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 간 기자, 현장에서 전쟁 소식
교민들과 탈출 고민...유럽 돌아 무사귀환
이집트 카이로공항의 에미리트항공 창구는 오후 11시 50분 두바이행 티켓 발권을 위해 창구가 열렸지만,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로 옆 오후 11시 40분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스페인 저가항공사 부엘링항공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사진=서윤경 기자
기사를 읽고 나면 뒤끝이 남거나,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험들 있으신지요. [기사 ASMR]은 현실의 독자와 모니터 안 기사가 상호작용하는 혼합현실(MR)처럼 '보도 이후', '보도 덕'에 달라진 이야기를 애프터서비스(AS)하듯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을 추구하는 기사,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에이(A).에스(S).엠(M).알(R).'
[파이낸셜뉴스] 이집트 여행자는 어쩌다 탈출자가 됐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생한 일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대규모 대(對)이란 군사작전을 감행했고 이란은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카타르 도하, 바레인 마나마 등 중동 곳곳 미군 거점을 동시다발로 타격하며 보복에 나섰습니다.
전 세계는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유가가 급등했으며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전 세계 증시는 출렁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중동 국가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전쟁의 한 가운데 있게 됐고 중동 국가를 여행하거나, 중동 국가를 경유해 여행에 나선 여행자들도 하늘길이 막히면서 피해 당사자가 됐습니다. 기자도 그 충격의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동 국가를 경유해서 간 이집트에서, 대탈출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지금, 그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부러움‘이 ’걱정’으로 바뀐 카톡
“괜찮니.” “문제없는 거지.”
여행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카카오톡에 갑작스럽게 안부를 묻는 메시지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지인들의 메시지였습니다.
북아프리카 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이집트는 아랍·이슬람 세계와 중동을 이끄는 전략적 요충지인데다 미국과는 중동 안정을 위한 협력파트너 역할을 해 왔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습니다. 여기에 이란의 공격 타깃 중 하나인 도하를 거쳐가는 카타르 항공을 이용했으니 우려는 더 커졌을듯 합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사실 몰랐습니다. 뉴스를 챙겨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행지는 평화로웠습니다. 관광지는 여행객들로 북적였고 현지인들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사흘 째 되던 날, 모두가 애써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은 여행사가 급하게 항공편을 바꿨다고 알려줬습니다.
A씨는 “에미리트 항공을 타고 두바이를 거쳐 왔다. 내일 출국인데 영공이 폐쇄돼 터키항공으로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90만원 항공권…5분 뒤 220만원
이스라엘에 체류하던 한국인 중 일부가 지난 3일 외교부와 대사관의 도움으로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넘어왔다./사진=이집트 한인회 제공
그제야 '플랜B'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타르 교민들이 만든 오픈 채팅방을 찾아 들어가는 순간, ’혼자‘만 평화로웠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미 1300여명이 들어온 채팅방엔 "조금 전 펑 소리가 들렸다", "경보 문자가 왔다" 등 현실감 떨어지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도하에서 경유하려다 때마침 영공 폐쇄로 발이 묶인 여행자들의 생생한 경험담도 있었습니다.
▶ [카이로 르포] "싼맛에 탔다가 발묶였어요"..중동항공사 여행객 300만원 더주고 항공사 변경 2026년 3월 3일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5485683?type=journalists
일단 여행자이지만, 현지 상황을 알려야겠다 싶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체류하던 한국 교민과 여행자들이 대사관의 협조를 받아 이집트로 건너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집트 한인회, 이스라일 한인회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고 할 일을 했습니다.
기사를 마감하고 나니 ‘나는?‘이라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때마침 미 국무부가 중동 14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에게 즉시 떠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집트도 이들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출애굽 계획에 들어섰습니다. 오픈 채팅방에 공유된 중동 국가 탈출 방법을 보면 먼저 항공기가 뜰 수 있는 나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한국 직항이 있는 튀르키예, 중국, 그리고 유럽으로 가는 게 첫 과제였습니다.
그나마 이들 나라로 갈 수 있는 이집트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영공이 폐쇄된 도하나 두바이에 있는 이들은 항공기가 뜨는 나라로 가기 위해 육로 이동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온 한국 교민과 여행객들도 20시간 가량 버스를 달려 국경을 넘어야 했습니다.
티켓팅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한정된 여행 예산, 휴가 날짜를 지켜야 하는 시간적 압박 등 고려할 게 많았습니다.
