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작가(디즈니플러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무협지 좋아 하나 봐요? 저거 싸우는 이야기죠?”(지희) “아아뇨. 그냥 무협지 아니에요. 멜로소설입니다. 무협지는 결국 다 멜로예요.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나요."(구룡포)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11화에서 무한재생능력자 구룡포(류승룡 분)가 호감을 갖게 된 다방 종업원 지희(곽선영 분)와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이 장면은 한국형 히어로물 ‘무빙’의 지향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무빙' 19금 액션신 있으나 남녀 혹은 부모 간 멜로드라마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싸우는 이야기로 수위 높은 액션신이 있어 19금 관람가로 분류됐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남녀 혹은 부모 자식 간 멜로드라마다.
동명의 원작 웹툰 작가이자 이번 시리즈를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강풀 작가는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김용 작가 빠(골수팬)였다”며 “무협소설인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멜로가 정말 재밌더라. 인구에 회자되고 명작으로 남는 것은 결국 멜로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빙도 초능력물 장르의 멜로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누구와 치고받고 싸우나 결국은 내 주변 사람들, 가족과 연인을 지키는 이야기”라고 부연했다.
극중 격투기를 시청하다 “좋은 사람이 무조건 이기냐”는 곽선영의 지적에 류승룡은 “끝까지 보면 이긴다”고 확신한다. 이 역시 강풀 작가의 평소 가치관이 투영됐다.
강 작가는 '무빙' 전반에 흐르는 순박한 정서에 대해 “세상이 너무 각박한데, 저는 여전히 성선설을 믿는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목사셨습니다. 어릴 적 가정 환경의 영향인데, ‘사람은 선하다’고 믿고, 그렇게 믿고 싶다”고 답했다.
디즈니+ /사진=뉴스1
“성경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어요. 좋아하는 말씀인데요. 저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좋습니다. 아직은 재미있는 작품을 추구하면서 작품에 의미까지 담진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목적의식을 갖고 한 작품은 ‘26년’이 유일합니다. 5.18을 알리고 싶었죠. 다른 작품은 오직 재미가 최우선이었습니다. '무빙'은 가장 재미있게 작업한 작품입니다."
"권선징악이라든가, 정의는 승리한다는 등의 메시지가 지금으로선 클래식을 넘어 고리타분할 수 있죠. 근데 전 그런 이야기가 좋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전 제 작품의 작가지만 동시에 첫 번째 독자니까요.”
20부작 고집한 이유 "모든 인물에 애정 가"
‘무빙’은 원래 12~16부작으로 기획됐다. 강풀 작가는 원작자로서 트리트먼트 작업에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내다 직접 한번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해보고 싶었지만 솔직히 겁이 났다. 그래서 일단 한번 해볼테니 보고 판단해달라고 한 뒤 몇 달을 집필에 몰두했다. 제작사의 긍정적 반응에 그가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바로 20화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겐 인물 서사가 중요했기 때문에 20부작을 고집했다”며 ‘무빙’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애정이 간다고 했다.
“때로는 (스토리 전개를 위해) 기능적으로 써야하는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데, 전 모든 캐릭터에 다 애정이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다 보여주려고 하니까 (드라마 전개가) 느린 느낌이 있죠. 그게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제가 포기가 안되더라고요.”
이어 그는 "다만 죄송한 캐릭터가 있다"며 "유일하게 과거사가 다뤄지지 않는 (국정원) 민차장 캐릭터"라며 "문성근 배우를 고집했다"고 비화를 밝혔다.
"영화 ‘초록물고기’을 보고 반했어요. 그 마음을 품고 있다가 이번에 배역으로 강력하게 제안했죠. '무빙'에서도 악으로 보이길 바랐죠. 흔히 높은 자리에 오르면 말을 조심하는데, 민차장은 그렇지 않아요. 전형적인 악이라면 수가 틀리면 쌍욕을 할 것이라고 봤죠. 8화에서 문성근 배우의 욕 장면을 보고 좋아라하며 만족해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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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팬이라 성인 연기자 캐스팅에는 의견을 많이 냈다는 그는 원작에 없던 류승범이 연기한 프랭크와 차태현 의 전계도 배역에도 애정을 보였다.
그는 "후반부에 전계도의 이야기가 추가로 펼쳐질 것"이라며 "전계도는 어떻게 보면 가장 보잘 것 없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면서 한때 번개맨의 영광을 갖고 뒷전으로 밀려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려운 역할"이라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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