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2년간 복역한 것이 억울해 신고자를 찾아가 보복 살인을 저지른 70대가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운데,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박준용)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보복살인 등) 위반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70대)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이 선고한 무기징역을 유지했다. 사건은 지난 6월 8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발생했다. A씨는 B씨(50대)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를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자신을 말리던 C시에게도 얼굴과 복부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려한 혐의를 받았다. A씨 측은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고의성이 없었으며, 살인에 대해서는 형이 무겁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관계에 의하면 살인미수 등과 관련, 살인의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형부당을 주장하는 A씨에 대해 "항소심에 이르기까지도 범행을 피해자들 탓으로 돌리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며 "(피해자는) 아무런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라고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A씨는 특수상해죄 혐의로 2019년 9월 부산지법으로부터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B씨의 거짓 신고로 인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한 A씨는 출소 이후 복수를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2021년 8월부터 총 17차례에 걸쳐 B씨에게 편지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협박했으며, 자수하라는 자신의 요구를 B씨가 끝까지 거절하자 범행 당일 무참히 살해했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2023-12-08 08:28:36[파이낸셜뉴스] 과거 성범죄를 저질러 8년간 수감생활을 지낸 30대가 출소 후 8개월 만에 성폭행을 저지려다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23일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이수웅)는 준강간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32)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월 초 새벽 시간대 원주시의 한 거리에서 만취한 20대 여성 B씨를 발견한 뒤 노래방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을 저지르려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피해 여성 B씨는 강하게 저항하며 달아나면서 A씨의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B씨는 사건 이후 심한 우울감 및 정신적 피해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반성문만 15차례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출소 8개월 만에 또다시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이 중대하고 죄질이 매우 나쁘다"라며 "이 사건으로 피해 여성은 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 등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라고 판시했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2023-08-23 09:33:06#"OO대학교 졸업생입니다."지난 2월 A씨(29)는 아르바이트 구직을 위해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을 찾았다. 이미 수십번을 해왔던 대학생 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A씨는 어느 순간부터 실제 그 학교 학생이 된 듯 했다. 주변에서 '명문대생 출신'인 자신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A씨는 만족하며 더욱 더 확실하게 또 다른 자신을 연기했다.신입생을 사칭해 대학 수십 곳을 떠돌던 20대 남성이 교도소 출소 후 다시 명문대 졸업생 행세를 하다 실형을 선고 받았다. '명문대를 다니면 시선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출신 대학을 속이는 점이 현실을 부정하는 리플리 증후군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리플리증후군이란 자신 현실을 외면하고 허구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현상을 뜻한다. ■출소 후에도 '명문대 졸업' 행세 서울동부지법 형사4단독 이관용 판사는 절도, 사문서위조, 점유이탈물횔령,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법조계에 따르면 2015년 교도소 출소한 A씨는 지난 2월 서울지역 한 편의점 구인광고를 보고 신분을 숨기기로 했다. 이미 대학 수십 곳에서 신입생 행세를 하다 '신입생 엑스멘'이란 인터넷 게시글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력서 용지에 가짜 이름과 함께 서울지역 명문 대학인 'OO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이라고 쓰고 취업에 성공했다. 