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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술파티·방역방해···‘부조리 백화점’된 공군, 답 있나

군 내 은폐 관습..피해자 사망 뒤에야 부랴부랴
참모총장 사퇴일에 간부 방역지침 위반, 장교들 술파티
 “국가 권력에 의한 타살” “시스템 이해되지 않아”

성추행·술파티·방역방해···‘부조리 백화점’된 공군, 답 있나
서욱 국방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공군 성폭력 관련 긴급 현안보고를 준비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성추행·술파티·방역방해···‘부조리 백화점’된 공군, 답 있나
서욱 국방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상화 공군참모차장, 서욱 장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여성 부사관의 성추행 피해 호소를 묵살해 극단적 선택까지 내몬 공군에서 사건·사고가 끊임 없이 터지고 있다. 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날, 간부가 술집과 PC방을 갔다가 코로나19에 확진되는가 하면 장교 12명이 모여 자축 술파티를 열다 적발되기도 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사망 사건 18일 만에 국민에게 사죄했지만, 연잇는 비상식적 기강 해이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서 장관은 9일 오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 등으로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다. 국방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에서 본 사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회유·은폐 정황과 2차 가해를 포함해 낱낱이 수사해 엄정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서 장관이 바짝 몸을 낮추고 개선 약속을 공언했지만, 개별 사건 해결만으로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기 충분치 않아 보인다. 또 근본적으로 곪은 부분까지 도려내지 않으면 또 다시 유사한 일들이 재발하리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성추행·술파티·방역방해···‘부조리 백화점’된 공군, 답 있나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스1
묻고, 묻고 묻은 軍...총체적 난국
선임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이모 중사 사건이 시작이었다. 공군 수사당국이 해당 사건을 뭉갠 정황들, 가해자가 범행 후 저지른 추가 만행들이 속속 드러났다.

군은 사건 내막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지난 2일 부랴부랴 성추행 가해자인 장모 중사를 구속했다.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지 12일 만이었다. 사건 관련자 2명도 보직해임 했지만,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은 면치 못 했다.

이 중사 담당 국선변호사가 단 한 차례도 면담을 실시하지 않은 사실 역시 파악됐다. 몇 차례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가 전부였다. 게다가 해당 국선변호사는 이 중사 인적 사항 및 사진 등을 외부 유출하는 등 2차 가해를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대책을 쏟아냈다. 국방부는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4일에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제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압수수색하는 등 기민한 모습을 보였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 제20전투비행단, 제15비행단에 대한 감사에도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진상 규명’, ‘철저 조사’, ‘엄중 조치’ 등 피해자는 생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표현들이 남발됐다.

성추행·술파티·방역방해···‘부조리 백화점’된 공군, 답 있나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가해자인 공군 장모 중사가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뿌리 깊은 ‘문화’인가
결국 지난 4일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수장의 탈각만으로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당일 한 공군 간부는 방역지침을 위반하고 술집과 피시방을 찾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또 같은 날 경남 사천 제3훈련비행단 소속 공군 장교 12명은 부대 휴게실에서 음주 회식을 벌였다. 첫 단독비행을 무사히 마쳐 자축한다는 명분이었다.

과거 부조리까지 밝혀졌다. 지난 5일 공군 여군 장교가 2년 전 성추행 피해 신고 후 되레 보복성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지난 2019년 피해자인 B대위가 A대령 지인으로부터 차량 안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었고, 이를 신고하자 조사는커녕 오히려 근무평정에서 최하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국방부는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공군본부 소속 군법무관의 180차례에 걸친 근무지 이탈 및 횡령 의혹도 불거졌다.

이날 국방위에서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이 중사 사망을 두고 “국가 권력에 의한 타살”이라고 규정했고, 서 장관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인정했다. 같은 당 이채익 의원 역시 “국방부 장관께서 바로 그만둬야 한다. 그동안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라고 질책했다.

아울러 이 의원은 “3월 2일 사건이 발생했는데 어떻게 이런 보고 체계를 이해할 수 있나”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서 장관이 이 중사가 지난 5월 22일 숨진 채 발견된 후 이틀 뒤인 24일 ‘단순 사망사고’로, 그 다음 날인 25일에야 ‘성추행 관련 사망’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특히 20비행단장은 이 사건을 3월 4일 인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공군이 초기에 이번 사건을 덮으려다 서 장관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고, 피해자가 생명을 잃는 사태로 비화된 셈이다.

여기서 드러나 듯 무능 혹은 의도적 은폐로 얼룩진 군 내 관행과 시스템을 걷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군이 다짐한 ‘성역 없는 수사’는 인물을 넘어 시스템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