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우 정치부 기자
"친노동이 곧 친기업이고 친경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의 대담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공언해 온 기조다. 노동을 기업 성장의 한 축으로 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마침 이번 노동절 메시지에서도 이 해묵은 약속을 꺼내 들었다. 불과 며칠 뒤 맞닥뜨린 삼성전자 총파업 국면은 그 선언의 진짜 의미를 되묻게 했다. 반도체가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핵심이 된 상황에서 친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대통령은 울산 조선업계 간담회에서도 과실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파업 국면에서는 미래 투자와 산업 생태계를 지탱할 여력까지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더 중요해졌다.
반도체는 속도전이다. 생산차질이 현실화되면 손실은 노사 양쪽에 머물지 않고 수출과 국가 산업전략에까지 번진다. 위기 때마다 양보만 요구하며 보상체계의 투명성을 소홀히 한 사측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노사 갈등으로 국가경제의 기둥이 흔들린다는 본질은 그대로다.
당초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약 45조원의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했다. 평균 연봉 1억5800만원을 받는 직원들의 요구라는 점에서 밖의 시선은 차가웠다. 막대한 성과급 요구가 당장 시급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도 외면할 수 없다.
총파업 예고 초기 청와대의 대응은 관망에 가까웠다. 참모들 사이에선 테이블에 맡기면 풀릴 것이란 낙관론이 우세했고, 김용범 정책실장의 메시지도 자율해결 촉구에 그쳤다. 기자들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건 협상 장기화로 수출전선에 리스크가 가시화되면서다. 청와대 내부에선 '이대로면 AI 패권 경쟁에서 밀린다'는 위기감이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이 회의에서 "나만 살겠다는 부당한 요구"라며 직격탄을 날리고 이달 들어 "기업경영권 존중"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가 세진 배경이다. 총리실은 긴급조정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노사는 이후에도 접점을 찾지 못했고, 법원도 사측이 낸 위법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파업 예고일이 다가올수록 노조가 마주한 압박은 커지고 있다.
긴급조정은 압박용으로 가볍게 꺼낼 단어가 아니다. 노조 역시 파업이 협상장 밖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봐야 한다.
친노동이 곧 친기업이라는 말은 노조 요구를 정부가 보증해준다는 뜻이 아니다. 노동의 몫을 키우려면 그 몫이 나올 기업의 미래도 함께 지켜야 한다. 삼전 파업이 대통령의 노동관에 현실의 시험지를 내밀고 있다.
west@fnnews.com 성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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