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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예금자보호 상향에 부정적이라니, 뱅크런 잊었나

보호액 해외보다 턱없이 낮은데도
당국, 자금 쏠림 우려 등으로 신중

[fn사설] 예금자보호 상향에 부정적이라니, 뱅크런 잊었나
부실 대출로 대규모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기를 겪었던 새마을금고. /사진=뉴스1


23년째 제자리인 국내 예금자보호 한도 인상에 금융당국의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현행 예금자보호 한도는 2001년 이후 1인당 5000만원으로 묶여 있다. 금융위원회는 관련 제도 손질을 위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지난 4월부터 운영해왔다. 21일 마지막 회의를 열고 종합의견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데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안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TF안에는 1억원까지 단계적 한도 상향, 일부 예금 별도한도 적용 등의 시나리오가 담겼다고 한다. 당국이 현행 유지를 끝까지 제안할 경우 제도개선 책임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당국이 지금 제도를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이유는 보호 한도액이 2배가 될 경우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자금이 급격히 쏠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꺼번에 대규모 자금이 몰린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이 고위험 투자처를 찾으면서 시장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도 비슷한 입장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입법조사처는 보호 한도가 오르면 예금자는 금융기관의 건전성보다는 높은 금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1억원으로 상향될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금자보호 한도가 높아질 경우 자금의 대규모 이동이나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 등 폐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생각해 볼 부작용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한도가 오르면 금융사가 예금보험공사에 지불하는 보험료도 인상이 불가피하다. 예금자보호법상 은행의 예보료율은 예금액 대비 0.08%, 저축은행은 0.4%다. 보험료가 오르면 인상분이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도 누차 지적됐던 바다. 이런 부작용을 개선하면서 보호 한도를 높일 방안을 기대했는데, 결과는 미흡하다.

예금자보호 한도제를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지켜보면서 형성된 것이다.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40년 역사의 이 은행이 파산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6시간이었다. 대규모 손실 발표 후 SNS를 통해 공포심리가 순식간에 퍼졌고, '묻지 마' 뱅크런이 결국 은행을 파산까지 몰고 갔다. 비슷한 일이 국내에서 벌어졌다면 예금인출 속도는 100배 더 빨랐을 것이라는 당국자의 발언도 있었다. 예금자 불안심리를 선제적으로 달래야 금융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호 한도액 상향이 필요한 것이다.

23년째 한도액을 동결해 놓은 것 자체도 시대착오적이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도 상향은 더 절실하다. 미국은 25만달러(약 3억3200만원), 영국은 8만5000파운드(약 1억3900만원), 캐나다는 10만캐나다달러(약 9850만원), 일본은 1000만엔(약 8980만원)을 보장한다. 예금보험기구를 운용하는 나라들의 평균 예금보호 한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3배가량이다.
우리의 한도액도 여기에 맞출 필요가 있다.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