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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운동권 정치' 청산론의 본질

민주화 탈 쓴 '친북' 우려
정치권 편가르고 오염시켜
운동권 대체할 세력 키워야

[노동일 칼럼] '운동권 정치' 청산론의 본질
노동일 주필
"민주화운동 세력은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지난 1월 31일 열린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서 민주화운동동지회 함운경 회장의 첫 발언이었다. "민주화운동 경력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명예와 역사성을 인정받는 자부심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상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무슨 보상을 바라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너는 그때 뭐했느냐고 타인을 질타할 권리 또한 없다는 게 함 회장의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운동 자체나 민주화운동 투신 경력이 문제일 수는 없다.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의 헌신과 용기에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말에 공감한다. 따라서 싸잡아 운동권이 아니라 운동권 정치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끼치는 해악의 청산을 말해야 한다. '운동권' 청산보다 '운동권 정치' 청산이 바른 인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운동권 정치의 해악으로 우선 꼽아야 할 것은 친북·종북적, 반대한민국적 세계관이다. 토론회에서 '운동권 정치세력의 반칙과 타락'을 발제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1980년대 운동권 정체성의 모태는 근현대 역사관, 특히 (왜곡된) 대한민국관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국에 의해 태어난, 태생이 잘못된 종자라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에 이식된 운동권 철학의 강고함에 갇혀 있는 운동권 정치세력의 기본적 세계관이다. 김 소장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하는 행태를 날카롭게 질타"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주화운동과 하등 인연이 없다. 하지만 '우리 북한 주민들'에 이어 "(김정은의)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김일성 주석의 노력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6·25는 "크고 작은 군사충돌의 결과"라고도 했다. 일종의 "말버릇"이라면 친북 운동권의 말버릇 그대로이다. "북의 전쟁관은 정의의 전쟁관"으로서 "그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주최한 토론회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나온 발언이다. 정치권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킨 종북적 세계관과 그에 바탕을 두고 있는 운동권 정치 청산이 필요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대적 지진아'(함운경)라는 표현처럼 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광우병 촛불집회 같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독립한 지 오래인데도 독립운동, 친일파 청산이나 반일·반미 운동을 선동한다. 여전히 민주화운동 요구가 있다고 해야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올라간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검찰독재를 외치는 정치권 일각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진단이다. 독재 대 민주, 친일 대 반일, 자본 대 노동의 이분법적 정치행태는 우리 사회를 분열과 적대로 고통스럽게 한다. 이런 점에서도 운동권 정치 청산은 필요하다.

한국은 내적으로 성장동력 저하, 인구 감소, 세대 및 진영 갈등의 심화를 겪고 있다. 외적으로는 미중 대결의 심화 속에 국제분쟁이 늘어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대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낡은 이념과 이익 중심 운동권 카르텔의 지속은 한국의 미래 대응에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를 낳고 있다. 이들을 대체할 세력 교체, 정치 교체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토론회의 결론이었다.

청산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어딘가 으스스하다. 살벌하기도 하다. 실제 우리 역사에서 청산의 쓰임새가 그런 것이었다. 친일파 청산, 빨갱이 청산, 반동분자 청산 등. 적폐청산이라는 직전 정권의 광풍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운동권 정치 청산은 다르다.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이 척결 대상이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비싼 명품 패딩이라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벗어야 하는게 자연의 순리다. 4월 총선은 완연한 봄날 치러진다. 겨울을 견디는 데 필요했던 운동권 정치 청산에 딱 좋은 계절이 아닐 수 없다.

dinoh786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