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탐지는 놀이의 한 과정
탐지견으로서의 생 이외의 삶
지난 24일 오전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관세청 인천공항본부세관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만난 5살 난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 '딜론'이 마약류 화물을 찾고 있다./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지난 24일 오전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관세청 인천공항본부세관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만난 5살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 '딜론'. 딜론은 소포들이 한 줄로 늘어진 컨베이어벨트 위를 종횡무진했다. '킁킁' 냄새를 맡으며 빠른 속도로 컨베이어벨트에 있는 모든 화물을 코로 훑었다. 벨트의 앞쪽으로 한 번, 반대로 한 번, 왕복해서 총 두번씩 꼼꼼히 검사했다. 일부 화물들은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 여러 번 주시했다. 순간 딜론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핑크색 화물 앞에 털썩 앉아 꼬리를 흔들었다. 마약류를 탐지했다는 뜻이다. 다행히 해당 화물은 세관에서 마약류 냄새를 인위적으로 묻힌 훈련용 화물이었다.
■마약류 탐지는 놀이의 한 과정
탐지견에게 마약 탐지는 일종의 놀이다. 이들이 놀면서 거둔 성과는 관세청의 마약 단속 사건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16주간 진행되는 교육을 통해 강아지는 탐지견으로 거듭난다. 이들은 은퇴 이후에는 민간으로 분양돼 '일반적인 개'로서 살아갈 예정이다.
딜론 등 탐지견의 마약류 탐지 실적은 우수한 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9~지난해) 동안 탐지견이 적발한 마약류 밀수 건수는 618건이다. 이는 관세청이 적발한 마약류 밀수 건수(3886건)의 15.9%에 이르는 성과다. '10%대'는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다. 마약류 탐지를 위해 지불하는 인력 운영비와 장비 운용비 등을 고려하면 탐지견의 성과는 만족스럽다는 것이 관세청의 설명이다.
딜론에게 마약류가 든 화물을 찾는 것은 놀이 중 하나다. 앞선 사례에서 딜론 역시 마약류 냄새가 묻은 훈련용 화물을 발견하자 핸들러부터 '놀이 보상'을 받았다. 핸들러의 뒤 주머니에서 나온 놀이용 링을 가지고 핸들러와 힘을 겨루거나 핸들러가 던져진 링을 주워 오는 등의 방식이었다.
딜론은 '놀이 보상'에 진심이었다. 예컨대 딜론은 힘겨루기 과정에서 강한 악력을 발휘해 핸들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놀이 보상'은 딜론과 핸들러 사이의 약속이다. 사람도 약속이 깨지면 일하기 싫어하듯 탐지견 역시 마찬가지다. 탐지견은 일에 대한 보상을 오롯이 '놀이'라는 정신적 보상으로만 받는다. 일반 가정에서 훈련하듯 보상을 음식물로 받을 경우 여행자 가방에 든 음식물에도 반응할 수 있다.
딜론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씩 일을 하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탐지견은 2견 1조로 30분씩 컨베이어 벨트에 오르며 핸들러의 스케줄을 따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와 휴식을 반복한다. 핸들러가 점심시간 등으로 쉴 때는 덩달아 쉬며 산책과 일광욕, 때때로는 목욕한다.
딜론은 때로 마약류가 아니지만 마약류에 포함된 성분을 공유하는 물질이 든 화물에도 반응한다. 처음 본 사람들은 이를 오반응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탐지견은 훈련받은 특정 냄새에 반응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탐지견은 인간의 1만배 정도에 달하는 후각세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냄새에 민감하다.
■탐지견으로서의 생 이외의 삶
딜론은 탐기견으로 활동하기 전까지 훈련견 관세청 관세인재개발원 탐지견훈련센터에서 16주간의 '집중교육'을 받았다. 재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마약류를 탐지할 수 있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16주의 훈련 기간 동안 훈련견 신분이었던 딜론은 친화-복종훈련, 마약냄새 기억훈련, 여행자 수하물 탐지훈련, 여행자 신변 및 휴대품 탐지훈련, 수출입 화물 및 우편 탐지훈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했다.
이렇게 16주의 훈련이 끝나면 딜론은 탐지견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을 치른다. 다행히 딜론은 무사통과 했지만, 훈련견 중 50~60%는 탈락한다. 딜론뿐만 아니라 관세청에서 활동 중인 훈련견 40두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친다.
딜론은 3년 후 은퇴할 예정이다. 하루 종일 고도의 집중력으로 후각을 쓰는 탓에 7~8년이면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은퇴와 함께 일반 가정으로 분양될 준비를 시작한다. 앉기, 애교부리기 등의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
박정원 탐지훈련센터 주무관 "동물권이 부상하고 있는 만큼 탐지견의 처우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은퇴한 탐지견들이 민간으로 입양 가면 동네에서 '똑똑한 개'라고들 소문난다고 한다"고 자랑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김현지 송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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