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입 소수인종 우대정책(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가운데, 학생의 사회-경제적 약점을 수치화한 이른바 ’역경 점수‘를 입시에 반영하고 있는 미국의 한 의과대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역경 점수’ 도입해 신입생 다양성 확보한 UC데이비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명문 대학교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UC데이비스) 의과대학은 의대 신입생 선발 과정에 학점, 시험 점수, 추천서, 자기소개서, 면접 뿐 아니라 학과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사회-경제적 약점 척도(Socio-economic disadvantage scale·SED)’를 참고하고 있다.
SED의 평가항목으로는 △가구 소득 △부모의 대학 진학 여부 △거주 지역 △가족 부양 여부 등이 있으며, 지원자들은 0점부터 99점까지의 범위 안에서 점수를 받게 된다. 지원 전에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왔을수록, 즉 더 많은 역경을 겪었을 수록 높은 가산점을 받는 것이다.
매체는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입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위헌이라고 선언한 가운데 이른바 ‘역경 점수(Adversity Score)’라고 불리는 해당 항목이 UC데이비스를 미국에서 가장 다양성이 높은 학교로 만들었다고 평했으며, 다른 의과대학들에게도 학과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역경 점수와 같은 척도가 다양성을 이룰 수 있는 “새 기준”이라고 평가했으며,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는 최근 20개가 넘는 학교에서 해당 척도에 대한 문의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어퍼머티브 액션의 위헌 판결 이후 역경 점수를 도입하는 것에 관해 “더 어려운 도전을 겪어본 아이들은 더 많은 기개(grit)와 투지(determination)를 가지고 있다”며 “이것은 대학들이 입시에서 반영해야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美 의대 진학은 부의 대물림 수단”
NYT는 미국의 의과대학들의 소속 학생들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부 입시와 마찬가지로 ‘부’와 ‘인맥’이 의과대학 입학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의 의과대학 재학생 절반 이상의 가구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정에서 나고 자란 반면, 4%만이 가구 소득 하위 20% 가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과대학 입학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직업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부모의 직업이 의사인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녀가 의사가 될 확률이 24배 높다.
인종 역시 의과대학 진학에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미국인 전체의 13.6%가 흑인인데 반해, 미국인 의사의 6%만이 흑인이라는 지적이다.
UC데이비스 의과대학의 입학처장인 마크 헨더슨 박사는 “대부분 부유한 아이들이 의대에 진학한다”라며 “이는 의대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의 충격적인 경제적 격차”라고 지적했다.
다른 의과대학도 SED 반영할 지는 미지수
다만 NYT는 다른 의과대학들도 ‘역경 점수’를 입시 기준으로 채택할지는 미지수라고 짚었다. ‘역경 점수’를 반영하다가 자칫 미국 의과대학 진학 시험인 MCAT 점수의 비중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헨더슨 박사 역시 동료들로부터 반발을 산 적도 있다며 “(동료) 의사들은 자신의 자식들은 UC데이비스가 아닌 다른 의과대학으로 보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자녀들인 지원자들은 SED점수에서 최하점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자유주의 시민단체는 지원자의 경제적 요소를 입학 과정에 반영하는 고등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학생들을 더 뽑는다고 해서 다양한 인종의 학생이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SED와 같은 척도를 사용하는 것이 어퍼머티브 액션의 효과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의학 협회장 에렌펠드 박사는 “그러한 (SED와 같은) 도구들이 쓸모 잇는 것은 분명하나, (어퍼머티브 액션과 같은) 인종의식적(race-conscious) 입학 제도가 이뤘던 성과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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