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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이 보자" 치매 환자와 가족의 특별한 미술관 나들이[르포]

대한치매학회·국립현대미술관 '일상예찬' 첫날
12년째 이어진 활동...올해는 다음달까지 6회 진행

"엄마, 같이 보자" 치매 환자와 가족의 특별한 미술관 나들이[르포]
지난 15일 대한치매학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행한 '2026 일상예찬-함께 만드는 미술관' 참가자들이 서도호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대한치매학회 제공
[파이낸셜뉴스] "엄마, 이거 봐. 사람이 이렇게 떠받치고 있어." 지난 15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한 여성이 친정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도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앞에 섰다. 딸은 작품을 가리키며 천천히 설명했고, 어머니는 딸의 이야기를 듣다 발밑에 놓인 작품을 한참 바라봤다. 직접 밟고 올라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딸은 어머니가 작품을 바라보는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았다. 전시장을 함께 걷고 작품을 설명하며 사진을 찍는 평범한 모녀의 모습이었다. 다만 이날 두 사람이 찾은 곳은 병원이나 치매안심센터가 아닌 미술관이었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서울 광진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환자 10명과 보호자 10명이 함께 찾았다. 대한치매학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행하는 '2026 일상예찬-함께 만드는 미술관' 프로그램의 첫날이다.

올해 프로그램은 서울과 경기 지역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모집한 60세 이상 치매 환자와 보호자, 센터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여한다. 지난 15일부터 10월 1일까지 모두 6회에 걸쳐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 '서도호'를 둘러봤다. 올해 프로그램의 주제는 '집과 기억'이다.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를 작품에 담아온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보며 자신의 기억 속 공간을 떠올리는 방식이다.

작품 감상 뒤에는 '내 기억 속의 집'이라는 다감각 교구를 활용해 자신이 기억하는 공간을 직접 표현했다. 이후 미술관 내부와 종친부 마당을 함께 걸으며 전시장에서 떠올린 기억과 이야기를 주변 공간과 자연으로 확장했다.

이날 현장을 함께 둘러본 대한치매학회 소속 강성우 한양대병원 교수는 치매 치료에서 비약물적 접근의 의미를 강조했다.

강 교수는 "약물치료뿐 아니라 비약물치료를 통해 뇌의 가소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디지털 치료처럼 화면을 통해 자극하는 방식과 달리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활동은 또 다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뇌의 가소성은 외부 자극이나 경험에 따라 뇌가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뜻한다. 강 교수는 이날 참가자들이 비교적 젊고 증상이 심하지 않은 편이라며 "치매는 이미 나타난 증상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에서의 일정은 전시 관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체험 활동에 이어 함께 식사를 하고 미술관 인근에서 식물투어도 진행했다. 미술관 2층의 탁 트인 공간에서는 인왕산을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라기보다 오랜만에 소풍을 나온 가족의 모습에 가까웠다.

치매는 기억력 저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익숙했던 일상과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멀어지는 것도 환자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다. 이날 프로그램은 환자에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는 동시에 보호자가 환자와 함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상예찬'은 대한치매학회가 2012년부터 진행해온 캠페인이다. 2015년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력해 미술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 감상, 표현 활동, 이야기 나누기, 공간과 자연 체험 등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은 미술관 밖으로도 확대된다. 대한치매학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11~12월 전국 치매안심센터 작업치료사 등 실무자를 대상으로 '일상예찬 매개자 교육'을 두 차례 진행할 예정이다. 미술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환자들도 지역 치매안심센터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양 기관은 2022년 치매 환자와 보호자가 지역 치매안심센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미술 교육 교구재도 공동 개발했다. 작품 감상부터 표현 활동, 이야기 나누기까지 미술관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지역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대한치매학회 박기형 이사장은 "치매 환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술을 통해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나누고 일상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