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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숙현 사건 뒤 지자체 방치 있었다…관리인력 없어"

[파이낸셜뉴스]
"故 최숙현 사건 뒤 지자체 방치 있었다…관리인력 없어"
지도자와 동료의 폭행 및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는 경북의 한 사찰 추모관에 잠들어 있다. /사진=뉴스1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극단적 선택 속에는 해당 지자체 등의 방치가 있었던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트라이애슬론 팀 관리를 사실상 감독에게 일임하고, 구타 사건이 일어나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도 최 선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고 인권위는 봤다.

■최숙현 피해 '방치'…죽음 불렀다
인권위는 지난해 6월 경주시청 팀에서 가혹행위로 사망한 최 선수 관련 진정사건을 조사하고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가 팀 관리감독과 선수보호에 필요한 제도·절차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팀 운영 전반을 감독 개인에게만 맡겨 왔다"며 "직장운동부가 감독과 일부 선수들 중심으로 운영되게끔 방치했다"고 밝혔다.

최 선수는 지난해 6월 25일, 세상을 등지기 하루 전 인권위에 관련 진정을 제출했다. 관련 사건이 수사기관 등에서 조사 중인 점을 감안해,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최 선수의 피해가 2017년부터 지속된 이유와 은폐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나 관행 등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진행해 왔다.

인권위 조사 결과, 경주시와 운영을 위탁받은 경주시체육회는 사실상 직장운동부를 감독과 일부 선수들 중심으로 운영되게끔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훈련, 선수 처우 실태, 예산 사용 등에 대해서는 적절히 감독하지 않았으며, 팀 운영도 감독의 의사결정에 맡겨온 것으로 조사됐다.

지자체와 체육회의 방치가 최 선수의 폭행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감독이 부당하게 지원금을 수령하고 △허가하지 않은 물리치료사가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일부 선수를 위해 타 선수들이 희생하는 운동부 내 행태를 지자체는 적발할 수 없었다.

실제 경주시체육회는 운동부 운영 전문 인력을 갖추지 않고, 예산도 각 팀이 제출하는 서류에만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편성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의 재계약과 연봉 평가도 대부분 팀 감독의 판단에만 의존해 온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인권위는 이같은 행태가 성적 중심으로만 직장운동부를 운영하는 관행 때문으로 봤다. 인권위 측은 "성적 중심으로만 전문체육을 육성하는 관행은 오랜 기간 계속돼왔다"며 "관행의 전환에는 많은 시간과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승리지상주의 관행 지속"
이에 인권위는 경주시장에게 관련 내규를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운영 점검을 위한 전담 인력을 확보할 것 등을 권고했다. 경주시체육회장에게는 지자체와 협의해 직장운동부 재정·인사·훈련 상황 등을 점검하고, 지도자 평가에 점검결과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한편 인권위는 최근 경주시가 여자 트라이애슬론 팀을 사실상 해체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검·경 등의 조사에서 피해사실을 진술한 선수들이 다른 지방자치단체 트라이애슬론 팀에서 계약해지 되는 등 운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이번 사건과 연계된 추가적인 피해가 계속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대구지방법원은 지난 1월 가해자인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 운동처방사 안주현(46)에게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김규봉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42)은 징역 7년, 주장 장윤정 선수(32)는 징역 4년, 김도환 선수(26)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각각 선고됐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