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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 케이크 구매가 '한심하다'구요?…추억이 됐습니다 [기사 ASMR]

성심당 케이크 구매가 '한심하다'구요?…추억이 됐습니다 [기사 ASMR]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딸기시루가 출시된 지난 23일 대전 중구 성심당 일대에 빵을 사려는 고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기사를 읽고 나면 뒤끝이 남거나,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험들 있으신지요. [기사 ASMR]은 현실의 독자와 모니터 안 기사가 상호작용하는 혼합현실(MR)처럼 '보도 이후', '보도 덕'에 달라진 이야기를 애프터서비스(AS)하듯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을 추구하는 기사,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에이(A).에스(S).엠(M).알(R).'

[파이낸셜뉴스] 신새벽에 일어나 아침 5시 58분 KTX 열차를 타고 갈 때만 해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양손에 케이크를 들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성탄절인 25일 이틀간 경험을 통해 그 생각을 바로 잡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사 AS는 지난 23일 3시간 23분의 기다름 끝에 대전 성심당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케이크를 구매한 기자 개인의 취재 뒷 이야기입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과 함께.

출발할 때 '그 생각'

네이버를 통해 달린 기사의 댓글은 27일 현재 89개입니다. 놀랍게도 댓글들은 성심당 케이크를 구매해 이틀간 주변 사람들과 케이크를 나누고 경험하며 달라진 감정선을 따라간 듯 합니다.

'[현장] 알레르기에도 성심당 '딸기시루' 오픈런한 이유…궁금해서' 2025년 12월 23일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453268?sid=101

취재의 출발점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라는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기사 댓글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런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기줄에 선 이들을 '거지', '중국인', '노예'라는 표현을 써가며 몰아가거나 집단적으로 바다나 절벽에 떨어져 자살하는 '레밍스'에 빗댄 것도 여기서 비롯한 듯 합니다. 대기하는 행동 자체를 '미개하다'거나 '냄비근성'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지가지 한다', '시간 안 아깝냐', '안 먹으면 죽냐'며 한심하게 평가하는 글들도 꽤 많습니다.

고백하자면, 줄 서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취재 때문'이라는 자기 위안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달라졌다 '그 생각'

성심당 케이크 구매가 '한심하다'구요?…추억이 됐습니다 [기사 ASMR]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딸기시루가 출시된 23일 대전 중구 성심당 일대에서 케이크를 구매한 고객들이 맛을 보고 있다. /사진=뉴스1

'대부분'이라는 시간의 한계를 둔 이유는 있습니다. 대기줄에 서 있던 시간이 지날 수록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줄 서 있는 사람들과 일면식도 없는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묘한 전우애를 느꼈습니다. 줄을 서게 된 각자의 사연도 소중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70대 남성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오는 손녀를 위해 대기줄에 섰습니다.
이 남성은 "살면서 뭘 먹으려고 줄을 서는 건 처음"이라며 "손녀가 한국 오기 전부터 여기 얘기를 하길래 왔다"고 기대감을 전합니다.

대기 자체를 즐거운 경험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은주씨 얘깁니다. 남씨는 "대전에 사는 사촌 집에서 하루 전에 와서 자고 여기 같이 왔다"고 말합니다.

기사 댓글에도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게 재미'라는 말,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댓글과 일맥합니다.

"한심하게 안 보인다"며 '한심하다'는 부정적 댓글에 대신 옹호해 주는 댓글은 묘한 위로가 됩니다.

이 네티즌은 "줄 서는 것도 재미고 추억이다. 매일 저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한 번쯤 줄 서서 즐겁게 케이크 사서 들고 가는 발걸음도 다 추억이 된다"고 응원합니다.

성심당 케이크 구매가 '한심하다'구요?…추억이 됐습니다 [기사 ASMR]
23일 저녁 서울행 기차 화물칸에 줄지어 올려진 성심당 보냉백과 쇼핑백. /사진=서윤경 기자

서울행 기차의 화물칸에 나란히 올려진 성심당 보냉백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듯 합니다.

'샀다'는 성취감은 나눔의 기쁨까지 줍니다. 두 개의 케이크 중 하나는 24일 회사 동료와 다른 하나는 25일 가족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케이크를 포장 박스 안에서 꺼내는 순간 환호성과 함께 모두가 카메라를 꺼냅니다. K-회식의 정점을 찍는 시간이었습니다. 먹는 내내 대기줄에 선 걸 무용담처럼 말하고 모두가 웃습니다.

또 다른 댓글 "새벽에 빵 사러 줄서는 거 자체가 추억이고 어렵게 구한 거, 가족이 맛있게 먹고 나~중에 빵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줄섰다고 추억삼아 얘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이 바로 실현되는 듯 합니다.

이쯤되면 가성비에 가심비 모두 최고입니다. 한 사람 고생해서 모두가 행복하니까요.

"도대체 왜"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취재는 행복을 추구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인정해 주는 경험으로 마무리 되는 듯 합니다.

악플을 가장한 선플

비난의 '악플'이 의도와 달리 칭찬이 되는 놀라움도 경험합니다.

"대전 사는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신드롬", "(줄을 서는) 저 짓거리하는 인간들 100% 타지인들"이라는 댓글은 성심당 덕에 외지인들이 대전을 찾아 돈을 쓰고 간다는 말로 풀이됩니다. 말 그대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는 뜻이겠지요.

지하상가에 줄 서 있을 때 상점 주인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말이 들려왔지만, 대기 중 문을 연 지하상가 상점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고 비가 오니 우산을 사기도 합니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교대로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댓글도 눈길을 끕니다. "외국인들은 서울로 출발하는 KTX를 타면 부산역에선 피자 냄새가 나고 대전역에서 정차했다 출발하면 빵 냄새가 그렇게 난다고 하더라. 부산에선 이재모 피자 사들고 대전에선 성심당 빵 사들고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글입니다.

지역 특산품인 성심당이 외국인 관광객을 유입한다는 뜻이겠지요. 대기줄에서도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왔다는 리아씨(성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는 "유튜브에서 보고 찾아왔다. 운 좋게 오늘부터 케이크를 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겁다"면서 "케이크는 서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 때 여행 동료들과 나눌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섭취 후기

성심당 케이크 구매가 '한심하다'구요?…추억이 됐습니다 [기사 ASMR]
어둠이 걷히지 않은 23일 이른 아침, 케이크 구매를 위해 대전 중구 성심당을 찾아가는 길. /사진=서윤경 기자

고생한 게 아까워 알레르기를 무릅쓰고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지금도 몸은 고생하고 있지만, 맛이 주는 행복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즐거움은 따로 있습니다. 케이크 두 개로 행복을 공유한 20명에 가까운 이들입니다. 그래서 취재로 시작한 케이크 구매는 '성공'입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