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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만 보호한 '착한 조례'… 결국 공교육 망친 주범으로 [학생인권 아래 추락한 교권 (中)]

존폐 기로 선 학생인권조례
교육당국 "근본적인 재검토" 추진
확대해석 등 오남용 문제 꾸준
전문가 "교사 리더십과 균형을"

학생만 보호한 '착한 조례'… 결국 공교육 망친 주범으로 [학생인권 아래 추락한 교권 (中)]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실 창문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꽃다발이 걸려있다. 뉴스1
#. 인천의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33)는 최근 수업시간에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을 격리시켰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가해학생 학부모가 "아이가 차별당했다"며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김씨는 "피해학생이 위험해서 한 조치까지 학생인권조례를 들먹이며 교사의 정당한 행위에 족쇄를 채우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결국 탈모증상을 겪어 2학기에 휴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천시 학생인권조례인 '학교구성원 인권 증진 조례' 5조는 학교 구성원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담고 있다.

최근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학생인권조례의 존폐를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교사들의 교권이 추락하게 된 배경에는 학생 권리를 세세하게 다룬 학생인권조례가 원인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각 지자체의 교육청에서 만들어 시행하는 조례는 학생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만들어졌지만 상황에 따라 학부모 측이 확대해석할 경우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13년 만에 시험대 선 학생인권조례

24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에서 처음 제정된 후 17개 시도 교육청 중 서울을 비롯한 6개 교육청에서 제정돼 시행 중이다. 지역마다 일부 차이가 있지만 다각적 측면에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별·종교·가족 형태·성별 정체성·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폭력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 등을 담은 것이 핵심이다.

인권침해를 막는 '착한 조례'이지만 문제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조례를 과하게 해석하면 훈육을 위한 교사의 정당한 행위조차 문제 삼을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교권 침해사건들도 학생인권조례를 바탕으로 빚어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비판은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표면화됐다. 경찰은 해당 교사가 개인적 사유로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교육계와 교원노조에서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20일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사건에 대해 성명을 내고 "작금의 상황을 한 교사가 당한 참담한 교권 침해를 넘어 전체 공교육의 붕괴로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우려했다.

교육계 수장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에 대해 공식화했다. 이 부총리는 지난 21일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 때문에 정당한 칭찬과 격려가 다른 학생에 대한 차별로 인식되고 다양한 수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어제 교육감협의회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권조례와 교사 리더십 균형 맞춰야"

전문가들은 학생인권조례 오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교실 내 원활한 교육활동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사의 리더십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는 "인권조례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인권조례에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이를 오남용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지나치게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이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교육에서 교사의 리더십은 전인권 형성에 도움을 주는 필수적인 과정"이라며 "인권조례로 인해 교사의 리더십이 무너지면 교육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은 상충되는 개념이 아닌 상호 보완적 개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한나 총신대 교직과 교수는 "교사의 자긍심을 떨어트리는 요소는 학생인권조례뿐만 아니라 열악한 임금, 학부모·학생으로부터의 침해 등 다양하다"며 "교권과 인권은 같이 가야 할 개념이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협력해서 서로 존중하는 문화 속에 정당한 교육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