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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자대표가 접대부 부르고 양주로 관리비 펑펑"...대법 "명예훼손 아냐"

횡령 의혹 불거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비난글 게시
1·2심 벌금 30만원…대법서 파기환송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접대부 부르고 양주로 관리비 펑펑"...대법 "명예훼손 아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횡령 의혹이 불거진 아파트 입주자대표를 비판하는 내용을 현수막 등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더라도, 내용이 사실이고 공익 목적이라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각각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산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인 A씨는 지난 2020년 3~4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C씨가 운영비를 불법, 부당하게 지출하는 등 위법사항이 있다는 내용의 감사보고서를 게시했다. 이에 A씨를 포함한 일부 입주민들은 C씨에 대한 해임을 요청하고, 업무상 횡령으로 고소했다.

A씨와 B씨는 '회장님께서 입주민들을 속이고 다수의 유흥업소 드나들었다', '접대부를 부르고 양주를 마시면서 우리의 피 같은 관리비를 법과 규약을 어기면서 물 쓰듯 펑펑 썼다'는 내용이 기재된 현수막을 설치해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를 받았다.

B씨는 아파트 로비에 TV 모니터 화면을 통해 '미쳤구나 입주자대표회장', '당신에겐 회장이란 말 쓰기도 부끄럽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한 혐의 등도 적용됐다.

1심은 A씨와 B씨에게 각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비의 횡령 여부가 쟁점이었다면 아파트 입주자들을 상대로 적절한 수준의 의견 표시는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횡령 피해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한 점, 미성년자들도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굳이 접대부 관련한 부분을 강조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거나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당행위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심도 유죄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설치한 현수막과 모니터에 기재된 글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므로, 글의 중요한 부분이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를 임의로 사용한 피해자가 회장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부당하고, 피해자의 자진 사퇴를 통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정상화를 도모해 입주민 공동의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피해회복을 위한 정당한 조치를 취한다는 이유로 현수막 등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주된 의도와 목적의 측면에서 공익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원심은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문제 삼았지만, 대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라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할 자질과 도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다소 과장된 감정적 표현이나 의견 표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봤다.

한편 C씨는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 등을 횡령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