이후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편의점 금고에서 2차례에 걸쳐 현금 77만원 상당을 훔쳤다. A씨의 거짓말은 계속됐다. 지난 3월에는 서울 강동구 모 가전업체에서 길거리에서 주운 신분증의 주인인 척 행세해 100만원이 넘는 핸드폰도 구매했다. 지난해 5월에는 "광주민주화항쟁 프로그램 참가비가 부족한데 4만원을 빌려주면 다음 주까지 갚겠다"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돈이 급하게 필요한데 아르바이트 임금을 받는 대로 곧바로 갚겠다"라면서 피해자 2명에게 324만원 상당을 뜯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절도죄, 사기죄를 포함한 동종 범행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 전력이 있다"면서 "각각의 범행이 누범에 해당하는 점 등을 비춰보면 피고인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앞서 A씨는 2014년 한 방송국의 시사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대학생 신입생 사칭 사건 당사자다. 그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 48개 대학에서 신입생 행세를 하며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먹거나 숙박을 해결하다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물건을 훔친 끝에 징역을 살았다. A씨는 수사기관의 조사과정에서 "학벌 콤플렉스가 심하다. 대학 신입생 모임에 가면 관심을 받는 것이 좋다"며 "명문대를 다닌다고 하면 사회적 시선이 달라진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과 거짓 구분 어려워" A씨 같이 다른 사람 신분으로 현실을 사는 행위를 '리플리증후군'이라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학벌 같은 사회적 기준에 열등감을 느끼며 자신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세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신 모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며 "현실자아가 없어지고 허구자아가 진실하다고 믿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로 성장과정에서 학력 등 열등감이 있으면 남을 속여서라도 인정받길 원한다"며 "이 과정에서 거짓말로 타인에게 금전, 정신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범죄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2018-10-15 16:56:07베테랑 개그맨 문세윤과 김용명이 '개그콘서트'를 매력으로 물들인다. 30일 방송하는 KBS2 '개그콘서트' 1116회는 4월 1일 만우절을 앞두고 '만우절 특집'을 선보인다. 만우절 농담 같은 다양한 시도가 여러 코너에서 시도되는 가운데, 문세윤과 김용명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풍성한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문세윤은 '믿는 우리 새끼'에 출격한다. 그는 홍순목과 감옥 생활을 같이하다 출소한 형님으로 등장해 '대상 개그맨'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할 예정이다. 특히 '웃찾사' 후배 김진곤과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김용명은 '심곡 파출소'로 출근한다. 그는 자율방범대 '아롱다롱' 홍현호, 오정율의 큰 형님으로 등장한다. 김용명은 등장부터 남다른 비주얼로 시선을 강탈하고, 특유의 개그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오랜만에 공개 코미디 무대에 서는 김용명의 '개그콘서트' 적응기가 또 다른 웃음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만우절을 맞이해 준비한 특집 방송에 문세윤, 김용명이라는 최고의 게스트를 모시게 돼 기쁘다"며 "이들과 함께 시청자들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선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개그콘서트' 1116회는 오는 30일 밤 9시 20분 KBS2에서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KBS2 '개그콘서트'
2025-03-28 10:35:36[파이낸셜뉴스] ‘연인 폭행’ 혐의로 징역을 산 스포츠 트레이너 황철순이 아내의 사생활을 폭로한 가운데 아내 A씨가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황철순은 20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죄를 짓는 게 가족한테 피해를 주는 게 아닌, 찬스를 주는 거였냐”라며 “내 재산은 사라지고 내 명의로 빚만 늘고, 성형해서 면회는커녕 허구한 날 술자리와 남자들과의 파티만”이라고 썼다. 이어 “어쩌다 온 편지와 면회 때는 쌍욕만 퍼붓고 새 사람이 되서 보답한다는 말도 무시하고, 주변에서 합의하라 보낸 금액도 중간에서 가로채고, 아직 (감옥에서)나오면 안 된다고 좀 더 살게 할 것이라고 모든 소통을 끊게 하고 유흥을 즐기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석방으로 나오는 날마저 아침까지 술에 젖어 마중도 없고 저녁에는 미쳐 정리 못한 남정네들의 연락만”이라며 “빈털털이에 내 집은 없고 이혼하자 해서 아파트를 얻는 그는 도대체”라고 적었다. 추가 게시글에는 “애기들 생각하며 버티고 바뀌려고 노력했는데, 애들 이름마저 바뀌어 있다. 아비가 자랑스러울 때 아니면 마음대로 (아이들 이름을)바꿔도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그의 아내 A씨는 같은 날 오후 "오늘도 소설을…언제나 웃겨"라며 본인의 사진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해당 내용은 남편인 황철순이 올린 글을 반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철순과 아내는 지난 2020년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하지만 이혼 절차를 밟으며 서로를 향한 폭로전에 돌입하기도 했다. 