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법인에 매년 5%씩 보복과세
美 세제·재정지출 법안 '899조'
7월 상원 심의 앞두고 긴장 고조
외국기업 법인세 등 인상 가능성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행정부의 무역전략이 '관세 전쟁'에서 '조세 전쟁'으로 옮겨붙고 있다. 이번엔 국제 조세 규범을 무기로 삼아 상대국을 흔드는 방식이다. 핵심은 '섹션 899'로 불리는 세제·재정지출 법안 조항이다. 외국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보복과세를 골자로 한 이 조항이 5월 미 하원을 통과하면서 금융시장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 내국세법에 신설 추진 중인 899조는 미국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조세 제도를 시행 중인 국가나 지역의 개인·법인에 대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보복성 과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외국 투자자가 미국에서 얻는 이자·배당소득에 추가 세금을 매기는 방안이 담겨 있어 월가를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법안은 7월 상원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자·배당에 5%씩 가산세 추진
일본에서는 이미 경계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9일 세계 빅4 회계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일본법인에 따르면 금융기관, 종합상사, 제조업체 등에서 "미국이 정말 시행할 의지가 있는가" "시행 시점은 언제인가" 등의 문의가 급증했다. 현실화될 경우 기존 법인세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899조의 배경에는 디지털세(DST), 글로벌 최저한세(UTPR) 등 국제 조세 개혁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발이 있다.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외국 과세에 보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안을 통해 이를 구체화했다. DST는 유럽 중심으로, UTPR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입법이 확대되고 있으며 일본도 포함된다.
899조의 핵심은 △외국법인이 미국에 지점을 둘 경우 법인세율을 매년 5%p씩 최대 20%까지 가산 △외국 투자자의 미국 내 배당·이자 소득에 대해 원천징수세율을 매년 5%p씩 인상 △기존 기초침식방지세(BEAT) 과세 항목에 원료·제품 대금까지 포함 등 세 가지다.
특히 두 번째 조치는 해외투자자의 수익률을 직접 건드리는 만큼 민감하다. 미국 국채 수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도이체방크는 "무역전쟁이 자본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행보다 협상용 카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대미 투자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세 가지 조치 모두 잠재적 부담 요인이다. 일본의 경우 내년 4월부터 UTPR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시점이 실제 과세의 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단순히 세수 확보가 아니라 미국에 유리한 국제 조세 규칙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용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관세 협상에서 상대에 고율 관세를 예고한 뒤 양보를 끌어냈던 전례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다만 상원 심의 과정에서 조항이 수정되거나 삭제될 여지도 있다. '포트폴리오 이자'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처럼 불확실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 방향 자체가 문제"라며 "미국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려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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