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파주=노진균 기자】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려던 대북전단 살포 행사가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납북자가족모임은 대북전단을 준비해 현장에 도착했지만 강경한 저지 분위기에 살포행위를 시도하지 않았으며, 경찰이나 주민과의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31일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임진각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예정했던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당초 납북자가족모임은 납북 피해자 6명의 사진과 설명이 적힌 비닐로 된 대북전단 10만장, 1달러 지폐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낼 계획이었다. 최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사법경찰과 도지사가 살포행위를 하지 말라고 협박해 행사를 취소하고, 오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다시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할 계획"이라면서 "이제는 풍선이 아닌 드론을 사용한 행사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납북자가족모임은 이날 드론에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은커녕 생사 확인마저 가로막는 반인륜 범죄자 김정은을 규탄한다(납북자가족모임, 자유북한운동연합)'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매달아 띄웠다. 최 대표는 이어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조속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는 "경기도지사와 파주시장은 소식지에 반대하기 전에 납북자 문제 해결, 지속적인 도발 중단을 북한에 먼저 요구하라"면서 "납북자 문제는 우리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마땅히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따로 읽으며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고 편히 살아가길 바란다"면서 "더이상의 공갈을 멈추고 남북대화의 장으로 나와달라"고 호소했다. 파주시, 대북전단 살포 관계자 출입금지 조치 이날 파주시는 대북전단 살포 관계자들의 시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이는 북한의 대남확성기 공격으로 인한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이 자리에서 "전 지역은 재난안전법에 따른 위험구역"이라며 대북전단 살포 관계자들의 파주시 출입 금지를 선언했다. 그는 "법이 위임한 권한에 따라 대북전단 살포의 즉각 중지를 명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대성동 주민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한 북한의 대남확성기 공격을 받고 있다"며 "생존의 벼랑에 선 시민의 절박한 명령에 복종하겠다"며 주민 보호 의지를 강조했다. 시는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의 공격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김 시장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북한의 오물 풍선과 확성기 공격에 빌미를 주고 있다"며 "대북전단 살포가 확성기 공격의 불씨"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시장은 대북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대성동 주민과 파주 시민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한 치의 타협도 있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파주시는 앞으로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김 시장은 "파주시는 지금부터 민주 시민의 자격으로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민권 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njk6246@fnnews.com 노진균 기자
2024-10-31 14:00:06[파이낸셜뉴스] 북한 유도 영웅 이창수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후 탄광으로 끌려갔다는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1991년 북한의 ‘공훈체육인’으로, 나라에서 받은 훈장만 4개에 달했던 ‘유도 영웅’ 이창수가 남한으로 망명했다. 지난 7일 방송된 티캐스트 E채널의 '한끗차이'에서는 이창수의 탈북 스토리가 공개됐다. 그는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의 정훈에게 패해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로 인해 이창수는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탄광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2등 했다고 탄광으로 보내는 건 너무한 일이다. 운동도 못 그만두게 했다"라며 "그 땅에서 내 자식을 낳아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창피했다, 화려하던 게 다 없어지고 탄광에서 석탄을 푸면서 '이게 뭔가' 생각했다"라며 "그 다음 국제 대회에서 탈북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이창수는 김일성의 사위로 당시 북한의 실세였던 장성택의 도움으로 탄광에서 탈출, 탈북을 계획할 결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당시 이창수는 1989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만난 대만 여자 유도 국가대표 진영진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창수는 탈북 전 진영진에게 "당신은 꼭 내 사랑이오. 그때까지 기다려주오"라는 편지를 쓰며 계획을 털어놓았다. 결국 이창수는 코치가 잠든 틈을 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위험한 탈북을 감행했다. 이후 이창수의 귀순 기사를 본 진영진은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그 사람은 나만 믿고 온 거다. 나도 가서 찾아야 한다”라며 한국으로 향했다. 