한편 황철순은 재작년 10월16일 전남 여수시 한 건물에서 연인 B씨의 얼굴과 머리를 주먹으로 20차례 이상 때리고 발로 얼굴을 수 차례 걷어찬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황철순은 2심에서는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문을 여러 차례 써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황철순은 상고를 포기했다. 이후 수감 생활을 해오다가 지난 1월 30일 유튜브에 출소 소식을 알렸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3-20 20:53:15[파이낸셜뉴스] 성범죄 전과를 가진 남성이 출소 두 달 만에 대리기사로 근무하며 여성 손님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18일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피해 여성 A씨는 지난해 10월 친구와 술자리를 가진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당시 회사 반차를 내고 술을 마신 A씨는 오후 3시 30분께 대리기사와 함께 목적지로 이동했다. 이후 차량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A씨는 약 1시간여가 흐른 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게 됐다. A씨는 “친구는 저를 뒷자리에 앉혀주고 대리기사님이 오셨다. 눈을 뜨니까 옷이 다 벗겨진 채로 있었고 상대방은 하의를 다 벗은 채로 있었다”며 “제가 소리를 계속 지르니까 뒷좌석에서 앞좌석으로 넘어가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본 A씨는 자신이 원했던 목적지가 아닌 외진 숲속에 있었다고 한다. 대리운전 기사는 A씨 집까지 운전을 해 갔지만, 도착 후에도 피해자가 깨어나지 않 인근 공터로 차량을 이동시킨 뒤 성폭행을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리기사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차량의 블랙박스 전원까지 차단했다. A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대리기사는 주변을 배회하다가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A씨는 대리기사가 자신의 신체를 불법촬영했다가 뒤늦게 영상을 지웠다는 사실도 경찰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대리기사는 과거에도 성범죄 이력이 있던 전직 군인 출신이었다. A씨는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이 사건 두 달 전에도 범행을 저지르고 감옥에서 나온 상황이었다”며 “강제추행으로 국군교도소에서 2년간 수감생활을 한 걸로 안다. 제게는 준강간과 불법촬영죄를 저지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리기사는 피해자에 “아내가 범행을 알면 안 된다”며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는 “직접적인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가해자가 합의를 요청하며 ‘아내가 알면 안 된다’는 말을 해 화가 난다”며 “저는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워 퇴사 후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고 호소했다. 한편, A씨는 대리기사 앱 측에 “안전하다고 광고해 믿고 이용했는데, 기사가 성범죄 전과자였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에 업체 측은 “해당 기사가 더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기사들의 범죄 이력을 확인하는 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3-19 05:12:56'개그콘서트'의 열정이 빛났다. 9일 방송한 KBS2 '개그콘서트' 1113회가 폭소를 불러일으켰다. '믿는 우리 새끼'에서는 '할머니' 김진곤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이장' 송준근이 아들 자랑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제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김진곤의 손자 홍순목을 보면서 "내가 순목이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네"라고 너스레를 떨어 김진곤을 화나게 했다. 김진곤은 "감옥 갔다 왔다고 무시하는 거냐"며 역정을 냈고, 홍순목도 벌써 취업했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출소하자마자 취업하는 것 쉽지 않다"며 자랑을 이어가던 김진곤 앞에 홍순목은 회사 사장과 본부장, '황해 2025' 피싱 2인조 오민우와 장현욱을 불러냈다. 결국 눈치 없는 아들 이광섭, 손자 홍순목에 이어 오민우와 장현욱까지 김진곤 할머니표 참교육을 받게 됐고, 이들의 화려한 몸 개그에 관객들은 배꼽을 잡았다. '데프콘 썸 어때요'에서는 회식 중이던 조수연이 취했다며 썸남 신윤승을 불러내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조수연은 취기를 빌려 신윤승에게 "썸탄 지도 됐고, 이제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물어보며 핑크빛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윤승은 "그럼 이제 나도 편하게 형님이라고 부르겠다"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조수연은 신윤승에게 '길거리에서 우연히 부딪혀 소지품을 다 떨어트린 남녀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상황극'을 해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상황극이 시작됐고, 조수연과 부딪힌 신윤승은 바닥에 나자빠졌다. 이어 신윤승은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해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해바라기 포장마차'에선 '오태식' 이정수의 분노 버튼이 눌릴 때마다 강력한 웃음 폭탄이 터졌다. 