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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징용공 아들에서 최장수 외교관으로...김옥채 요코하마 총영사

양국 지도자가 국내 여론만 추종하면 100년이 지나도 화해 못해
아베 신조 전 총리 1주기 때 사저서 조문한 첫 한국 관료
고대 선인의 교류정신서 한일의 진정한 역사화해 단서 찾아야
위안부 지원단체 감시 주장은 허튼 소리

[단독 인터뷰] 징용공 아들에서 최장수 외교관으로...김옥채 요코하마 총영사
김옥채 주요코하마 대한민국 총영사와 그의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재팬이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백수정 기자

【파이낸셜뉴스재팬 요코하마=백수정 기자】 김옥채 주요코하마 총영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작년 12월 제19대 주요코하마 총영사로 취임했다. 김 총영사는 1993년 제11대 공로명 주일대사로부터 2016년 제22대 이준규 대사까지 총 12명의 대사를 보좌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고, 이후 주후쿠오카 총영사를 거쳐 16년 가까이 주일 공관 외교관으로서 재직 중인 최장수 '일본통' 외교관이다. 김 총영사에 관한 기사는 한국보다 일본에서가 더 많다. 주요코하마 총영사로서 현장에서의 굵직한 외교활동은 물론 2015년 위안부합의 배후 논란 등에 대해 그동안 함구해 왔던 김 총영사의 의견을 듣기 위해 본지는 그와 집무실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 아버지는 징용공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3월 6일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피고기업의 배상금 조성 참여와 일본 정부에 대한 사과 요구가 빠진 해결안이라며 국내에서는 아직도 피해자 일부가 반발하고 있다. 김 총영사의 선친은 1939년부터 2년 간 징용공으로 일본에서 노동을 했고 그때 받은 임금으로 조선에서 소 2마리를 샀다고 했다. 해방 전 소 2마리 값은 큰 금액이었다. 김 총영사는 "먼저 징용공과 징용피해자의 구별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징용을 자원했던 선친까지 정부의 배상금을 받았을 정도로 우리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기본협정 체결 시 '양국 및 양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합의한 한국 정부는 197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관련법을 제정해 징용·징병 피해자, 임금 미수령자 등에 대해 정부 예산으로 보상했다. 2007년 제정된 법에 따라 보상한 총 금액은 6000억원이 넘는다. 김 총영사는 "10년 이상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았던 위안부나 징용 피해자 문제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결여에도 원인이 있지만, 우리 국내 법원의 사법자제 원칙과 국제법 존중의 원칙을 무시한 판결에서 비롯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그런 인식 하에 단행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김 총영사는 오래 전부터 일본의 진정한 과거사 사죄는 "한반도 자유통일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북한을 압박해서 독재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이미 핵·미사일로 무장한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북 국교정상화와 우리 정부의 ‘담대한 지원’ 계획을 연계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옵션으로 보인다"며 "일본이 북한에 대해선 아직 식민지 청산을 하지 않은 상태다. 현금을 지원한다면 군비 증강과 체제 유지에 우선 사용될 것이니 철도, 도로, 항만 등 SOC 설비를 도와 미래 한반도의 통일경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진정한 사죄"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북한이 개방·개방 노선으로 나와 일본과 한국 대기업의 제조 공장을 북한에 두면 중국과의 가격경쟁에서도 유리해 남북한과 일본이 동시에 윈윈(win-win) 하는 길"이라며 "양국 정치 지도자가 자국 여론만 추종하면 100년이 지나도 화해 못 한다. 한반도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한일관계가 더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한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서는 "해방 이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극적으로 이끈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은 3번째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용기와 포용 정신없이는 내리기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 일본 내 확산일로에 있던 혐한정서를 단숨에 멈추게 할 정도로 효과가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7월에 1년 전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1주기 추도 행사가 일본 곳곳서 열렸다. 이때 김 총영사는 한국 관료로는 처음으로 아베 전 총리의 사저에 초대를 받아 조문을 했다. 부인 아키에 여사와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아베 전 총리가 한국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키에 여사는 원조 ‘한류팬’으로 두 사람 다 한국을 좋아했다"고 전했다. 2002년부터 한국인에 대한 일본 입국사증 면제가 된 데는 김 총영사의 숨은 공도 있었다. 당시 불법체류를 하고 있던 고향 친구를 도쿄 한식당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외교관이 된 자신을 피하던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사증면제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한 자료를 작성해 관방 부장관이었던 아베에게 전했고 아베가 법무성과 경찰의 반대를 설득하는데 힘을 보탰다고 한다. 이번 사저 조문은 당시 자료를 대신 전달했던 아베 비서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지난 6월 중순 요코하마 한국 총영사관이 처음으로 요코하마시의 협조로 기획한 한일시민교류 ‘한국주간(Korea week)’행사에는 일본 정·관·재계 인사, 일한친선협회 회원, 재일동포, 일반 시민 등 수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에는 야마나카 다케하루 요코하마시장은 물론 일한의원연맹 회장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영상 축사, 공명당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 참의원의 축전, 일본 외무성 후나코시 다케히로 아시아대양주국장 등 여러 내빈의 축사가 있었고 3일간 1만 명이 넘는 한일 시민이 행사장을 방문했다. 김 총영사는 "지방 총영사관 행사에 총리 경험자가 축사를 하거나 외무성 간부가 직접 참가한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아소 전 총리와 스가 전 총리 등 대한(對韓) 강경파 정치인의 자세도 180도 달라졌다"며 극적으로 바뀌고 있는 일본 내 분위기를 전했다.

