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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물 유포·협박을 받아도
낮은 인권 감수성에 대응 어려워
가해자 실형으로로 처벌 높이고
피해자 손해배상액 현실화 필요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3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갓갓 1심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 가장 중요하게 빠진 부분은 불법 촬영물의 소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뿌리 깊은 성불평등 인식을 바꾸는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6월 한국의 디지털성범죄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에 이 부분이 지적됐다.
실제 디지털성범죄는 형태와 공간만 달리할 뿐 빠르게 진화 중이다.
모든 여성을 '나를 불법촬영한 사진이 어딘가에 떠돌 수 있다'는 공포감으로 몰아넣었던 소라넷이 폐지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이후 'n번방', '지인 능욕', '딥페이크' 등 새로운 디지털성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의 뿌리인 성불평등을 바꾸지 않는 이상 디지털성범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에 접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낮은 인권 감수성이 대응 어렵게 해
낮은 인권감수성은 디지털성범죄 문제에 있어 피해자 중심 대응을 가장 어렵게 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반인권적인 상황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다 보니 오히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이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밤늦게 술을 마셨는지', '왜 거절하지 못했는지', '왜 짧은 치마를 입었는지' 따져 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은 끊임 없는 유포 협박에 노출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이은의 변호사는 "가해자가 자신의 피해촬영물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피해촬영물 유포를 막기 위해 가해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것들도 유포 협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디지털기술이 변화·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이를 따라가는 사법기관의 속도는 지나치게 느리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인권 감수성이 낮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화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 부분이 바뀌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왜 이런 협박에 무너지는지, 왜 신고를 못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석희진 탁틴내일 활동가는 "미성년자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받는 협박이 부모님께 알리겠다, 지인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이라며 "상담소 선생님이나 변호사를 선임하고 가더라도 법적 보호자에게 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자 중 24.2%는 10대였다.
■디지털성범죄 피해 범위 확대해야
결국 디지털성범죄에서의 피해자 중심 대응은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디지털성범죄의 개념과 피해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모아진다.
미국은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전제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해외 주요국의 제도적 대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호주는 성착취물을 '이미지 기반 학대'로 비교적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미지 기반 학대는 성행위 중인 경우, 성적인 태도 또는 성적인 맥락에 있는 경우, 포토샵 등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된 것도 포함한다.
이 변호사는 "디지털성범죄로 망가진 피해자의 삶은 평생 복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며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어떻게 입는지에 대해 다른 성범죄 사건과 비교하는 등에 대한 연구용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국가형벌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며, 피해자가 피해 회복을 위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다시 민사로 진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형사단계에서 배상명령신청 등을 할 수 있도록 개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주는 가해자와 SNS 사업자가 이미지 기반 확대 관련 게시물 삭제 통지를 받고도 48시간 이내에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개인과 기업에 각각 최대 8600만원, 4억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온라인 안전강화법'도 시행 중이다.
김 변호사는 또 "단기로라도 실형선고를 해 디지털성범죄로 실형선고가 나올 수 있다는 형벌로서의 위화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경찰 수사단계에서도 유포가능성이 원천차단될 수 있도록 압수수색을 통해 범행 관련 일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진화하는 디지털성범죄 대응을 위해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성범죄를 수사하는 위장 수사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 관계자는 "n번방 사건 이후 위장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진화하는 디지털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수사 기법"이라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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