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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외상장부와 신용카드

[기업과 옛 신문광고] 외상장부와 신용카드
당장 현금이 없을 때 우선 물건을 구입하고 나중에 갚는 후불거래인 외상은 1970년대까지도 흔했다. 술집은 물론이고 동네 구멍가게에도 고객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외상장부가 비치돼 있었다. 외상장부에 먹고 마신 음식과 술값이나 구입한 물건 값을 적어놓고 월급을 받으면 갚았다. 외상의 전제조건은 신용과 신뢰였다. 익히 알고 농담도 주고받는 단골손님에게는 스스럼없이 외상을 줬다. 외상 손님이 주인에게 하는 말은 "달아둬"였다.

직장 주변 술집에서 외상으로 술을 마시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많았는데, 월급날이 되면 술집 주인들이 회사 앞에서 진을 치거나 심지어 사무실로 찾아오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8년까지 서울 사직공원 맞은편에서 영업했던 '대머리집' 외상장부는 문화재처럼 남아 있다. '필운동 건달' '대합조개 좋아하는 인(人)'. 장부에는 외상 술을 마신 사람의 이름이 이런 식의 별명으로 적혀 있었다.

신용카드는 제도화된 현대판 외상이다. 신용카드의 개념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생겼다고 한다. 이후 20세기에 접어들어 대량소비 시대가 되자 호텔, 백화점, 철도회사 등이 단골고객에게 크레디트코인이나 크레디트플레이트를 발급, 외상의 증표로 썼다. 판매자가 직접 코인이나 플레이트를 발급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신용카드와는 다르다.

회원과 가맹점 사이에서 제3자가 중개하는 신용카드 거래는 1949년 설립된 다이너스클럽이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업무를 시작한 것이 효시다. 미국 뉴욕에서 식사를 하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지갑을 두고 와 급히 외상을 부탁하는 불편을 겪었는데, 이 불편한 경험이 신용카드를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맥나마라는 여러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을 떠올렸고 다이너스클럽 카드가 탄생하게 됐다.

다이너스클럽 카드는 당시 한국에도 카드 도입을 타진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다이너스클럽에 이어 195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 등이 신용카드업에 진출하고 은행들이 가세해 가맹점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1979년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출범해 신용카드는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거래 수단이 됐다.

국내에서는 백화점에서 가장 먼저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1969년 신세계백화점이 발행한 카드가 최초라고 한다. 1974년에는 미도파백화점도 신용 있는 고객에게 카드를 발급했다. 고객들은 백화점이 발급한 카드로 물건을 사고 다음 달 25일까지 대금을 갚아야 했다. 백화점 고객에 한정된 카드여서 본격적인 카드로 보기는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카드가 일찍 보편화되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좀 더뎠다. 외상 거래인 신용카드가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정부의 인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었을 때니 그럴 만도 했다. 도심지 백화점이나 음식점 정도를 빼고는 거래와 소비가 활발한 시대도 아니었고, 동네에서는 외상으로도 충분히 거래할 수 있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경제 규모가 커진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신용카드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미국 아멕스카드의 한국 대리점인 한국신용카드가 설립됐다. 카세트 라디오와 TV를 생산하던 전자업체 천우사가 세운 기업이다. 천우사의 부도로 한국신용카드는 세종신용카드로 바뀌었다가 삼성그룹에 인수돼 삼성카드가 됐다. 한국신용카드는 삼성카드의 모기업인 셈이다.


코리안 익스프레스도 380여개 가맹점을 가입시켜 신용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고(조선일보 1979년 7월 31일자·사진), 아멕스와 제휴해 외국에서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한보증보험도 600여곳의 가맹점과 계약을 체결하고 신용카드 업무를 개시했다. 1980년에는 옛 국민은행이 카드 사업에 참여했고 이후 BC카드가 설립돼 은행 신용카드 시대가 열렸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