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한국뮤지컬 명작의 탄생 '일 테노레' [김덕희의 온스테이지]

한국뮤지컬 명작의 탄생 '일 테노레' [김덕희의 온스테이지]
뮤지컬 '일 테노레' / 오디컴퍼니 제공

2024년 겨울 한국뮤지컬의 화제작은 단언코 '일 테노레'다. 이 작품은 오디뮤지컬컴퍼니 제작에 예술의전당 초연 그리고 박천휴·윌 애런슨 콤비의 대본과 음악, 김동연 연출, 오필영 무대디자인 그리고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 김지현, 박지연, 홍지희의 출연까지 화려한 제작진과 출연진을 갖췄다.

그리하여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대본, 음악, 가사, 연출, 연기, 무대 등 모든 파트에서 흠잡을 데 없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모든 파트가 다 훌륭했지만 작·작사의 박천휴와 작곡의 월 애런슨 콤비의 단단한 창작이 '일 테노레'의 시작과 결말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품 안으로 좀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즉, 어떤 다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지점들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가지면서 명작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 테노레'는 1940년대 의대생이었지만 이탈리아에 유학을 다녀와 오페라를 전파했던 이인선이라는 실존인물로부터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모든 이야기는 새로 만들어졌다. 박천휴는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고증에 갇히지 않고 과감한 창작을 통해 보편적인 주제를 구현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의 다른 선택이다.

일제 강점기에 예술을 하는 이야기에서 독립운동과의 관계성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대의 예술을 다뤄야하는 현대의 창작자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작품은 조선의 일테노레(테너)인 윤이선을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물리적 투쟁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하려는 이수한과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성과 자주독립을 전파하려는 서진연을 등장시킨다. 즉, 일제 강점기를 예술을 통해 뚫고 지나가려고 했던 세 젊은이의 이야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구도에서의 갈등은 결국 예술과 독립운동의 문제로 발전되며 부민관에서 일본군 까마귀에 대한 폭탄 테러라는 사건으로 전개된다.

여기에서 작가의 두 번째 다른 선택은 세 인물의 삼각관계에서 클리셰한 갈등을 전개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수한은 서진연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지만 윤이선과 서진연이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윤이선이 폭탄테러에 대해 알아차리고 오페라 공연을 포기하기 어려워 고민을 하기는 하지만 테러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이는 삼각구도에서도 전형적인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이 더 큰 주제로 발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삼각구도의 중심에는 사실 서진연이 위치해 있다. 주인공이 능동적 선택을 하는 인물이라면 셋 중에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인물은 서진연일 것이다. 작품은 윤이선을 흔들림 없는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1막의 시작과 2막의 시작을 윤이선의 현재로 설정해 서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서진연이 함께 살아있는 듯한 설정을 통해 결말의 반전을 이끌어냈다. 이것이 창작진의 세 번째 다른 선택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예술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려 했던 세 젊은이의 이야기에서 예술을 전부라 여기고 평생을 바쳐왔던 어느 테너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윌 애런슨의 음악은 한국 최초의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이 작품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요인이다. 놀라운 것은 극중 오페라인 '꿈꾸는 자들'이 기존에 있던 오페라가 아니라 이 작품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곡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주제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오페라의 두 아리아는 관객들의 가슴에 깊숙이 박히는 킬링 넘버로 자리매김했다.


윤이선이 오페라를 배우는 과정, 뮤지컬 발성과 성악 발성을 오고가며 펼치는 노래, 노년의 이선이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까지 배우의 가창력을 최대로 이끌어내어 넋을 내려놓고 보게 만들 정도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초연을 통해 2018년 첫 낭독공연을 가졌던 이 작품을 5년 이라는 시간 동안 두 창작자가 얼마나 꼼꼼하게 발전시켜왔는지가 느껴진다. 지면이 부족하여 '일 테노레'의 매력을 더 담아내지 못했으니, 부디 이 명작의 역사적인 초연을 놓치지 말고 극장에서 직접 공연의 감동을 느껴보시기를 바라본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