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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겪던 소녀, 집단학살 책임 묻는 판사로…'노벨평화상' 나비 필라이 [홍채완의 글로벌 이사람]

인종차별 맞선 변호사에서 국제재판관으로 성폭력도 집단학살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 기여 가자 조사에 이스라엘 반발…美는 ICC 자체 제재

인종차별 겪던 소녀, 집단학살 책임 묻는 판사로…'노벨평화상' 나비 필라이 [홍채완의 글로벌 이사람]
나비 필라이.로이터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인종차별에 저항하던 이들을 변호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호사는 전쟁과 집단학살의 책임을 묻는 국제 재판관이 됐다. 피부색에 따라 권리가 달라지는 현실에 맞섰던 그의 싸움은 국경을 넘어, 국가와 지도자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이어졌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나비 필라이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이야기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9일(현지시간) 평화와 국제법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필라이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 국제사법기관과 재판관들이 정치적 압박을 받는 가운데, 범죄의 책임을 묻는 법과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국제법 체계가 심각한 압력을 받고 있다며, 법적 틀과 정의에 대한 존중을 희생시키는 권력정치의 확산을 경고했다.

인종과 성별의 장벽 넘어 법정으로
필라이는 1941년 남아공 더반의 인도계 타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버스 운전기사의 딸인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아래에서 인종차별을 직접 겪었다. 법률가가 된 뒤에도 인종과 성별은 넘어야 할 장벽이었다.

1967년 고향인 나탈 지역에서 비백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그의 법률 활동은 인종차별 체제에 저항하다 기소되거나 수감된 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집중됐다. 반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들을 변호하고, 정치범들이 수감된 로벤섬의 수감자 처우 개선에도 힘썼다. 국가가 법을 차별의 도구로 사용하던 시절, 그는 그 법정 안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권리를 주장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뒤인 1995년에는 남아공 고등법원의 첫 비백인 여성 판사가 됐다. 같은 해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으로 선출되면서 활동 무대도 국제사회로 넓어졌다. 자국의 차별에 맞섰던 법률가는 이제 집단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게 됐다.

전쟁 속 성폭력도 집단학살로 인정…가해 책임을 묻다
필라이의 이름을 국제사법 역사에 남긴 사건은 르완다의 장폴 아카예수 재판이다. 르완다 타바 지역의 시장이었던 아카예수는 1994년 집단학살 당시 자행된 살인과 성폭력 등에 대한 책임으로 기소됐다.

1998년 9월 ICTR은 아카예수에게 집단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등의 유죄를 선고했다. 국제재판소가 개인에게 집단학살 유죄를 선고한 첫 사례이자, 강간도 집단학살을 구성할 수 있다고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핵심은 성폭력을 특정 집단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판단했다는 데 있었다. 특정 민족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는 의도로 자행된 성폭력은 집단학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 중 여성들이 겪은 피해를 개인적인 사건에 가두지 않고, 집단 전체를 겨냥한 파괴 행위의 맥락에서 다룬 판단이었다.

필라이는 이 판결에 참여한 세 재판관 중 한 명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성폭력 증언을 추가로 심문하는 등 성폭력 혐의가 공소장에 추가되고 판결에서 다뤄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이후 1999~2003년 ICTR 소장을 지냈으며, 2003~2008년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8~2014년엔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맡아 국제사회의 인권 의제를 이끌었다.

가자 조사 이끈 법률가…이스라엘은 반발
필라이의 활동은 최근 가자지구 문제로도 이어졌다. 그가 위원장을 맡은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살해와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위해, 집단 파괴를 초래하는 생활조건 강요, 출생 방해 등 집단학살협약에 규정된 행위를 검토했다. 이스라엘 지도부 발언 등을 토대로 집단학살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고, 각국에 집단학살을 막기 위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는 독립 조사위원회의 판단으로, 국제재판소의 확정판결과는 구별된다.

당시 이스라엘 외교부는 왜곡되고 거짓된 내용의 보고서라며 조사 결과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필라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도 네타냐후 총리실은 노벨위원회가 도덕적 나침반을 잃었다며 맹비난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일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그의 노력은 수상 이후에도 정치적 공격에 직면했다.

노벨상 발표 몇 시간 뒤 美 ICC 제재
필라이가 평생 몸담았던 국제사법의 위기는 수상 발표 직후에도 드러났다. 미국은 지난 9일 수상자 발표 몇 시간 뒤 ICC 자체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앞서 재판관과 관계자들을 개인 제재한 데서 나아가, 재판소라는 기관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에 필라이는 노벨평화센터 행사에 화상으로 참여해 미국의 제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13일엔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수호하는 역할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법적 판단과 실제 처벌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국제재판소가 체포영장을 발부해도 국가들이 집행에 협조하지 않거나 사법기관을 압박하면 정의의 실현은 어려워진다. 필라이의 수상은 인종차별과 집단학살에 맞서온 한 법률가의 공로를 기리는 동시에, 그가 지켜온 국제사법을 누가 어떻게 지탱할 것인지 묻고 있다.

[email protected] 홍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