카이로에서 중국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가는 직항은 400만원을 훌쩍 넘겼고 튀르키예로 가는 터키항공도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은 건 유럽으로 가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는 비용 부담이 커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항공권은 네트워크 불안정으로 예매에 실패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이집트 카타르에서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 인천으로 향하는 항공편의 취소를 알리는 화면. /사진=티웨이·카타르항공 홈페이지 캡처
대신 인천으로 직항하는 해외 항공사들을 검색했습니다. 네덜란드의 KLM, 프랑스의 에어프랑스와 독일의 루프트한자, 폴란드의 LOT폴란드까지 모두 검색해 봐도 조건에 맞는 건 없었습니다.
유럽 직항에 활발히 나선 우리나라 저가항공사(LCC)가 떠올랐습니다.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검색하니 가까운 날짜는 이미 매진됐고 그나마 9일 자리가 있었습니다. 가격도 훌륭했습니다. 90만원.
휴가는 인천 도착인 10일 하루만 연장해도 되고 가격 부담은 적으니 이만한 조건도 없었습니다. 서둘러 결제에 들어갔습니다. 잘 넘어가던 결제 창이 순간 먹통입니다.
한 번, 두 번…. 남은 좌석은 세개 뿐이라 마음은 급한데 결제는 되지를 않습니다. 세 번째 재시도, 5분만에 세 개의 좌석이 모두 팔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좌석의 가격은 220만원으로 달라져 있었습니다. 130만원이 훌쩍 뛴 겁니다.
12일 120만원짜리 티켓은 있지만, 휴가 기간의 한계가 있어 과감히 포기합니다.
이제 스페인 바르셀로나입니다. 9일, 같은 날 출발하는 항공권 가격이 2만원 부족한 200만원입니다. 이미 220만원을 본 터라 이마저도 고맙습니다.
결제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대신 구매를 부탁했습니다. 역시 온라인 강국입니다. 금세 결제가 완료됐습니다.
결제 이틀 뒤 카타르항공사에선 한국으로 들어가는 항공편 취소를 알렸습니다.
각자 방식으로 나선 탈출
드디어 3월 7일 밤 11시 45분.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왔습니다. 스페인행 부엘링 항공을 타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 옆 같은 날 11시 50분 두바이로 가는 에미리트 항공 창구엔 사람이 없습니다.
발권을 마치고 면세 구역에 들어서니 한국분들이 꽤 보입니다. 카페 매장에서 만난 30대 한국인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들의 행선지를 알게 됐습니다. 아내와 함께 개인 여행을 왔다는 이들은 에티하드 항공을 이용해 이집트에 왔고 이제 아부다비로 간다고 했습니다.
아부다비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알려줬습니다. 바로 중동 사태 여파로 UAE에 체류하던 국민을 위해 우리 정부가 마련한 전세기입니다.
전세기는 한국시간 8일 오후 5시 35분 아부다비 공항에서 출발해 9일 오전 1시 29분께 인천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운항은 에티하드항공이 했습니다. 이 전세기에는 한국인 203명과 영국·프랑스·캐나다 국적의 외국인 배우자 3명 등 총 206명이 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증환자, 중증장애인, 임산부와 고령자, 영유아와 이들의 필수 동행인원 등을 중심으로 선별했다고도 했습니다.
외교부는 전세기 탑승객에게 통상 발생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항공료를 사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가격은 공유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가격은 150만원으로 알고 있다. 인원을 선별한 뒤 남은 좌석은 추첨 방식으로 정했다"며 "내가 운 좋게 됐고 아내는 가족이라 같이 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저희와 같이 가는 단체 여행객은 50여명 정도 되는데 그 분들 중 전세기에 타시는 분은 5명 뿐”이라며 "아부다비에서 무작정 대기하는 분도 있고 네 번 경유해서 가는 분도 있다더라"고 했습니다.
작별을 고하며 출애굽을 위해, 각자의 게이트로 향합니다. 그리고 10일 오후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하며 출애굽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중동국적기는
여행 후 이렇게 변수가 많은 중동 지역을 경유하는 중동국적기를 앞으로 이용할 수 있겠냐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일단 저렴합니다. 지금도 포털이나 항공권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가격순으로 검색하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건 이들 항공사들입니다.
고백하자면, 이번에 한국 국적의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면서 중동항공사의 경쟁력만 확인한 거 같습니다. 인천에서 도하를 거쳐 카이로를 가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제공된 헤드셋으로 못본 영화를 보거나, 기내 와이파이로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기내식에 간식도 틈틈이 제공됐습니다.
그러다 피곤하면 항공사에서 준 안대와 이어플러그를 착용하고 편하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저가항공사에선 모든 게 없었습니다. 와이파이는커녕 헤드셋도, 기내 엔터테인먼트도 없었습니다. 화면엔 좌석 조명 스위치나 승무원 호출 벨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덕분에 드는 생각, 부디 ’전쟁‘의 위험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마음 편히 어느 나라건 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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