손님들을 향한 이정수의 연이은 분노에 포장마차는 아수라장이 됐고, 이정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투척한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쪽에선 정세협이 남자친구 김여운에게 애교를 보이고 있었다. 과한 애정행각이 펼쳐질 때마다 이정수는 간신히 화를 누르며 "하지마"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웃음 짓게 했다. 정세협은 치마를 살랑살랑 흔들며 "오늘 밤 나 혼내줄 사람 어디있나~?"라고 노래를 불렀고, 결국 폭발한 이정수가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로 그를 공격하면서 "여기 있다!"라고 외쳐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한편, '개그콘서트'는 다음주 16일부터 밤 9시 20분에 KBS2에서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KBS2 '개그콘서트'
2025-03-10 15:42:44[파이낸셜뉴스] 배우 김부선이 윤석열 대통령 석방 소식을 듣고 난 후 "너무 행복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김부선은 지난 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윤 대통령이 출소하고 개선장군처럼 나타났는데 이재명 얼굴은 X 씹은 표정이 됐다"라며 "(윤 대통령) 석방 소식을 듣고 너무 행복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은) 서둘러 대선을 치러 지지율이 높을 때 당선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윤대통령 석방 소식에) 얼굴이 노래지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야 5당 기자회견하고 아주 꼴깞 떨더라"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우리 불사조 석열이 오빠 살아 돌아왔다"고 치켜세우면서도 "정권이 바뀌면 방송 섭외가 들어올 줄 알았는데 한 건도 없었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독한 배신감을 느낀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것처럼 말한다"라며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이 방송에 3000번 출연하게 해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김부선은 "수치심과 명예 실추까지 감수하며 석열이 오빠의 선거를 도왔고, 지난 2년 반 동안 힘들게 지냈다"며 "선거 때 고생했으니 방송 출연 기회 정도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김건희가 도이치모터스 관련 조사에 출석하라는 중앙지검의 요청을 받았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나도 화가 났다"며 "우리 같은 사람은 대마초 한 모금만 피워도 뉴스에 나오고 8개월간 감옥에 갇히며, 10년 동안 연예계 복귀도 못 하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데, 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김건희에게도 사과하라고 몇 번이나 요구했다"고 했다.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지 52일 만에 풀려났다. 윤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불법을 바로잡아준 중앙지법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3-10 13:39:08[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와 같이 '초고령 사회'에 해당하는 국가인 일본에서 빈곤과 외로움에 처한 노인들이 일부러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스스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현지시각) CNN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교도소에 수감된 65세 이상 노인의 수가 최근 10년 새 약 4배 늘었다. 외로움과 경제적 빈곤, 악화한 건강 등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감옥행을 선택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CNN이 지난해 9월 일본 도치기(栃木)현 내 여자교도소에서 만난 백발의 81세 여성 A씨는 식료품을 훔친 혐의로 복역하고 있다. A씨는 "이 교도소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이 삶이 저에게는 가장 안정된 삶일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 교정본부가 발행하는 월간교정에 따르면 도치기 교도소는 정원 65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최대급 규모의 여자교도소다. A씨는 60대 때 동종 범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 수형 생활은 이번이 두 번째다. A씨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절도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치기 교도소의 또 다른 수감자 B씨는 지난 25년 동안 마약 혐의로 다섯 번이나 수감됐다. 그는 "돌아올 때마다 교도소 인구가 점점 늙어가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고의로 나쁜 일을 하고 잡혀 온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여성 노인 수감자의 80% 이상이 절도 혐의로 입감됐다. CNN은 "도치기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들은 교도소 내 공장에서 일해야 하지만, 일부 수감자들은 그 생활에 만족한다. 