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옆자리에 여성 승객이 잠을 든 사이 음란동영상을 장시간 시청하며 자위행위를 한 경우 공연음란죄로 볼 수 있을까. 음란행위를 현실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음란행위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음란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이 인정된다.
하급심은 이를 근거로 여성 승객이 버스에서 잠이 들었더라도 음란행위를 한 시간과 해당 남성과의 거리를 볼 때 언제라도 인식할 수 있는 상태였다며 공연음란죄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남성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변경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으며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미뤄지게 됐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1월 서울에서 경남 진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음란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던 중 옆 자리에 앉은 여성 B씨의 허벅지를 만져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음란행위는 무려 3시간 가까이 지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1심은 강제추행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기소 당시 적용하지 않았던 공연음란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주된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추가하는 범죄사실)로 추가하는 공소장변경 허가 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2심은 이를 받아들여 조씨의 공연음란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자위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A씨의 팔이 B씨의 신체에 닿기도 했다”며 “B씨는 버스에서 잠이 들었던 것으로 보이나 범행시간, 피고인과의 거리 등에 비춰 A씨가 음란영상을 시청하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과정에서 검사가 공소장변경 허가신청서 부본을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송달하거나 교부하지 않은 채 공판절차를 진행한 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는 자위행위 여부나 그 행위에 공연성이 있는 지가 범죄 성립에 직접 영향이 없지만, 공연음란죄는 공연히 자위행위를 한 사실이 범죄 성립요건으로, 기존 공소사실과 예비적 공소사실은 심판대상과 피고인의 방어대상이 서로 다르다”며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이나 변호인의 변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라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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