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감당도 벅찬데, 정년은 늘리고 일하는 시간은 줄인다뇨. 이건 문 닫으라는 거죠."
경기 화성시에서 반도체 부품을 제조하는 김모 대표는 30일 고용노동부의 정년연장 추진 소식을 접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60대 이상 생산직 채용이 쉬운 줄 아느냐"며 "업무 강도도 감당 못하는 상황에서 법으로 고용하라고 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사장 몫"이라고 토로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한 달을 맞아 정년 65세, 주 4.5일제 등 '친노동' 공약 실현에 속도를 내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현장에선 이처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정년연장 법 개정 △주4.5일제 입법 추진 △초단시간 근로자 권리 보장 등을 포함한 노동정책 방향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소득 단절 예방 등의 명분이지만 수용 역량이 부족한 영세업체엔 '현실성 없는 선언'이란 반응이 뒤따른다. 정년연장은 기업 인건비 증가와 직결된다. 서울 금천구에서 기계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임모 대표는 "현장직은 60세 넘으면 대부분 재배치 대상"이라며 "법으로 떠넘기기보다 고령자 재취업이나 훈련 중심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주 4.5일제 추진도 업종 특성상 도입이 쉽지 않다. 정부는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주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줄이고, '실근로시간 단축 지원법(가칭)' 제정을 예고했다. 그러나 중소기업계는 시간을 줄여도 임금은 보전해야 한다는 공식은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한다.
경북 경산시에서 차량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주 6일을 일하라고 해도 힘든데 (주 4.5일제는) 놀자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며 "정책 만드는 분들이 반도체·자동차 라인이 365일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와서 봤으면 한다"고 했다.
최근 논란이 커진 초단시간 근로자(주15시간 미만) 권리 확대 방안도 고용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가 이들에 대해 주휴수당, 연차유급휴가, 공휴일 유급휴일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 운영자는 "하루 3시간씩 일하는 알바생에게도 주휴수당을 주면 사실상 시급이 1만5000원이 넘는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알바를 안 쓰는 게 낫다"고 했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고용노동부 장차관 후보자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고용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훈 후보자는 노동계 등에서 주 4.5일제, 정년연장 도입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은 디지털 전환과 저출생, 고령화 등 인구 변화, 노동력 변화 등 우리 앞에 닥친 위기를 돌파할 유력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들이 소득 보전과 고용 안정에 기여한다고 강조하지만, 현장에선 정책 간극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년연장이나 주 4.5일제 모두 대기업·정규직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2차 노동시장의 현실은 외면당하고 있다"며 "현장의 유연성과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정책이 양극화만 키우고 청년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jimnn@fnnews.com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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