결국 두 사람은 한국에서 재회한 지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창수는 "내가 힘들 때 날 많이 도와줘서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사랑의 불시착'은 우리다"라고 말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10 11:21:02[파이낸셜뉴스] 국가정보원은 29일 "북한은 김주애에 대한 주민 반응을 의식해서 선전 수위 및 대외 노출 빈도를 조절하면서도 비공개 활동 병행을 안배하고 있다"며 "김주애를 현시점에서 유력한 후계자로 암시하며 후계자 수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여야 간사인 이성권 국민의힘·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김주애, 후계자 옹립 추정...바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 국정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몸무게가 140㎏에 달하고 체질량 지수가 정상 기준인 25를 크게 초과한 40 중반에 달하는 등 초고도 비만 상태"라며 "심장질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30세 초반부터 고혈압과 당뇨 증세를 보인 것으로 파악한다"며 "현 건강 상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가족력인 심혈관 계통 질환이 나타날 수 있어서 면밀하게 추적 중"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또한 "그것(김정은 몸무게)은 스트레스와 담배, 술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존의 약으로만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도 일부 있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있다"며 "즉 기존 약제가 아닌 다른 약제를 찾는 동향이 포착됐단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주애 후계 구도가 김정은의 건강상 변화 때문에 빨리하는 거냐'고 기자들이 묻자 이 의원은 "그런 거랑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다"며 "고혈압, 당뇨 등 있는 걸로 보이는데 해외에서 치료제를 찾아보라는 말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국정원은 "후계 구도와 관련해서 김주애를 어떻게 북한이 코칭하고 어떤 활동에 김주애가 나타났냐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과거엔 적어도 70% 이상 활동이 군사 분야 활동에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일정이었고, 매우 부분적으로 경제활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제국주의 싸우는 모습을 통해 어떻게든 후계자 옹립 계획이 있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정원은 또 "후계자나 수령에게만 쓰는 '향도'란 표현을 쓰는 거로 봐서 후계자 구도가 어느 정도 굳어져 가는 게 아닌가 전망한다"며 "아직은 다른 형제가 나설 가능성이 있고, 최종적으로 후계자를 결정하지 않았단 점을 토대로 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 중앙간부학교서 김일성·김정일 대신 마르크스·레닌 재등장 국정원은 "당 중앙간부학교 신축 이전 과정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 내려지고 마르크스·레닌이 재등장했다"며 "북한은 주체사상 가장 중심적인 축인데 그 주역인 김일성·김정일이 내려지고 마르크스·레닌이 등장했던 것 자체가 김정은이라는 인물이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통치를 하기 위해 변화된 모습이라고 해석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오물풍선 관련해선 "북한은 현재 총 10회 3600여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했으며 처음엔 오물, 주로 퇴비나 폐비닐에서 두 번째는 종이, 세 번째는 쓰레기로 바꾸는 등 우리 대응에 혼선 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여정은 (오물풍선) 살포 이래 5회의 담화를 발표했는데 특정 이슈에 대해 단기간에 가장 많은 입장을 표명한 이례적 사례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또 "북은 오물풍선을 다중밀집구역 혹은 주요 보완시설에 집중 투하하거나 위험 물질로 가장한 백색 가루를 동봉하는 등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고 NLL 인근 긴장조성, 확성기 타격 등 다른 도발 수단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수미 테리 기소로 한미 안보협력 문제 전혀 없어, 오히려 확대 국정원은 "수미 테리 사건으로 인한 한미동맹 훼손은 일절 없다"며 "이 문제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한미 정보 협력엔 크게 문제없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거론했다. 국정원은 "수미 테리 사건이 미국의 기밀을 가져온다든지 매우 중요한 정보를 수집해 동맹관계가 위태로울 수 있는 것까진 아니다"며 "그래서 (수미 테리가) 간첩죄가 아닌 외국인 대리등록죄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수미 테리 사건으로 한미 양국 안보협력에 문제가 있다면 축소·파기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국정원은 또한 "(미국이) 수미 테리가 한반도 전문가로서 미국의 건전한 오피니언 리더라는 점을 인정했다"면서도 "이 사건으로 수미 테리가 기소되고 그 이후에야 연락과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이 FBI의 언질을 무시하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서 이 사건이 더 커진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는 설명이다. 북러 관계에 있어선 "북한의 정제유가 상당히 많이 러시아 측에 공급됐다"며 "정찰위성 발사를 위한 지원, 재래색 군사력 현대화 지원, 정제유 판매 같은 기존에 해왔던 러시아의 지원 이상은 보이지 않는데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선원 의원은 "이재명 대표 (테러 사건) 관련해선 국정원 부산지부 대테러처와 김해 공항 소재 직원이 나갔다고 하는 점은 인정했다"며 "당시 부산대 의과대에 국정원 직원이 갔냐는 질문엔 경찰과 협조했단 수준으로 답변했다"고 전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7-29 21:09:15[파이낸셜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매년 25명의 처녀들을 '기쁨조(Pleasure Squad)'로 선발해 자신을 접대하도록 한다는 탈북 여성의 주장이 나왔다. 