일부 노인 수감자들은 차라리 수감돼 있는 것을 선호할 정도로 일본 노인들의 고독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교도소 안에서는 규칙적인 식사, 무료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으면서 사회에서 부족했던 동료애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도소 간수 C씨는 "한 달에 2만~3만엔(약 18만~28만원)을 내고 평생 이곳에서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또 수감 중에는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출소 후에는 스스로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므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 일본에서 65세 이상 수감자 수는 2003년부터 2022년까지 거의 4배로 증가했다. 간수 C씨는 "이제 우리는 그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돕고, 식사를 도와야 한다. 지금 교도소는 범죄자들로 가득 찬 감옥이라기보다는 요양원 같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20% 이상)에 접어들었으며 남성 평균 81세, 여성 평균 87세로 세계에서 수명이 가장 긴 나라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1-21 10:43:21추수감사절을 맞아 장보기 목록을 만들면서 오빠를 생각했다. 필 오빠를 떠올리는 일은 내게 지울 수 없는 명절의 일부분이었다. 존 필립 제이콥은 태어날 때부터 요리를 사랑했다. 수중에 무엇이 있든지 맛있는 요리를 잽싸게 만들어 내는 기쁨을 찾았다. 50년도 더 지났지만 오클라호마의 농장 가옥 주방에서 덩실거리면서 소매를 휘날리던 오빠를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린다. 어머니가 우리를 떠난 후 홀로 네 아이를 키우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부엌에 남자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믿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예기치 않게 퇴근했다. 필 오빠는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콩과 비엔나소시지에 관한 짤막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부엌 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버지는 오빠의 어깨를 잡아챘다. 오빠가 아버지를 수납장으로 밀어붙이고 방충망 문으로 급히 달아날 때까지 두 사람은 드잡이를 벌였다. "나는 곧 열일곱이야. 공군에 입대할 거야. 아버지는 내가 강인해지길 바라니까 분명 그러라고 서명해 주겠지." 오빠가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찢어졌다. "편지해." "약속할게." 오빠가 입대했다. 편지가 올 때까지 6주를 기다렸다. "동생아, 신병 훈련소는 힘들었고 지금까지 편지를 쓸 수가 없었어. 다행스러운 점은 입대하기 전에 훈련 교관 같은 아버지를 뒀다는 거야. 군대는 잘 먹여줘."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 후반 즈음 나는 이혼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콜로라도에서 지냈다. 필 오빠도 이혼하고 기체(機體) 정비사로 전국에서 일했다. 내 신앙심이 깊어지면서 나 외에 다른 분이 오빠를 사랑하고 지켜 주신다고 편지에 쓰기도 했다. 그리고 편지를 마무리할 때마다 오빠를 위해 매일 기도 드린다고 썼다. 필 오빠는 하나님 얘기보다는 레시피를 공유했다. 1982년에 아버지가 트랙터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오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 중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목장에서 만났다. 나는 오빠의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 지나치게 말랐고 한때 준수했던 얼굴은 술집에서 벌인 싸움들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묘지에서 우리는 끌어안고 울었다. 산산조각 난 우리 가족이 결코 치유될 수 없음을 알았다. "나한테 편지 써." 다음 날 헤어지면서 속삭였다. 오빠는 아이다호에 있는 스네이크강의 강둑에서 편지를 썼다. "수중 펌프로 작업을 하고 있어. 스네이크강에서 물을 빼서 감자 농부의 밭에 물을 대고 있지. 방금 끝내 주는 감자 요리 레시피를 떠올렸어." 어느 해 추수감사절에는 오빠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두려움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반송됐다. 오빠가 살던 아이다호 작은 마을의 술집마다 전화했다.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오빠가 얼마나 지쳐 보였는지가 계속 떠올랐다. "주님, 저희 남매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어요. 아빠는 애정을 보여 주지 못했고요. 그래서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신다는 걸 믿기 어려워요. 부디 필 오빠가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세요." 경찰서장인 친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2주가 걸려 친구는 워싱턴의 감옥에서 오빠를 찾아냈다. 나는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오빠는 자신의 독특한 필기체로 여섯 장을 꽉 채워서 답장을 보냈다. 그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수감된 사정을 또다시 늘어놓는 대신, 감방 창밖에 보이는 모든 걸 자세히 묘사했다. 소나무, 가문비나무, 미루나무. 멀찌감치 붉은색 헛간도 있는데 우리가 농장의 헛간 다락에서 놀면서 느끼던 재미가 다시 생각난다고 했다. 오빠는 주방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기뻐하면서 알려왔다. "두 달이 지나고 드디어 재료를 마음대로 쓸 여지가 약간 생겼어. 사람들이 말하는 걸 네가 들었어야 하는데. 