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다툼 끝 흉기 위협한 50대男 '집유' 선고
中작가 위화 책 '인생'과 10만원 건넨 판사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 /사진=부산일보
[파이낸셜뉴스] 부산의 한 판사가 노숙인 피고에게 선고를 내린 뒤 따뜻한 위로와 책, 현금 10만원을 건넨 사연이 공개됐다. 20여년간 고립된 생활을 하다 우발적으로 범죄에 휘말린 노숙인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보호관찰 2년도 함께 명했다.
A씨는 지난 9월28일 오전 1시께 부산의 한 편의점 앞에서 다른 노숙인 B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 끝에 흉기를 꺼내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판결 전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칼을 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칼을 밟아 부러뜨렸다.
A씨는 "손수레에서 술자리까지 약 4m가 떨어져 있어 B씨는 칼을 든 자기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로 A씨는 경찰에 체포됐고, 주거가 일정치 않은 탓에 구속됐다.
박 부장판사는 A씨가 현장에서 흉기를 스스로 발로 밟아 부러뜨린 점, 피해자 B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초범인 점, 개과천선할 여지가 있는 점 등을 들어 실형을 면해줬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6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을 앞둔 2020년 9월 11일 사법부의 발전과 인식 개선 등에 기여한 우수 종사자들에게 표창장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형주 경위주사보, 박주영 부장판사, 김명수 대법원장, 권영하 조정위원, 안경희 등기주사보. /사진=대법원 제공,뉴스1
경남 출신인 A씨는 부모가 사망한 뒤 30대 초반 부산으로 넘어와 노숙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27년간 폐지나 고철 등을 수집해 생활해온 그는 휴대전화도 없고, 주민등록 호적도 말소될 정도로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선고 후 박 부장판사는 A씨에게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주거를 일정하게 해 사회보장 제도 속에 살고 건강을 챙기라"면서 평소 A씨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 작가 위화가 쓴 '인생'(원제목 활착 活着·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책과 함께 현금 10만원을 챙겨줬다. 그러면서 "나가서 상황을 잘 수습하고 어머니 산소에 꼭 가봐라"라는 말을 건넸다.
박 부장판사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A씨에게 책을 줬고, 그날 한파였는데 당장 현금이 없는 것으로 보여 고민 끝에 하루 이틀 정도는 찜질방에서 자라고 현금을 줬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는 초범이고 피해자 역시 처벌을 원치 않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A씨가 달라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부연했다.
박 부장판사는 "법복을 입는 순간 스스로가 형사사법 절차이기 때문에 평소 엄격하게 재판을 진행하는데, 따뜻한 법관으로만 비칠까 걱정스럽다"면서도 "무명에 가깝던 사람이 법정에 선 순간 형벌과 함께 사회적 관심이 들어간다면 제2의 범죄에 휩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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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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