김 총영사는 후쿠오카 총영사 시절 총영사관 슬로건으로 '고대 선인의 교류정신에서 배우자. 한일 간 진정한 화해와 우호는 규슈로부터'를 내걸고 한일 간 고대사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일본에서는 물론 귀국 후에도 대학과 각 기관을 찾아 ‘양국 간 고대 교류역사 이해를 통한 진정한 역사화해’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국제학술회의 등에 발표했다. 한일 간의 고대사를 통해 양국 국민의 진정한 역사적 화해와 우호로 연결시켜 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의 상왕인 ‘헤이세이텐노(平成天皇) 아키히토(昭仁)’가 2001년 12월 자신의 생일을 앞둔 정례 기자회견에서 “2002년 월드컵 공동주최국인 한국에 대한 감상을 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임이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음으로 인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고, 아들 성명왕(聖明王)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과의 교류는 이런 교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김 총영사는 "그 때의 발언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알리는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김 총영사는 "한일 양국은 7세기까지는 국경의 장벽도 언어의 장애도 없이 교류해 왔으며 양국 간의 불행한 시기는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과 20세기 전반의 식민지지배 기간 약 40여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대 선인들의 교류정신을 되새김으로써 가해, 피해자 구도를 극복하고 양국 국민의 진정한 화해를 도모했으면 한다"며 "일본인에게는 고대사 왜곡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한국인에게는 근대사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좀 더 관용적 시각을, 2001년 일본을 깜짝 놀라게 한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에는 이러한 기대가 숨어있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김 총영사는 에도 시대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시즈오카현 소재 세이켄지(淸見寺)에서 최근 ‘우라센케이(裏千家) 15대 종손 센겐시쯔(千玄室)’씨로부터 일본 전통 차 대접을 받았다. 우라센케이는 매년 정월 일본 황실이나 총리실에서 차회(茶會)를 개최하는 일본 다도(茶道) 최대 유파인 명문집안이다. 올 해 100세를 맞이한 종손 센겐시쯔씨가 김 총영사에게 차 대접을 하기 위해 교토에서 일부러 노구를 이끌고 찾아 온 것이다. 그 자리에는 임진왜란 후 조선과 화친에 힘을 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19대 종손 이에히로(家廣)씨도 함께 있었다. 올 해 초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김 총영사는, 센겐시쯔씨가 "선조인 센리큐(千利休)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반대하다가 할복자살을 명령받았다. 기회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께 직접 차를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며 "도요토미의 침략으로 국토가 황폐화된 직후인데도 조선통신사를 파견해 일본과 외교 관계를 재개한 당시의 정신을 되새겨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영사는 현재 일본 제2의 도시 요코하마에서 오랜 경험과 폭 넓은 인맥을 활용해 왕성한 외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요코하마 총영사로 임명된 직후 위안부 지원 단체로부터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김복동의 희망’이라는 지원단체는 김 총영사가 위안부 합의 배후이고 일본 당국과 협조해 위안부 지원단체를 감시한 혐의가 있다며 정부에 임명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었다. 이에 대해 김 총영사는 "위안부 합의의 배후거나 태스크포스(TF) 멤버였다면 전 정권의 위안부합의 검증 TF로부터 조사를 받아야 했었는데 전화 한 통, 메일 한 통 받은 적 없다.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 중이어서 한국에서 진행된 위안부 회의개최 일정 등을 일본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이것도 배후라고 하면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웃어 넘겼다. 또 일본 정보당국과 협조해 위안부 지원단체를 감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내세운 전직 국정원 하급 직원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인용한 것 같은데, 만약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전 정권에서 직권남용으로 조사하지 않았겠나? 나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치인이고 시민단체이고 외교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국민으로부터 모금한 돈으로 호의호식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국민이 판단하실 것으로 본다. 정쟁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다시 후퇴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sjbae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