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두툼한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었다.
“저 매력 있어요.”
그러곤 씩 웃었다. 이 사이에 양상추 조각을 대롱대롱 매단 채. 당혹스러움도 잠시, 이게 진짜 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정겹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씨(42)는 요즘 서울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사람, 아니 바빠 보이는 사람이다. ‘먹기 싫은’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면서 연습 시간을 재촉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연극 ‘마리화나’랑 오는 15일에 종영하는 ‘강철왕’, 이제 막 시작한 ‘삼도봉 美스토리’가 몰리면서 엄청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나 봐요.”
사실 그를 만나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오는 10월 14일부터 보름간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남한산성’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김훈 원작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뮤지컬 대본으로 옮기는 중책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소설 ‘남한산성’은 47일간 성안에 갇힌 무기력한 왕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이 마흔 넘어서는 각색을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또 이렇게 하게 되네요.”
그는 원래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공연이 진행되는 기간에도 대사를 수정하고 극을 다듬는 버릇 탓이다. 과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등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내세우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연극은 제가 고치고 싶은 만큼 고칠 수 있지만 뮤지컬은 작곡과 안무까지 모조리 바뀌어야 하니 그런 게 안 통하죠.”
그가 ‘남한산성’ 각색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작가 특유의 문체와 선비의 어법을 고스란히 살려내는 것이다. 각색 제의를 받은 뒤 소설을 읽은 그는 책장을 덮은 뒤 한동안 경외감에 휩싸였다고 말한다.
꼼꼼하고 고집 있기로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무대로 옮기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의외로’ 이 문제가 쉽게 풀렸다고 전한다.
“원작자께서 오히려 짐을 덜어줬죠. 주전파와 주화파, 어느 한쪽도 선, 혹은 악을 몰고가지 말라. 딱 이거 하나였어요. 작품의 주제만 잘 살리면 나머지는 온전히 무대 화법에 맡기신다고요.”
1999년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을 시작으로 2000년 국립극장 창작공모 당선(떠도는 자, 정여립), 2001년 옥랑희곡상 수상(천적공존기)까지 그는 퍽 인정받는 극작가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다지만 요즘 대학로에서 ‘고선웅표 연극’은 부러움과 질시를 동시에 받는 흥행작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을 비우고’ 뮤지컬 제작에 임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연극 무대에서 모조리 토해냈으니 뮤지컬 무대에선 자세를 낮춰도 불만이 없는 걸까.
“대사에는 의미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의 리듬, 운율이 맛깔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구나 각운을 맞추기 위해 대사 한 줄 쓰는데 다섯 시간을 소요한 적이 있으니까요. ‘남한산성’ 역시 색다른 경험이자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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