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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필리핀 청년 간이식으로 생명 살려

필리핀 청년 살린 아산병원 '의술'
현지서 첫 생체 간이식 수술 진행

서울아산병원, 필리핀 청년 간이식으로 생명 살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간이식·간담도외과 김기훈·안철수·김상훈 교수, 마취통증의학과 송준걸·권혜미 교수, 수술간호팀)이 지난 달 18일 필리핀 마카티병원에서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하고 필리핀 현지 의료진과 함께 수술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한국의 생체 간이식 기술이 희귀질환으로 생명을 위협받던 필리핀 청년에게 기적을 선사했다.서울아산병원은 간이식팀은 지난달 18일, 간이식 수술 경험이 전무했던 필리핀 마카티병원에서 첫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한-필리핀 의료협력의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15일 밝혔다.

수술을 받은 이는 올해 23세인 프란츠 아렌 바바오 레예즈 씨로, 4년 전부터 난치성 간질환인 원발성 경화성 담관염을 앓아왔다. 최근에는 패혈증까지 겹쳐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생존을 위해선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던 상황이었다.

환자의 어머니 마리아 로레나 멘도자 바바오 씨는 과거 복부 총상으로 장천공 수술을 세 차례나 받은 이력이 있었지만 아들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간 일부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고난도 수술이 요구되는 이식 수술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김기훈·안철수·김상훈 교수와 마취통증의학과 송준걸·권혜미 교수, 수술간호팀이 현지 의료진과 함께 11시간에 걸쳐 진행했으며, 수술 후 환자와 기증자 모두 안정적인 회복세를 보여 최근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번 수술은 마카티병원 개원 56년 만에 시행된 첫 생체 간이식이다. 특히 기증자인 어머니의 복부 유착이 심한 상황에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복강경 대신 개복 절제술을 선택해 간을 안전하게 채취했다.

수술 당시 환자의 간은 담관 염증과 협착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상태였고, 간 외 담관까지 제거하고 이식 간의 담관과 소장을 직접 연결해 재건하는 고난도 수술이 이뤄졌다.

서울아산병원과 마카티병원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 병원은 2023년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필리핀 의료진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기술 협력을 이어왔다.

서울아산병원은 마카티병원 의료진 9명을 초청해 간이식 관련 전 과정을 연수시켰고, 2024년 10월에는 김기훈 교수가 현지에서 직접 간담도 및 간이식 세미나를 열어 임상 노하우를 공유했다.

마카티병원은 간이식 수술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필리핀은 인구 백만 명당 장기 기증자가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장기이식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아산병원은 필리핀의 의료 자립을 돕기 위해 간이식 전 과정을 전수하며 수술 장비 지원 등도 추진하고 있다.

프란츠 씨는 “건강이 점점 악화되며 절망 속에 있었지만,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수술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멀리 와 생명을 살려주신 의료진에게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기훈 교수는 “기증자인 어머니의 과거 수술 이력으로 수술 난이도가 매우 높았지만, 가족의 헌신에 보답하고자 책임감을 갖고 수술에 임했다”며 “이번 수술은 기술을 넘어 생명을 나누는 협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에도 마카티병원이 간이식 수술을 자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장비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생체 간이식만 7563례를 시행했으며, 올해 5월 기준 뇌사자 간이식을 포함해 총 9000례를 돌파, 단일 기관 기준 세계 최다 간이식 수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형 간이식 시스템의 세계화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필리핀 간이식 수술은 단순한 의료 기술 수출을 넘어 ‘의술을 통한 생명 연대’의 실현으로 평가된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