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동남아본부장
"뜻을 같이하는 아시아 국가들과 손을 맞잡고, 친구가 필요로 하는 협력을 해 나가겠습니다. 힘을 합쳐 이 지역을 함께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일본이 앞장서겠습니다."
베트남을 방문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3일 하노이국립대에서 한 강연은 섬뜩할 정도로 강력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 멍에에 갇혀 모호한 단어로 평화를 외치던 이전의 총리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카이치는 "남중국해에서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중국을 노골적으로 겨냥했지만, 짧게 말하면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로 돌아왔다"는 선언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가 일본이 다시 전쟁가능국가로 진입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이는 한쪽만 본 것이다. 다카이치의 진짜 노림수는 방위산업이다. 올 2월 총선 압승 후 일본의 움직임은 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 4월 말 '방위장비이전 기본 3원칙'을 개정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거나 국제분쟁 당사국이거나 원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일본의 첨단무기를 수출할 수 있게 허용하겠다고 했다. 2014년 아베 신조 총리 때 제정한 이 원칙은 그동안 무기수출을 비전투 후방지원(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으로만 제한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개정을 통해 이 족쇄를 모두 풀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K방산에 엄청난 도전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과거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며 미국의 첨단 군수기술을 통째 빨아들였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보유했던 나라답게 해상자위대의 최첨단 호위함과 잠수함 등 해군 무기는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금력이다. 일본은 2023년부터 '정부 안전보장능력강화 지원(OSA)' 제도를 통해 개발도상국 군대에 일본산 방위장비와 관련 인프라를 무상으로 구축해주고 있다. 다카이치는 올해 이 예산을 181억달러로 증액했다. 작년의 두 배에 달한다. 최근 전쟁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유럽이나 중동 지역이 아니라 자금력이 약한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권역을 겨냥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먼저 호위함, 잠수함 등 바다 무기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일본은 현재 필리핀에 첨단 호위함 수출 및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와는 잠수함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필리핀은 우리나라 HD현대중공업이 호위함, 초계함, 경비함 등을 일부 계약했거나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 또 인도네시아는 논란이 있지만 이미 FA-50 경공격기 수출계약을 진행한 나라다. 일본은 이에 더해 최근 자국의 중고 군함을 무상 또는 초저가로 제공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한 동남아 국가에 일본이 국방력 강화를 위한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상 무기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다. 한국이 K9 자주포, K2 전차, 천무 등을 운영하며 실전능력과 납기 운용에서 아직은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중국의 팽창에 맞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아시아 국가의 무기 표준이 일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이미 미국과 공대공미사일(AMRAAM), 패트리엇(PPAC-3) 공동생산 협약을 맺고 개발 중이며 영국, 이탈리아와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이미 시작한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한 국가가 최첨단 지상무기 수입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중국의 눈치를 보며 아직 결정을 못하고 미적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글로벌 방산시장은 경제 논리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지정학적 논리도 함께 작용한다. 특히 중국과 가까이 위치한 동남아는 더욱더 그렇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빨간불은 이미 켜졌다.
[email protected]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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