영국 미러, 데일리스타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탈북자인 박연미(30) 씨는 자신이 두 번이나 기쁨조 후보로 영입됐지만 가족의 지위 때문에 선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러는 탈북여성 박연미 씨의 주장을 바탕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박 씨는 기쁨조가 언제 등장했고 어떤 여성들을 선발하는 지에 대해 소개했다. 박 씨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 관계자들은 예쁜 소녀들을 찾기 위해 모든 교실과 운동장을 방문한다. 예쁜 소녀를 발견하면 그들의 가족 상황, 즉 정치적 지위를 확인하고, 북한을 탈출한 가족이 있거나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친척이 있는 소녀는 제외시킨다고 한다. 박 씨는 기쁨조 아이디어는 김정일이 1970년대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예쁜 여자를 몇 명 골라 아버지인 김일성이 가던 휴양지에 데려다준 게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일은 1983년에는 자신을 위해 두 번째 기쁨조를 창설했다고 박 씨는 주장했다. 그는 “세 남자의 선호 여성 취향이 달라 팀 구성이 달라졌다”며 “김정일은 키가 작아 160cm 이상이지만 너무 크지 않은 여성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날씬하고 서구적인 여성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북한 생활에 대한 설명이 과장됐다고 지적받기도 한 박 씨는 김씨 일가에 대해 “신으로 숭배받기를 기대하는 소아성애자”라고 주장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5-07 06:26:54[파이낸셜뉴스]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북한은 단 한 번도 국내정치 지형 개혁 없이 지금까지 줄곧 김씨일가 왕조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특히 공포정치를 일삼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21세기에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인류문명 퇴화를 보여준다. 김씨정권발 야욕과 공포정치는 국가출범 초기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김일성이 중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6·25전쟁을 일으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영토야욕은 정권 초기부터 명확했다. 마찬가지로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등 반대파를 잔혹하게 숙청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권력욕은 끝이 없었다. 심지어 김일성은 1955년 ‘주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이후 자신을 개인숭배 수준으로 우상화하며 반대세력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법은 숙청, 처형과 같은 공포정치였고, 그 공포정치는 아들 김정일과 손자인 김정은의 통치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바로 이 공포정치는 최소한의 자유도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방식에 기반하였고, 세뇌되고 공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게 반대 목소리는 생각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각인되었다. 그런데 지난달 공포라는 높은 벽을 뛰어넘어 북한 인민이 정부를 향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매우 보기 드문 사건이 발생하였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2천여 명이 북한 국방성 산하 무역회사를 상대로 임금 체불에 항의하여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 시위자들은 관리자와 감시요원들을 인질로 잡았고 관리직 대표가 폭행으로 숨기는 일까지 발생했다. 대규모 시위에 나선 북한 노동자들은 공포정치에 어두운 그림자에 오랜 기간 노출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위자들은 항거와 반발이 불러올 파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포정치의 두려움보다도 그들이 더 두렵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엄벌을 각오하고라도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그들을 두렵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북한 노동자는 아주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막노동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임금의 일부나마 받아서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여 최소한의 생계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임금마저 받지 못하자 그동안 쌓여온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처럼 쌓인 불만이 북한 사회 독버섯처럼 퍼져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의식주가 풍족한데 일부 임금체불로 인해서 내뱉는 불만과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임금도 못 받는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현재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 당시보다 더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주민에게 공포정치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굶어서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노동자의 대규모 시위 사태를 목도한 후 이를 “특대형 사건”으로 규정한 것을 보면 북한당국도 매우 당혹해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법이 아닌 공포정치로 해결해왔던 북한이 이러한 당혹감을 보였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첫째, 공포정치와 세뇌교육에 매몰된 북한 주민이라도 반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정권안보에 적색등이 켜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둘째,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대규모 시위가 언제라도 다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 임금을 착취한 정권의 수장인 김정은 자신은 '러시아판 롤스로이스' 최고급 러시아 아우르스 자동차를 푸틴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에 북한 주민의 불만이 더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노동자를 착취하고 북한 주민의 식량안보를 해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최고급 자동차를 챙기고 핵무기를 만들어 정권안보 수단을 강화하는 몰상식한 모습을 북한 주민이 모를리 없다. 