무척 단순한 재료였지만,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으니까 조금만 달라져도 즐거워져." 그해 가을에 내가 물었다. "추수감사절 저녁에도 거기 있어?" 오빠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을 감옥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그렇겠지. 그래도 내가 여기 있으면서 요리하면 분명 사람들이 기뻐할 거야." 추수감사절 아침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동생아, 깜짝 선물이야!" "행복한 추수감사절 보내길. 오빠 목소리를 듣다니, 정말 근사한 선물이야! 출소했어?" "아니. 하지만 얼마 안 남았어. 오늘은 동료들을 위해 요리해. 콘브레드 드레싱(미국 남부에서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 자주 먹는 전통 음식)을 만드는 근사한 레시피가 있거든." "맛있겠다. 오늘 친구들이 오빠를 무척 좋아할 거야." "있잖아. 나는 레시피를 생각하고 있어."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는 언제나 레시피를 생각하니까." "아니야. 이건 달라." "무슨 뜻이야?" "인생 레시피를 말하는 거야. 여기서는 생각할 시간이 무척 많아. 우리는 모두 살면서 좋은 일, 나쁜 일, 약간의 기쁨, 얼마간의 어려움을 겪어. 성경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하잖아. 동생아, 사랑한다." 두 달 후 오빠가 편지를 보냈다. "집에 왔어. 내 작은 트레일러로 돌아왔고 마당의 잔디를 깎으면서 시간제로 일해. 날 받아 주겠다는 제안은 고맙지만, 너도 키워야 할 아들이 있잖아. 비틀거리는 나는 네게 필요 없으니까. 추신. 부엌을 넘겨주겠다는 제안은 구미가 당겼어. 감옥에 있는 동안 내 생명줄이 돼줘서 고마워." 그 다음 4월에 워싱턴 파스코의 어느 바텐더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술집에서 싸움이 있었다고 했다. 바텐더 얘기로는 오빠의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에 구멍이 난 것 같은데 병원에 가는 걸 거부했단다. "오빠는 못살게 구는 남자한테서 어떤 여성을 지키려 했어요." 마침내 필 오빠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안전해졌다. 오빠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장보기 목록 가장 위에 오빠가 어림짐작으로 알려준 콘브레드 드레싱 재료를 적었다. 우리는 평생 편지로 이어져 있었다. 오빠가 마침내 나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주신 그분께서 쓰신 가장 위대한 레시피를 이해했다는 점에 감사드리며 추수감사절에 콘브레드 드레싱을 만들려고 한다. ■원문으로 읽는 오늘의 이야기 Letters From Phil Making my thanksgiving shopping list, I thought of my older brother, Phil, his memory an indelible part of the holiday for me. John Phillip Jacobs was born with a love for cooking. He took joy in whipping up simple, tasty dishes with whatever we had on hand. More than 50 years later, I can still picture him, sleeves flopping as he danced around our Oklahoma farmhouse kitchen. Too bad my father, raising the four of us children on his own after my mother had left us, believed boys had no place in the kitchen. One day, Dad came home unexpectedly from work. He appeared in the kitchen doorway just as Phil glided across the floor, singing a ditty about beans and wieners. Dad grabbed Phil by the shoulder. They tussled until Phil shoved Dad against a cabinet and bolted out the screen door. "I'll soon be 17," he said. "I'm gonna join the Air Force. Since Dad wants me to be tough, I'm sure he'll sign for me to do that." The thought of my older brother leaving ripped at my heart. "Write to me," I blurted. "I promise." He enlisted. I waited six weeks before a letter arrived. "Boot camp was hard, Sissy. I couldn't write until now. Good thing I had Dad as a drill sergeant before I joined up." We wrote less frequently as adulthood caught up with us. By the late 1970s, I was divorced and living in Colorado with my young son. Phil was divorced and working jobs across the country as an airframe mechanic. As my faith grew, I would mention in my letters that Someone besides me loved him and was looking out for him. At the end of every letter, I told him I said a daily prayer for him. Rather than talking about God, Phil would share a recipe. When Dad died in a tractor accident in 1982, Phil was working in Saudi Arabia. We met at Dad's ranch. Phil's appearance shocked me. He was too thin, his once handsome face scarred by bar fights. At the cemetery, we held each other and cried, knowing that our fractured family would never