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반달리즘'은 문화재·문화적 예술품·종교 시설, 넓게 보면 타인의 재산 등을 파괴·훼손하는 활동을 말한다. 반달리즘은 주로 전쟁에서 이뤄졌다. 나라와 민족의 얼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를 옳지 않다고 여겨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프랑스 주둔 독일 보병대 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가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이 파리에서 철수할 때 아돌프 히틀러는 파리를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폰 콜티츠가 그 명령을 거부했다. 그가 전범 재판 당시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것도 파리를 남겨둔 공로 덕분이다.
이번에 일어난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도 반달리즘의 일종이다. 범죄학에서는 반달리즘을 '정신적 성숙이 신체적 성숙을 따르지 못하고 나타나는 부적응적 심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문화 거부와 폭력적 반항 행위'로 설명하는데, 이번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 모르는 이가 돈을 준다는 약속을 믿고 테러를 벌인 10대 남녀도, 철자를 틀려가며 모방한 20대 남성의 행위도 정당성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테러범들은 자기 행동을 성숙하다고 여길 것 같다. 구속된 20대 남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예술을 했다"는 취지의 글을 쓰며 일말의 반성도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사한 사례가 최근 유럽에도 있다. 환경단체 등이 이목을 끌기 위해 명소·명화를 훼손하고,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서라면 문화재나 예술품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이다. 분명 사회의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잘못된 신념이다.
앞으로도 스스로를 '성숙하다' 여기는 테러범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런 종류의 테러를 막을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숭례문 방화 사건, 베를린 장벽 훼손 사건을 겪고도 서울 한복판에서 또 문화재가 또 훼손됐다. 심지어 사건이 일어난 지 하루 만에 모방범이 등장해 경복궁 담벼락을 훼손시켰다. 경찰은 테러를 저지르고 택시를 탄 채 도망친 10대들을 잡는 데 사흘씩이나 걸렸다. 대비가 얼마나 부실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공권력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이번 낙서 테러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미성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상징적인 문화유산에 더욱 삼엄한 경비 시스템을 재정비 해야 할 것이다. 경복궁 담벼락 복원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건은 국민에게 '자국민이 우리 얼을 훼손한 테러 행위'로 정의해야 한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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