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역대급 6천명 설문조사 착수
사업비만 4.6억원 투입
9월 정기국회 입법 목표로 보완책 마련 중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26일 서울 원효대교 북단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주69시간제 폐기,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로 개편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묻는 작업에 본격 착수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설문조사 문항 등에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골몰하는 모양새다. 설문조사 문항이 편향될 경우 만약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긍정적인 설문 결과가 나오더라도 신뢰성을 두고 다른 논란이 만들어 질 수 있어서다.
다만 최근 근로시간에 대한 다른 여론조사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등은 여전히 우리나라가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결과를 담고 있어 정부의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설문조사에만 예산 4.6억 투입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한 대국민 설문조사 및 FGI(표적집단면접법)를 수행할 위탁업체를 모집 중이다. 5월10일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총 사업예산만 4억6000만원(설문조사 4억1000만원, FGI 5000만원)에 달한다. 설문조사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대규모 설문조사로 노사관계 개혁방안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최초로 하는 최대 규모 조사가 될 것" 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설문조사는 2개 과제로 진행한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한 인식조사, 노·사를 대상으로 한 근로시간 제도 현황 및 정책 수요조사 등이다.
설문조사는 오는 8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조사결과에 따라 고용부는 추진 중인 '주 최대 69시간' 근로 개편안의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9월 정기국회 입법 논의가 목표이다.
■"희망 근무시간은 주 37시간"
앞서 국민들은 다른 여론조사에서 현 근무시간 제도도 장시간 근무로 생각한다는 인식을 보인 바 있다. 정부의 이번 제도 개편안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9월20일~10월7일 전국 만 19~59세 2만2000명(취업자 1만7510명·비취업자 44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진행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변수정 외) 결과에 따르면 취업자가 1주일에 희망하는 일하는 시간은 36.70시간이다. 상용근로자만 따지면 37.63시간 근무를 희망했다.
임시·일용 근로자의 경우 사정에 따라 짧은 근무 시간을 선호하는 경우가 포함돼 희망 근무 시간이 32.36시간으로 더 짧았다.
특히 희망 근무 시간은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줄었다. 20대 이하(19~29세)는 34.92시간, 30대는 36.32시간이라고 답했다. 40대는 37.11시간, 50대는 37.91시간으로 상대적으로 길었다.
취업자가 실제로 근무하는 시간은 41시간으로, 현실과 희망 사이에는 4시간 넘게 차이가 났다.
근무시간이 길수록 희망 근무시간도 긴 편이었지만 주52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만 따져봐도 희망 근무시간은 평균 44.17시간으로 45시간을 넘지 않았다.
보고서는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문화의 확산 등으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국가"라며 "희망하는 근로시간을 고려하면 일하는 시간에 대한 관리가 꾸준히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고용부가 약 2년 전 실시한 주52시간제 시행 관련 설문에서도 제도 시행에 대한 긍정적 여론과 '워라밸(일 생활 균형)'을 중요시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고용부는 2021년 11월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해 전국 만 19세 이상 80세 미만 일반 국민 1300명을 대상으로 '주 최대 52시간제'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조사 결과 응답자 71.0%가 주52시간제 시행이 '잘한 일'이라고 답했다. '잘못한 일'이란 응답은 19.3%로 조사됐다. 임금근로자의 경우 77.8%가 '잘한 일', 15.7%가 '잘못한 일'이라고 응답했다.
국민 70.3%는 '정시 퇴근해 여가를 즐기겠다'고 답해 '초과근무해 임금을 더 받겠다'는 의견(28.7%)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임금근로자의 경우 76.1%가 '정시퇴근해서 여가를 즐기겠다'고 답했다.
■고용장관 "주60시간 이상은 힘들듯"
이처럼 국민들이 여론조사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열망하는 것은 한국의 노동시간이 여전히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경제 동향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36개국 중 4번째로 많다. OECD 평균은 1716시간이다.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긴 국가는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칠레(1916시간) 등 3개국이다. 모두 중남미 국가들이다.
정책처는 한국과 OECD 평균 노동시간 격차가 2008년 440시간에서 2021년 199시간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크다고 지적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 수준이 되려면 주 평균 노동시간을 3.8시간 줄여야 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 장관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편안이 주60시간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속단은 어렵고 여론조사 결과를 일단 봐야 할 것 같은데 희박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6일 주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과로사 조장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윤석열 대통령은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 지시를 내렸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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