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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의 세상만사] 문재인의 임대주택, 윤석열의 대파

세팅된 대통령 현장 탐방
각색된 보고로 민심 몰라
불편한 소리 듣는 자세를

[노동일의 세상만사] 문재인의 임대주택, 윤석열의 대파
노동일 주필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12월 동탄의 임대주택을 방문했다. 44㎡(13평) 주택을 둘러본 문 전 대통령은 "부부와 아이 둘도 가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13평에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가'라는 비판을 받은 사건(?)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진짜 아늑하다"고 칭찬했던 해당 주택은 대통령 방문 직전 4290만원을 들여 보수했고, 행사용역 비용으로 4억1000만원을 지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마디로 의전용 '쇼룸'을 급조한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서민주거 안정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대통령 현장방문 행사'가 역효과를 낸 경우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했다. 대파 매대에 표시된 가격은 한 단에 875원. 정부의 납품단가 지원(㎏당 2000원)과 농산물 할인(30%), 자체 할인(1000원)을 적용해서 원래 4250원짜리 대파 한 단 가격을 대폭 낮춘 것이다. "다른 데는 이렇게 사기 어려울 것 같다"는 발언도 있었지만 '합리적 가격'이라는 윤 대통령의 언급만 부각되었다. 물가현장 점검 취지는 사라지고 '대파 총선'으로 여당 패배의 한 요인이 되었다. 맥락을 거두절미한 선동이 문제이지만 빌미를 준 건 사실이다. 역시 어설픈 민심탐방이 부른 역풍이다.

임대주택과 대파 논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형적인 관료식 포장술에 넘어간 것이다. 대통령 방문에 맞추어 모든 임대주택이 그토록 '아늑한 곳'인 양, 전국 마트에서 대파를 대폭 할인하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다. 이를 알 리 없는 대통령은 생색내기 이벤트에 출연했다가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비난받는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은 물론 좋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현장방문으로는 민심의 속살을 알 수 없다는 인식이 더 중요하다. 해프닝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은 국가정책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다. 부동산 생태계가 무너지는데도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고 공언했다. 아늑한 임대주택을 '구경'한 게 근거는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장방문 결과 이런저런 보조금을 더하면 물가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윤 대통령이 믿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부동산정책 실패는 정권교체를, 물가관리 실패는 총선 패배를 불렀다. 정권 입맛에 맞게 상황을 만들고 보고서를 가공하는 관료들의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조선의 암행어사나 정보기관, 검찰, 경찰, 군 등 여러 경로로 정보를 교차검증한 과거 대통령들의 국정운영 방식은 이유가 있었다.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신설(부활)했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검사 출신 김주현 수석을 두고 사정기능 강화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운영을 보고 판단할 일이다. 중요한 건 원인진단이다. 그동안 민정수석 부재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가. 과거처럼 언로가 막힌 시대가 아니다. '땡X뉴스'처럼 일방적 홍보만 횡행하는 것도 아니다. 기자회견을 촉구하고, 이재명 대표를 만나야 한다는 지적은 수도 없이 있었다. 민정수석 보고가 없어서 이런 민심을 외면했던 것인가. 영수회담과 기자회견을 보고 주위에서 한숨 쉬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신년회견만 했어도, 2월 대담에서 진솔한 사과만 했어도, 4월 의대 증원 담화에서 훈계조가 아니라 이번처럼만 했어도 총선 참패는 없었을 거라는 만시지탄이었다. 진작 이 대표와 회담을 했다면 대통령이 갑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는 탄식도 나왔다.

중요한 건 민정수석 같은 제도가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는 민정수석이 건재했지만 민심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문 전 대통령은 불편한 말을 들으면 얼굴이 굳어지고 말문을 닫는다는 전언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격노' 메시지가 수시로 흘러나온다.
임대주택이나 대파 논란도 민심 대신 대통령 심기에만 관심 있는 아랫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지도자가 민심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도 들을 귀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법이다.

dinoh786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