이처럼 문제의 근원은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계조차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북한 정권의 무도함과 무능에 있다. 그런데도 김정은 정권은 경제적 처방이 아닌 강압적 처방으로 이 문제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주동자를 처벌하여 이전보다 그 가혹한 공포정치를 펼칠 것이 우려된다. 나아가 대외적으로는 각종 도발을 일으켜 북한 주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내부적 결속을 다지려 할 수 있다. 이처럼 관심전환전쟁(Diversionary theory of war)에 기초한 처방을 하는 과정에서 이 방법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도발 수위를 높여서라도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들 수 있다는 점이다. 도발 강도가 높아지면 이를 상쇄하기 위한 한미의 대응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핵무장을 완성했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김정은 정권이 사태를 오판하여 레드라인을 넘으려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이 부정적 연쇄고리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능동적 억제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2024년을 전쟁준비의 해로 천명한 이상 북한의 무력도발은 국지도발에 그치지 않고 전면전에 활용 가능한 재래식 전력 기반 도발과 핵강압도 연계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당국도 국지도발 대응, 전쟁 억제력, 핵 억제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노력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미핵협의그룹(NCG)의 작전화와 핵·재래식 통합작전(CNI)의 가시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2-21 16:32:06지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CGV. 이른 아침부터 극장 안은 많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영화 '건국전쟁'을 보러온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었다. 이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여의도CGV 9개관 전관을 빌려 '건국전쟁' 단체관람 행사를 진행했다. '건국전쟁'은 한국의 첫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을 재평가한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단체관람 행사에는 영화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59) 외에도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영화 상영에 앞서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이영훈 담임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원래 목사가 되려고 한 분이었는데 나라를 구하고자 정치인이 됐다"면서 "그런 분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앞장섰으니 우리는 이 나라가 바로 서고 건강한 나라로 변화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덕영 감독은 "개봉 초기엔 극장을 잡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지만 이런 작은 불씨들이 확산되면서 더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주고 있다"면서 "이 영화가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화답했다. 무대인사를 마치고 나온 김덕영 감독을 만나 '건국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건국전쟁'의 흥행을 축하드린다. 이번 작품이 이렇게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보통 5만명 정도를 넘으면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로 흥행하기 어려운 장르다. 개봉 16일째인 이날 현재 이 영화가 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480만), '워낭소리'(293만), '노무현입니다'(185만)에 이은 다큐 영화 흥행 톱4 기록이다. 개봉 16일 만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흥행세가 심상찮은데, 이번 작품의 흥행 윈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10대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내용들을 영화에서 보고 충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차분히 이승만 대통령을 둘러싼 당시의 역사적 환경을 관찰하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스스로 깨닫고 있다. 20~30대 여성들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맨해튼 '영웅 거리' 퍼레이드를 보면서 그렇게 세계에서 인정받는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너무나 저평가 받고 무시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면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중장년층의 지원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실제로 10대 및 20~30대 관객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것이 흥행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영화에 방대한 자료와 필름이 사용됐는데 이것을 모으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겠다. '건국전쟁'은 언제부터 기획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나. ▲지난 2020년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마친 뒤에 차기작을 고민할 때였다. 