며 “대차대조표불황이 올 경우 가계보다 기업에서 먼저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powerzanic@fnnews.com 안대규기자

■용어설명//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자산가치 하락으로 부채비중이 커지고 가계와 기업이 채무 초과 상태를 해소하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기 때문에 유동성을 공급해도 소비나 투자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