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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성북동 부촌과 교보생명

[기업과 옛 신문광고] 성북동 부촌과 교보생명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리사가 전통 부촌인 서울 성북동에 둥지를 틀었다는 뉴스가 지난해에 전해졌다. 주택 매입가는 75억원으로, 어느 돈 많은 기업가 부부가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성북동에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 재벌 총수들과 배용준, 이승기, 이승철 등 연예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문명의 자연파괴 문제를 다룬 김광석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는 그 성북동이다. 성북동(城北洞)은 말 그대로 한양도성의 북쪽, 북한산의 끝자락에 있는 구진봉 아래에 자리 잡은 동네다. 계곡이 깊고 물이 맑아 조선시대부터 양반들의 별장터로 사랑을 받았고,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북촌과 인접한 성북동은 일제강점기의 '건축왕' 정세권이 분양한 한옥들도 있고, 토막과 판자촌이 난립하기도 해서 복잡한 모습을 지닌 동네다. 한용운, 조지훈, 이태준 등 문인과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등의 생가 또는 가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강북 제일의 부촌이 된 위쪽의 산기슭 동네는 원래 도로가 없어 접근이 어려웠다. 이곳에 고급 주택 단지가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이후로, 특이한 연유가 있다.

10만7000평에 이르는 성북동 부촌은 원래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창업주인 신용호(1917~2003)의 땅이었다. 신 창업주는 동작동에 3만6000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를 국립묘지 터로 내주는 대신 성북동 토지를 받았다. 두 토지를 맞바꾼 셈이다. 관악산 줄기인 동작동에 6·25 전사자를 위한 묘지(현 국립서울현충원)가 조성된 것은 1955년부터다. 이곳에 신 창업주의 땅이 있었는데, 불가피하게 국가에 내준 것이다.

신용호는 손에 넣은 성북동 땅을 신속히 처분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도로를 내고 광화문 쪽에서 접근하기 쉽도록 터널을 뚫어야 했다. 신용호는 자기 돈을 들여 삼청동과 자신의 땅을 연결하는 삼청터널을 1970년 12월 완공, 나라에 기증하는 한편 나중에 삼청각이 들어선 부지 6000평도 내놓았다.

터널과 길이 완공되자 개발계획을 세우고 수차에 걸쳐 분양광고를 냈다(조선일보 1972년 10월 15일자·사진). 대한교육보험 이름으로 낸 첫 광고를 보면 105평 내외의 대지에 75평의 주택을 짓는 것으로 돼 있다. 전체 600필지다. 이렇게 해서 고급 주택들이 들어섰고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각국 대사관들도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재벌 본사가 강북 도심에 있을 때 터널만 지나면 나타나는 성북동 부촌은 재벌 총수와 부호의 주거지로 제격이었다. 게다가 숲이 우거졌고 청와대와 가까워 안전도 걱정할 게 없었다.

신 창업주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 양곡 유통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독립운동 자금도 대고 귀국 후에는 출판사를 운영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그는 교육보험에 눈을 돌렸다. 한국인의 남다른 교육열에 주목한 것이다. 먹고살기도 힘들어 보험에 대한 관념도 없을 때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이면 무작정 접근해서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가입하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권유했다고 한다.

신 창업주가 서울 을지로에서 태양생명보험을 창립한 때가 1958년 6월이었다. 11일 후 교육보험으로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으로 재출발했다. 1980년 종로 1번지 옛 전매청 청사 터에 교보생명 본사 건물을 완공하고 이듬해 지하 1층 전체를 털어 교보문고를 열었다.
신 창업주는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방에 세운 교보빌딩에도 지하에 서점을 조성했다. 교보생명보다 교보문고가 더 유명할 정도로 서점은 성공을 거두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