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가상자산 거래소 컨설팅..내년 과세 강행 의지
차익거래 투자 사실상 불가능..'갈라파고스' 심화 우려
"1년간 유예하고 제대로된 과세시스템 갖추자" 목소리
거래소 "가상자산 시스템상 불가능..비상식적 과세안"
[파이낸셜뉴스] 내년부터 가상자산 투자수익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일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과세당국이 취득가 입증이 어려운 가상자산에 대해 취득가를 '0원'으로 추정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다시 반발을 사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과세 일정만 밀어붙이고 있다"며 "준비 안된 과세정책으로 인해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자칫 세금폭탄을 맞게 되고,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될 우려가 있다"며 과세정책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입증안되는 가상자산 취득가격은 공짜?
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달 28개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상으로 가상자산 거래자료 제출 관련 컨설팅을 진행, 그간 논란의 대상이 돼온 취득가를 증명할 수 없는 가상자산의 취득가를 '0원'으로 추정한다는 가이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최근 28개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상으로 가상자산 거래자료 제출 관련 컨설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컨설팅에서 서울국세청은 가상자산 거래소들을 상대로 과세를 위한 가상자산 취득원가 정보를 공유하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fnDB
가상자산 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은 투자자가 가상자산을 매각한 뒤 취득가격을 뺀 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데, 투자자 스스로 취득가격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공짜로 취득한 것으로 치겠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4000원에 산 가상자산을 1만원에 팔았을 경우 차액인 6000원이 과세대상이 되는데, 해외 거래소에서 구입해 국내 거래소로 전송한 가상자산 등 취득가 입증을 위한 자료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취득가를 '0원'으로 간주해 매각가 1만원을 그대로 과세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투자자가 자칫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거래소가 취득가를 0원으로 신고하더라도 투자자가 취득가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할 경우 실 취득가를 기준으로 과세가 진행된다"고 해명했다.
특히 거래소간의 가상자산 가격차이를 노려 투자하는 차액투자자처럼 하루 수십번의 거래를 하는 경우나, 국내외 거래소를 오가며 가상자산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서 매입하고, 여러 번에 걸쳐 매각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원가 입증이 쉽지 않다.
■전문가·정치권 "정부, 과세준비 안됐다"
게다가 해외 거래소가 탈중앙화된 형태라면 적극적으로 원가입증을 위한 자료 협조를 해줄지도 미지수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채굴을 했던 해외 거래소에서 구매했던 취득원가가 분명히 있을텐데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취득원가를 0으로 하는 것은 투자자를 위한 의사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외 거래소간에 가상자산을 전송하는 사례가 많다거나 탈중앙화 거래소가 존재한다는 등 가상자산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과세 방침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동건 한밭대 교수는 "국세청의 취지는 본인이 알아서 취득원가를 증명하라는 것"이라며 "과세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놔야 하는데 너무 급하게 하다보니 제대로 준비를 못한 것 같다"고 평했다.
국세청은 이 자리에서 논란이 됐던 취득가액을 증명할 수 없는 가상자산의 취득원가를 '0원'으로 추정한다는 가이드를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해외 거래소에서 구매한 사람은 취득원가가 분명히 있을텐데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취득원가를 0으로 하는 것은 일반 투자자를 위한 의사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평했다./사진=뉴스1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 노웅래 의원은 "양도소득세를 매기기 위해서는 매입원가를 산정하는 것이 필수인데 거래소 간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상자산의 특성상 이를 정확히 산정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국내가 아닌 해외 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해외 거래소가 대한민국 국세청에 정확한 정보를 직접 제공할 의무도 없어 과세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가상자산 과세현안 공청회 개최
과세안을 밀어붙일 경우 차익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심각하게 위축돼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한국 가상자산 가격이 해외에 비해 높게 형성이 되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거래소간 가격격차를 노리는 차익거래가 위축되다보니 국내 시장 가격의 왜곡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세당국이 거래소끼리 가상자산 과세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한 것에 대한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거래소들은 취득원가 정보 공유 시스템을 마련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입장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별로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고 수수료 체계도 각양각색인데 28개 거래소를 모두 모아놓고 컨설팅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같은 비판에 대해 "이틀에 걸쳐 컨설팅을 진행했고, 비슷한 입장에 있는 거래소끼리 가능한 모아서 그룹으로 컨설팅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가상자산 과세 밀어붙이기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오는 3일 '가상자산 과세 현안 점검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가상자산 과세 준비 현황과 과세 유예 필요성, 가상자산을 기타소득이 아니라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해야 할 필요성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정부의 가상자산 과세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세를 안하자는 것이 아니라 1년간 유예를 통해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후 시행하자는 것인데도, 정부가 세금을 거둘 능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너무 무리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뉴스1
bawu@fnnews.com 정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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