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다른 고객이 마트 자율포장대에 두고 간 사과봉지를 자신이 구입한 것으로 착각해 가져간 사람에 대해 검찰이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을 헌법재판소가 취소했다.
헌재는 A씨가 검찰이 자신을 절도죄로 기소유예 처분한 것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기소유예는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B씨는 2019년 10월 1일 오후 7시 56분께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자율 포장대 위에서 구입한 물품을 빈 박스에 넣은 다음 사과 1봉지만은 그대로 둔 채 귀가했다. A씨 역시 같은 날 이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오후 7시 58분께 계산을 마친 뒤 자율 포장대로 이동한 다음 구입한 식료품을 빈 박스에 담으면서 B씨가 깜빡해 놓고 간 사과봉지도 함께 집어넣은 채 귀가했다.
B씨는 집에 도착한 직후 사과봉지를 마트에 놓고 온 것을 알게 됐고 다음 날 경찰에 도난신고를 했다. 이후 경찰은 마트에 대한 회원정보조회 결과 등을 바탕으로 A씨에게 연락을 취했고, 곧바로 출석한 A씨로부터 사과봉지를 임의제출 받았다.
이후 검찰은 절도 혐의를 유죄로 보고 A씨에게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기소유예 처분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취소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수단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처분이다. 형식상 불기소처분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소원을 통해 불복할 수 있다.
헌재는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면밀히 살펴보면 청구인이 범행을 자백했거나 절도의 고의 내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런 판단의 근거로 A씨가 경찰 조사에서 ‘불면증 증세로 깜깜하면서 누가 놓고 간 것인가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가져 온 것인가요’라며 오히려 당시 상황을 경찰관에게 되묻거나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몸이 불편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진술한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제외할 경우 청구인에게 절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인 폐쇄회로 TV(CCTV) 캡처사진에서 청구인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둘러본다거나, 사과봉지를 유심히 살펴보거나 자신이 구입한 사과와 비교해 보는 등 청구인에게 미필적으로라도 절도의 고의를 인정할 사정은 찾아 볼 수 없다”며 “검찰이 ‘순간적 욕심’에 따라 범행을 일으켰다면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경찰의 수사기록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탓에 청구인의 내심의 의사를 막연히 확장 해석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헌재 관계자는 “절도죄 성립에 필요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의 절도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는 성질상 그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이나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해 입증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결정”이라며 “이 사건에 나타난 간접사실과 정황사실에 비춰 청구인에게는 절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