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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미생물'이 단서, '파킨슨병' 조기 진단 가능성

렘수면 행동장애 동반 여부 따라 장내 세균 환경 확연히 달라

[파이낸셜뉴스]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과 경과 예측에 장내 미생물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잠꼬대, 발차기 등 격렬한 행동을 동반하는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환자들은 초기부터 장내 환경이 악화돼 있어 발병 경로에 따른 차별화된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장내 미생물'이 단서, '파킨슨병' 조기 진단 가능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정선주 교수가 파킨슨병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25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신경과 정선주·조성양 교수 연구팀은 파킨슨병 환자 104명과 대조군 85명을 대상으로 렘수면 행동장애 유무와 질병 진행 단계에 따른 장내 미생물 변화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IF=12.7)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파킨슨병 진단 전부터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환자들은 아커맨시아(Akkermansia), 에쉬리키아(Escherichia) 등 장 점액층을 분해하고 염증을 유발하는 유해균 비율이 높았다.

반대로 장벽을 보호하는 유전자 발현은 현저히 낮아 세균이 장벽에 쉽게 달라붙고 염증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이런 미생물 환경은 병이 진행돼도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파킨슨병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가 없던 환자들은 초기에는 대조군과 유사하게 프레보텔라(Prevotella), 파칼리박테리움(Faecalibacterium) 등 유익균이 풍부했다.

그러나 진단 2년 후에는 장내 세균 구성이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군과 비슷해졌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뇌보다 장에서 먼저 병리적 변화가 시작되는 ‘장-우선형’ 파킨슨병 발병 경로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 대상자들의 식이섬유 섭취량이 하루 평균 34~36g으로 권장량(25g)을 훨씬 웃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장내 불균형이 나타났다. 단순한 식이 조절만으로는 미생물 균형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 교수는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초고령화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초기 증상이 노화와 유사해 발견이 쉽지 않다”며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이 파킨슨병 조기 진단의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결과”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렘수면 행동장애 유무에 따라 장내 환경이 극명하게 달랐다”며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치료 전략을 마련한다면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파킨슨병의 발병 경로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고, 향후 질병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하는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