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스트리트] 기미상궁

[fn스트리트] 기미상궁
영조비 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의 일부분. 중앙에 보행 나인, 상궁, 향을 든 차비가 있고, 좌우 열에 귀유치, 시녀 등이 양쪽에 서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궁과 관련된 여성의 벼슬을 내명부와 외명부로 나눴다. 궁에 살면서 왕명을 받는 궁녀를 내명부라 했다. 궁궐 밖에 거주하는 종친이나 사대부의 아내는 외명부에 올렸는데 정1품 정경부인부터 종9품 유인까지 뒀다. 궁녀란 궁중여관의 줄임말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왕비의 지휘를 받는 내명부는 정1품부터 종4품까지 후궁을 이른다. 빈-귀인-소의-숙의-소용-숙용-소원-숙원의 8품계로 세분됐다.

후궁을 제외한 나머지 상궁과 시녀를 궁녀라고 칭했다. 정5품에서 종9품까지 상궁-상복-상침-상정-전빈-전설-전찬-전등-주궁-주치 등의 품계를 받았다. 보통 5~6품을 상궁, 7~9품은 나인이라고 보면 된다. 비자, 방자, 무수리 같은 품계 없이 허드렛일을 하는 견습나인도 즐비했다. 상궁은 '마마님', 나인은 '항아님'또는 '생각시'라고 불렀다. 중앙관직의 지평이나 교리가 정5품이고, 지방관아의 사또인 현령이 종5품이었으니, 상궁은 상당한 고위직이었다.

정5품 제조상궁이 궁녀의 최상위 직책이다. 입궁한 지 30년이 지나야 오를 수 있었다. 제조상궁을 보통 '큰방상궁(대전상궁)'이라고 했다. 700여명에 이르는 궁녀의 수장이자 내명부의 재상 격이었다. 어명을 받들고, 내전의 궂은 대소사를 도맡았다. 재상들과 의남매를 맺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왕이 수라상을 받으면 제조상궁이 먼저 음식 맛을 봤다. 이것을 '기미(氣味)를 본다'고 하는데 독이 들었는지 가려내는 일이었다.

오는 26일로 예정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접종' 여부가 쟁점화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인가"라고 반발하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국민은 대통령의 기미상궁이 아니다"라며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조선 최고의 전문직 여성 제조상궁을 기미상궁으로 깎아내리고, 국민을 왕조시대의 기미상궁에 빗댄 것은 유감이다. 다만 하 의원의 본뜻은 이해한다. 백신 불안감을 잠재울 대통령의 선제적 대응을 기대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