heal. "Write to me," I whispered when we parted the next day. From the banks of the Snake River in Idaho, Phil wrote, "I'm working on these submersible pumps, pulling water out of the Snake to irrigate the potato farmers''fields. I just came up with a killer recipe for taters." One Thanksgiving, I couldn't find Phil. I panicked. My latest letter to him had been returned. I called every bar in his small Idaho town. No one had seen him. "Lord," I prayed, "we kids didn't get much love from Mama. Dad wasn't able to show affection. That makes it hard for us to trust that you love us. Please allow Phil to know your love." I went to a friend who was a police chief for help. Within two weeks, he located Phil in a Washington prison. I wrote my brother. He wrote back, filling six pages with his distinctive cursive. He was lonesome. Instead of rehashing how he'd landed in prison, he described everything outside his cell window in detail. The pine, spruce and cottonwood trees. The red barn in the distance that reminded him of all the fun we'd had playing in the barn loft on the farm. He happily declared that he had become head cook. "After two months, they have finally given me a little leeway on ingredients, Sis. You should have heard the guys. Such a simple ingredient, but everything is so much the same day to day in here that any little change brings a bit of joy." Later that year, in the fall, I asked, "Will you be there for Thanksgiving dinner?" It made my heart ache to think of Phil spending his favorite holiday in prison. "Probably," he said. "But the guys are sure glad I'll be here to cook." Thanksgiving morning, my phone rang. "Hey, Sis, surprise!" "Happy Thanksgiving," I said. "Such a wonderful gift to hear your voice! Have you been released?" "No, but soon. Today I'm cooking for my guys. I have this amazing recipe for cornbread dressing," he said. "Sounds delicious," I said. "Your guys are going to love you today." "You know, Sis," he said, "I've been thinkin' about a recipe." I laughed. "You've been thinking about recipes forever." "No, this is different." "What do you mean?" "Sis, I'm talking about a kind of recipe for life. I've had a lot of time to think in here. We all get some good, some bad, a sprinkle of joy and a cup of trouble in life until we're…well. There's a scripture that says,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I love you, Sis." Two months later, Phil wrote: "I'm home, Sis. Back in my little trailer, working part-time mowing yards. Thanks for your offer to take me in, but you have your son to raise. You don't need me stumbling around. P.S.: The offer to take over your kitchen was tempting. Thanks for being my lifeline while I was in the joint." The following April, I got a call from a bartender in Pasco, Washington. Phil was gone. There had been a bar fight. The bartender said Phil likely broke some ribs and punctured a lung but refused to go to a doctor. "Your brother was defending a girl from her bully boyfriend." Phil was finally safe in God's arms, where he was meant to be. I put the ingredients for Phil's by-guess-and-by-gosh cornbread dressing, at the top of my shopping list. I would make it on Thanksgiving, grateful that we'd stayed connected through a lifetime of letters and that, in the end, my brother understood the greatest recipe was written by Someone who loved him even more than I did.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4-11-12 18:2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