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투자와 예고보다 낮은 무역장벽 덕분에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하다는 평가다.
다만 관세 인상이 물가와 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해 성장세를 다시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3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OECD는 2일(현지시간) 발표한 글로벌 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2%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2024년) 3.3%보다는 소폭 낮지만, 지난 6월 내놨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 2.9%에 비해선 상향 조정된 수치다. OECD는 내년 세계 성장률이 다시 2.9%로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성장 전망도 올라갔다. OECD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을 2.0%로 예상했다. 6월 전망(1.6%)보다 0.4%p 올린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2.8% 성장에 비해서는 상당 폭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역장벽과 정책 불확실성이 누적되는 가운데, 미국 경제가 '턴다운(성장 둔화)'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백악관에 복귀한 뒤 미국 무역정책을 전면 손질해 왔다. 이전까지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미국 경제에 보호무역 장벽을 세우겠다며 수입품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고, 사실상 '관세 장벽'으로 둘러싸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시장에선 이런 무역장벽이 성장 둔화와 비용 상승을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이번에 실제로 적용된 관세 수준은 트럼프 대통령이 봄에 위협적으로 예고했던 수준보다는 낮게 나왔다. 상당수 기업들이 관세 발효 전에 미리 해외 물품을 미국으로 들여와 재고를 쌓는 방식으로 충격을 완화한 것도 성장 하방 압력을 일부 완충한 요인으로 꼽힌다.
AI 투자 붐도 트럼프발 무역충격을 덜어주는 버팀목이다. OECD는 미국과 세계 경제가 대규모 인공지능 인프라 및 관련 설비투자로부터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AI 칩 등에 대한 민간 및 공공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무역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일정 부분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티아스 코르만 OECD 사무총장은 전망 보고서에 부착한 논평에서 "무역장벽 강화와 상당한 정책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회복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관세 인상은 점진적으로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소비와 기업 설비투자 증가율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중기적으로는 성장 둔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국가별로는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의 성장세가 여전히 두드러진다. OECD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이 올해 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20개국(유로존)은 내년(2025년) 1.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는데, 전년(0.8%)보다는 다소 나아지지만 여전히 '부진한 확장'에 머무를 것이라는 평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형 경제로 떠오른 인도는 올해 6.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6.5%에서 다시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중국이 관세와 수요 부진 여파로 성장세 둔화를 겪는 사이, 인도가 '세계 성장의 엔진'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OECD는 보고서에서 "전반적으로 세계 경제는 예상 외로 견조하지만, 높은 관세와 지정학적 긴장, 정책 불확실성이 누적되면서 앞으로의 성장 경로는 여전히 취약하다"며 "각국 정부는 보호무역 장벽이 중장기적으로 성장과 생활수준을 저해하지 않도록 정책 설계를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마티아스 콜만 사무총장이 2022년 11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7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내구성이 입증됐다며 올해 세계 및 미국 경제성장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사진=뉴시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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