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초간본
[파이낸셜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을 계기로 남북한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갖자고 지난 25일 취임식에서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취임사에서 남북간의 대화가 중단된 6년이 너무 길었고 남과 북 모두에게 피해와 후퇴를 안겨준 어리석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1991년 보수정부 아래서 맺었던 기본합의서에서 약속한 대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평화공존의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00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그리고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장관은 취임사 말미에 "올해 12월 26일은 시인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펴낸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라며 "이런 경사를 남과 북이 함께 누려야 되지 않겠나"라며 진달래꽃 100년 공동행사를 제안했다.
김소월은 윤동주 시인과 함께 남북한에서 모두 사랑 받는 대표적인 문학인중 한명이다. 다만 남한이 김소월을 전통적 서정, 낭만, 민요 율격의 시인으로 보는 것과 달리, 북한은 인민성, 애국주의, 민족적 형식을 더 강조해 해석한다는 점이 다르다.
해방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김소월은 북한에서 '비판적 사실주의' 시인으로 평가됐다. 사회주의에 미치지 못한 이념적·계급적 한계가 있는 작가라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1960년대 중반 이후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KAPF) 계열 문인들과 함께 한동안 북한 문학계에서 김소월이 배제되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김소월과 카프 문학인들을 다시 복권 시켰다. 국가·민족주의적 이념에 맞는 민족문학유산의 한 인물로 김소월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김소월 시인의 대표작인 진달래꽃도 북한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진달래는 북한에서 국화인 목련 이상으로 위상이 큰 꽃이다. 진달래는 김일성이 항일 무장투쟁을 할 때 조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다는 전승이 있다. 1939년 만주에서 조국으로 들어올 때 진달래가 핀 풍경이 혁명 대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는 진달래가 조국의 광복과 새 국가 건설의 염원과 연결된다. 진달래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김정숙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북한의 시와 문학에서는 진달래를 단순한 자연이나 이별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정치적 의미와 연계하여 묘사하는 경향이 강하다.
김소월은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문학 활동은 주로 남한에서 했다. 김소월은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나 남산학교, 오산학교 등 평안북도 지역 학교에서 학업을 했으며, 3·1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폐교되면서 남한 경성의 배재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 졸업했다.
1923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한 뒤, 서울에서 주로 문학활동을 했다.
김소월의 무덤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 진달래봉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첫날인 25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을 찾아 남북직통전화를 점검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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