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현 전국부장
지난 1년간 의대생들은 '휴학'이라는 무기로 정부와 대치했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의대정원 증원 백지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폐기. 정부가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절대 복학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 의대생 토론회에서 77%가 복학 반대표를 던진 것을 보면 그들의 결기가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사태의 본질이 뭔지 실체를 냉정히 들여다봐야 할 때다.
의대생은 집단행동의 이유를 '의료 현장의 붕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뭔가 앞뒤가 안 맞다. 시험공부를 안 하면서 '교육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린다. 의대정원 증원이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집도할 의사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환자 앞에서 "의사가 더 많아져 봐야 소용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대생들의 휴학은 이제 '자해 공갈'이 되어가고 있다. 휴학한 의대생들이 올 3월에도 복학하지 않고 휴학을 이어가면 내년에는 1만명이 동시에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는 의대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망치는 꼴이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가 의대 증설을 위해 투자한 시설과 인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쏟아부은 예산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달 안에 2026학년도 의대정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기존 3058명보다 정원을 줄이는 감원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의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의대와 전공의 수련여건 개선도 지속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여전히 '7대 요구안'을 고수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협상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은 우리 사회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들이 과연 '힘없는 학생'인가, 아니면 '강력한 기득권 세력'인가.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원 증원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정부는 과연 이런 강경한 반발을 진짜 예상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때다. 의대생들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계속해서 휴학을 이어가며 사태를 더 파국으로 몰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 현실적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이는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국민 모두의 문제다. 의대생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민낯을 보여줬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 의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전공의들의 과도한 업무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의대생들의 휴학으로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도 이제는 강경 일변도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대생들의 주장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우려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로베이스'에서의 논의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단순한 '말의 성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의대생들의 휴학 사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대화와 타협에 서툰지를 보여준다. 한쪽은 '무조건 증원'을, 다른 쪽은 '무조건 반대'를 외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제는 양측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서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의료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최선의 길이다. 2월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의대생들은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대생들의 휴학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ahnman@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