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중심으로 자유선임제하 감사보수 대폭 낮춰 제시
중견·중소법인 입장에선 이 이상으로 보수 책정 힘들어
올해 경기 악화 전망, 이 같은 흐름 격화...“업계 수익성 하향”
최운열 한공회장도 “회계업계 어려움 자초하는 일”
연합뉴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감사보수' 인하경쟁 격화로 중소형 회계법인들이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다. 외부감사인 지정제에서 풀린 상장사들은 늘고, 경기 악화 전망은 짙어지면서 대형 회계법인들이 제살깎기식 보수 수수료 인하로 기업 유치를 위한 치열한 물밑경쟁에 나서고 있어서다.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상대적으로 수수료를 더 낮춰야 수주가 가능한 출혈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2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외부감사 주기적 지정제에서 자유선임제로 전환된 상장사들이 늘면서 회계법인 빅4(삼일·삼정·안진·한영)'의 보수 수수료 인하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하지만,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수수료 추가 인하로 수주하기도 어렵지만, 일감을 따내도 출혈이 불가피하다.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6년을 연달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다음 3년 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직접 지정해주는 제도다. 증선위는 앞서 2014~2019년 6년 동안 자유선임을 해온 기업들을 대상으로 처음 2020~2022년 3년 동안 감사인을 지정했다. 첫 주기적 감사인 지정 기업들이 지난 2023년 자유선임제로 전환되기 시작됐다.
이들 '1기' 기업 220곳은 그 이듬해부터 감사인을 자유선임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됐고 회계법인들 역시 해당기업 대상으로 감사보수 인하 경쟁에 나섰다. 2021년 감사인 지정을 받은 기업들은 2024년(434곳), 2022년 지정을 받은 기업들은 2025년(593곳)에 자유선임이 가능해지는 등 순차적으로 경쟁 시장에 고객들이 풀리고 있는 셈이다.
감사인이 지정되는 경우 감사보수는 회계법인과 기업 간 1대 1 협상으로 정해져 굳이 가격을 내릴 동기가 없으나, 자유선임이 되면 회계법인들의 보수 인하를 통한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다.
특히 올해는 빅4들이 지정 감사 보수 대비 30% 이상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이보다 더 낮춘 보수 수수료를 제시해야하는 상황이다.
한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회계법인 빅4가 더 싸게 제안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더 낮출 수밖에 없다"며 "대형 법인은 이미 지정도 비교적 많이 받고 고객도 다수 확보하고 있어 큰 타격이 없지만 중소형 회계법인은 매출에 타격을 받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행태의 원인으로 회계법인 감사부문 내 경쟁 구도가 꼽히기도 한다. 빅4는 모두 총괄대표 등을 필두로 법인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직구조인 '원 펌' 형태이지만 부문 아래 부서별로 수주 실적을 내야하는 탓에 감사보수 등을 일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신 외부감사법 도입 취지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기적 지정 3년 동안은 이른바 '기업에 잘 보이지 않아도 되고', '적정한 감사보수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만 이후 다시 6년간의 자유선임 시기가 돌아오면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한다는 의미다. 과열 경쟁으로 가격이 도로 낮아지면 결국 회계업계 전체 수익성을 깎아먹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빅4도 최근 트럼프 2기 영향 등에 따른 경기 악화로 딜이나 컨설팅 부문 적자가 예상돼 감사 수주를 최대화하려는 입장인 건 이해된다"면서도 "선도 그룹이 업계 중장기적 수익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지정 감사보수 대비 특정 비율 이상으로 금액을 낮추는 경우 다음 주기적 지정 때 지정기업 수를 줄이는 방안 등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신 외감법도 결국 향후 (지정제 없이 감사 계약이) 자율화됐을 때도 회계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구조를 짜는 장치"라며 "보수 과당경쟁은 중장기적으로 회계업계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기업 감사위원회도 감사인 선임 시 가격 항목에 가중치를 높게 두는 현 방식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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