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화' 외치는 김부장 vs '복지 형평성' 따지는 이사원
오피스 덮친 '비혼 지원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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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부장님, 저 다음 달 첫째 주에 5일 유급휴가 쓰겠습니다. 사내 게시판에 '비혼 선언문' 올렸으니 결재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3월의 셋째 주 금요일. 영업팀 김 부장(49)은 이 대리(34)가 내민 휴가원과 복지 지원금 신청서를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내 복지 규정이 개정되면서 만 33세 이상 미혼 직원이 비혼을 선언할 경우, 기혼자와 동일하게 기본급 100%의 축하금과 5일의 유급휴가를 주기로 한 제도를 이 대리가 부서 내 1호로 신청한 것이다.
김 부장은 "저출산 시대에 회사가 가족 친화 경영을 해도 모자랄 판에, 결혼 안 하는 걸 훈장처럼 여기냐"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 대리의 표정은 단호했다.
대한민국 오피스는 지금 '정상 가족'을 전제로 설계된 낡은 복지 시스템과 '1인 가구'의 형평성이 정면충돌하는 새로운 전쟁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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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이 벼슬입니까" vs "저출산 시대의 이기적 행태"
사내 복지를 바라보는 두 세대의 시각차는 좁혀지기 힘든 평행선이다. 김 부장을 비롯한 기성세대 관리자들에게 기업의 복지는 '가족의 부양과 재생산'을 돕는 일종의 사회적 책무이자 시혜적 지원이다. 따라서 결혼 축하금, 가족수당, 자녀 학자금 등은 조직의 안정성을 높이는 당연한 투자로 여겨진다.
반면 이 대리로 대변되는 MZ세대 1인 가구의 셈법은 철저히 '노동의 대가'와 '형평성'에 맞춰져 있다. 이들에게 회사의 복지 기금은 임직원 모두가 창출한 이익을 기반으로 한다.
기혼자들이 출산과 육아 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때 그들의 업무 공백을 묵묵히 메우는 것은 결국 미혼 동료들이다.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기혼자 중심의 복지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축의금만 내며 수백만 원을 뜯기는(?) 구조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확고한 논리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본문의 구체적 내용과는 무관함.뉴시스
◇ 1인 가구 700만 시대… 대기업부터 번지는 '비혼 복지' 트렌드
이러한 반발은 단순히 MZ세대의 이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흐름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전체 가구의 34%를 넘어서며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노동 시장의 핵심 인재로 떠오른 이들을 잡기 위해 선도적인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선언적으로 비혼 지원금 제도를 도입해 화제를 모았고, 롯데백화점, NH투자증권, SK증권 등 대기업과 주요 금융권 역시 일정 연령과 근속 연수를 충족한 미혼 직원에게 기혼자와 동일한 축하금과 휴가를 지급하는 제도를 잇달아 신설했다.
임직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미혼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조직의 사기와 생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경영진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뉴스1
◇ '재생산'에서 '라이프스타일 존중'으로… 임금 패러다임의 전환
조직문화 전문가와 사회학계는 이러한 비혼 복지 논란을 임금과 보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기로 분석한다.
과거 고성장기의 기업 복지가 직원의 가정을 돌보며 평생직장을 약속하는 '온정주의적 수단'이었다면, 평생직장 개념이 소멸한 현재의 복지는 철저히 '개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형평성'의 영역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국가가 해결해야 할 저출산 문제의 책임을 기업의 복지 예산과 미혼 근로자의 희생으로 돌려막던 관행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늘도 사내 메신저로 날아온 동료의 모바일 청첩장과 나의 비어있는 복지 포인트 창을 번갈아 보는 수많은 이 대리들.
3월의 오피스는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시대에, 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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