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은 문 닫고 원전은 멈추고 관광객은 북유럽으로
전문가 "기후는 이제 구조적 경제 변수…대응책 필요"
이중열돔 현상으로 인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13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도권기상청에서 예보관이 체감온도와 특보현황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더위'가 계절적 불편을 넘어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오메가 열돔(Omega Heat Dome)', 미국에서는 '대기 블로킹(Atmospheric Blocking)', 한국에서는 '폭염중대경보' 등 과거와 다른 형태의 극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소비부터 생산까지 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고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13일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기후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이제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이상기온의 강도와 빈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만큼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경제 흔드는 폭염…GDP도 줄어든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대에서 한 시민이 폭염을 피해 물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AP
극한 폭염은 유럽 주요 경제국의 성장률까지 위협하고 있다.
유로뉴스는 글로벌 무역신용보험사이자 경제·산업 리스크 분석기관인 알리안츠트레이드 보고서를 인용해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폭염으로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알리안츠트레이드는 2014~2024년 각국에서 가장 더웠던 5개년을 분석한 내용을 기반으로 이 같은 결과를 내놨다. 이들 국가는 노동 생산성 저하와 냉방 수요 증가 등으로 누적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2030년까지 5~7%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향후 5년간 예상 손실 규모는 프랑스가 2400억달러(약 358조원)로 가장 컸고 이탈리아(1470억달러), 독일(1310억달러), 스페인(1200억달러)이 뒤를 이었다.
프랑스 경제계도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프랑스 최대 경제단체인 프랑스기업운동(MEDEF)의 패트릭 마르탱 회장은 지난달 현지 방송에서 "프랑스 경제는 절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며 "직원 보호를 위한 조치가 불가피하지만 생산 차질과 작업량 감소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중앙은행의 에마뉘엘 물랭 신임 총재 역시 "폭염의 단기 영향은 불확실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에 분명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매장은 문 닫고 원전은 멈췄다
유럽 지역에 폭염이 이어지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민들이 쿨링포그를 맞고 있다. /사진=뉴시스·AP
기업들은 이미 폭염의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니클로 운영사 패스트리테일링은 최근 유럽 폭염으로 일부 매장의 영업을 중단하거나 조기 폐점했다.
오카자키 다케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유럽 도시의 냉방 시스템은 최근과 같은 폭염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았다"며 "일부 매장은 실내 온도가 위험 수준까지 올라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쟁사인 H&M 역시 상품 구성과 마케팅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밝혔고, 영국 베이커리 체인 그렉스도 폭염으로 일부 매장을 이틀간 폐쇄했다.
에너지 산업도 타격을 받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골페슈 원자력발전소는 강물 수온 상승으로 냉각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원자로 1기의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폭염까지 겹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유럽 경제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건설과 제조업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 각국은 일정 기온을 넘으면 건설 현장과 야외 작업을 제한하거나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공장 가동 시간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럽의 관광산업 흐름도 바꾸고 있다.
여름철이면 한국과 일본, 중국 관광객이 몰리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관광 일정 변경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는 대표적 관광지인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의 운영 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유럽관광위원회(ETC)는 최근 기후변화로 여름 관광 수요가 북유럽과 비성수기 시즌으로 분산되는 이른바 '쿨케이션(Coolcation)'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도 예외 아니다…반도체·물가까지 영향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가 전력수급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폭염은 한국 경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냉방 수요 증가로 전력 공급 안정성이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24시간 냉각이 필요한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량 증가에 더욱 민감하다.
삼성전자는 2021년 미국 텍사스 한파 당시 대규모 정전으로 오스틴 공장 가동이 약 71시간 중단되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원인은 한파였지만, 업계는 이상기후가 반도체 생산에 얼마나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한다. 폭염 역시 전력 수급 불안이 발생할 경우 같은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농축산물 가격도 변수다.
폭염이 장기화하면 작황 부진과 가축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식품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정 교수는 "한두 달의 폭염만으로 경제 전체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이런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강도가 심해지는 것이 문제"라며 "기후변화는 일시적인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인 경제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졌듯 앞으로는 전력망과 산업시설, 노동환경, 농업 등 기후 적응 역량 자체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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