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대 국회 운영위원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운영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정감사를 개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국회의 협치와 합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두 가지 사안을 두고 탄식이 흘러나온다. 상설특검안과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운영위는 대통령이나 친인척을 대상으로 한 수사의 경우 여당을 배제한 채 상설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국회 규칙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대통령 또는 그 가족이 연루된 수사의 경우 총 7명으로 이뤄지는 상설특검 후보추천위 구성에서 여당 추천 몫 2명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상설특검 후보추천위의 여당 몫 2명은 비교섭단체 중 의석수가 많은 2개 정당이 각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사실상 현재 여당의 추천 몫이 없어지는 셈이다. 원래 이 규칙은 최대 의석을 가진 제1당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여야 합의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런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국회규칙 개정을 야당이 거대 의석 수를 무기 삼아 강행 처리를 시도한 것이다.
국회의 존립 이유는 법대로 하자는 게 아니다. 법 제개정에 앞서 여야간 정치적 협의와 타협을 통해 균형을 잡는 게 국회의 역할이자 책무다. 그런데 야당이 거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배경을 앞세워 위헌 요소가 다분한 규칙안 개정을 밀어붙이려 든다. 이 개정안을 밀어붙이려는 의도 역시 긴 안목에 기반한 게 아니다. 현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상설특검을 도입하는 수단으로 추진한다는 의혹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법률안이 아닌 관계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추천한 특검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수도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근시안적인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 예산심사 법정 기한이 지나도 내년도 정부 예산안 및 예산 부수 법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지 않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 역시 야당 단독으로 의결됐다. 우리나라 국회가 마비되는 대표적인 문제는 헌법상 시한을 넘겨 예산안을 늑장처리하는 행태였다. 이같은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지난 2012년에 입법한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내용이 바로 예산안 자동부의제 도입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국회가 예산심사 기한인 매년 11월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정부 원안과 세입부수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는 현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의 반발로 예산안 통과가 지연되면 중앙정부의 정상적인 예산 집행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적 낭비일 뿐만 아니라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특히 이 법안이 시행되면 예산안 처리 시한을 배수진 삼아 각종 포퓰리즘 예산안을 끼워 넣어 누더기 예산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야당의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 시도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
한마디로 국회법 개정안 시도는 야당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근시안적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런 개정안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다수 의석을 무기 삼아 국회 운영조차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려는 시도를 멈춰야 할 것이다. 최소한 견제와 균형 그리고 협치와 합의의 전당인 국회의 역할과 책무를 훼손해선 안된다. 이런 폭거야말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하는 행태라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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