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과 증시 호조세가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효과가 과거에 비해 약해지고 있다고 한은이 분석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오르면 소비가 연쇄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기 회복의 경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연결 고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과거 회복기에 비춰본 현 소비국면 판단과 전망’ 보고서에서다. 한은은 누적된 금리 인하 효과와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 주식시장 및 소비심리 개선 등이 향후 소비 회복을 뒷받침할 요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리 경제가 과거보다 더 큰 구조적 취약성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연 수출 7000억달러 돌파와 코스피 6000시대에도 소비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출과 자산시장 호조가 소비 확대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산업 간 불균형 문제가 있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기술(IT) 분야와 비IT 분야 간 성장 속도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과 임금 격차가 확대됐다. 반도체 중심 성장의 과실은 산업 구조상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고소득층은 이미 소비 수준이 높아 소득이 증가해도 추가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수출 증가가 곧바로 내수 확대로 연결되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 주가 상승의 혜택 역시 상당 부분 고소득층에 돌아갔다.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자산 보유 비중이 높은 계층의 한계소비성향은 0.8%로 전체 평균을 밑돈다.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욱이 주가는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등락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 증시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게 상승한 만큼 대내외 충격 발생 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자산 가격 상승에 기대 소비 회복을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는 수출과 자산가치 상승이 실물 소비로 확산되는 경로 자체가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수출이 늘고 자산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소비가 즉각 살아나는 시대는 지났다. 이는 단순히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성장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결과다. 특정 산업과 일부 계층에 이익이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거시 지표가 개선돼도 중산층과 서민 가계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미래 소득에 대한 확신이 약하고 부채 부담이 큰 상황에서 가계는 소비보다 저축과 부채 상환을 택할 수밖에 없다.
소비 부진이 지속되면 경제 전반의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요가 부진하면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이는 고용 위축과 가계소득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내수가 약한 경제는 대외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소비 둔화는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인 것이다.
과거에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투자와 소비가 확대되고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으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작동했다. 이런 메커니즘은 이미 크게 약화됐다.
정부는 성장의 과실이 자산 축적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소비와 내수 확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구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출과 자산시장 호조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는 구조를 개선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기업의 성장이 임금과 고용 증가로 연결되고, 그 결과 소비가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를 복원할 때 수출과 증시 호조도 비로소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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