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한국을 방문한 가운데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도 SNS를 통해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4일 "펠로시 하원 의장의 방한 일정이 대통령의 휴가 일정과 겹쳤기 때문에 대통령을 만나는 일정은 잡지 않았다"며 "대신 국회를 방문해 김진표 의장과 만나 오찬을 한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다. 박 장관은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캄보디아로 출국한 상태다.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방문해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를 만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펠로시 의장은 2015년 민주당 원내대표로 방한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정의화 국회의장 등을 만난 바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대만 차이잉원 총통을 비롯해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 말레이시아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총리 등 다른 나라에선 정상들을 만났다. 5일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날 예정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두고 외교적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휴가 중 김건희 여사와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관람했고, 이런 일정이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됐던 터라 "'휴가 중'이어서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는 설명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을 고려한 '외교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중(對中) 관계 역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괜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연극 공연에는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으며 인근 식당에서 배우들과 식사를 하며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을 청취하고 배우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실 제공
한편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오늘 아침까지 보도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을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며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외교안보는 의회가 초당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라면서 "국방비 등 예산에 있어서도 의회의 힘이 막강하며 한미동맹에도 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검토했을 때 '주한미군 유지 결의'를 한 것도 미 의회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의회의 대표인 하원 의장은 워싱턴 권력에서는 사실상 2인자"라면서 "그런 중요한 인물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서울에 있는 대통령이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라고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은 "한미동맹을 강조했던 새 정부 초반부터 오락가락 외교는 우리 국가이익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서 펠로시 의장을 만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연합뉴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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