당시 북한 체제의 모순성을 16년 동안이나 연구한 셈이었다. 가만히 보니까 흥미로운 구호가 하나 떠올랐다. "이승만 괴뢰 도당을 타도하자!" 1960년대 막을 내린 이승만 정부를 북한은 1990년대, 2000년대까지도 비판하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왜 사라진 정부를 놓고 그렇게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이승만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승만을 죽여야 했던 북한 김일성 체제, 남한의 주사파 세력들, 그들의 연합 작전이었다. 한반도에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발동 같은 것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으로까지 이어지는 아주 놀랍고 무서운 반자유민주주의적 이념이었다. 이승만이 그 희생물이 되었던 셈이다. ―작품 속에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 여럿 나오지만 그중 가장 위대한 부분을 하나 고른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토지개혁, 여성투표권 부여. 이 세 가지는 거의 이승만의 단독 플레이였다. 1948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선각자들이 당시 얼마나 됐겠는가. 토지개혁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오늘과 같은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근본적 토대였다. 인간이라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이 누리는 혜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출발은 이승만이었다. 그걸 부정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작품에서 관객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부분이나 대사가 있다면. ▲영화 속 내레이션 중 이런 부분 있다. "살아 생전 그토록 다시 오고 싶었던 자신의 고국이었지만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그는 고국 땅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장례식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졌지만 그를 떠나 보내는 슬픔은 온 나라가 함께했다. 이승만 시대의 마지막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의 유해가 정들었던 서울의 거리 곳곳을 지날 때마다 수많은 국민들이 애도의 뜻을 담아 그와 작별을 고했다. 그가 한평생 무엇을 위해 싸웠고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이승만이 꿈꿨던 그런 나라를 진정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부분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영화에 보면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는 부분이 많은데, 요즘 젊은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는 어떤 게 있나. ▲6·25 때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고 방송하고 자기가 제일 먼저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쳤다는 '런승만'(도망치다는 뜻의 RUN과 이승만의 합성어)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다. 1950년 6월 27일 발표된 방송 원문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오히려 방송 원문을 통해 우리는 진정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심을 정당하게 평가하길 바란다.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했다는 점에선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진영논리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일부 주장이 있는데, 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은. ▲'건국전쟁'이 4·19 정신을 훼손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4·19로 희생된 숭고한 영혼들에 대해 마음 깊이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건국전쟁'은 4·19를 촉발시킨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것을 여러가지 객관적 자료를 통해서 증명했다. 4·19 정신이 뭔가? 자유를 위해서 불의에 항거했던 것 아닌가? 지난 70년 동안 한 명의 애국자를 살인마, 독재자로 난도질을 해왔다. 이런 잔인한 사회, 몰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평가가 과연 옳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야말로 불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1공장 45반의 여름', '김일성의 아이들'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이번에 '건국전쟁'으로 대박을 터트렸는데, 다음 작품으론 어떤 걸 준비하고 있나. ▲'건국전쟁 2' 제작을 계획 중에 있다. '인간 이승만'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볼 생각이다. 이승만은 그 자체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다. 지금도 조지워싱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라고 하면 아마 '대단한 석학'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걸 20세기 초에 한 사람이 이승만이다. 그 자체로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영화를 통해 거짓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벗겨내시기 바란다. 그건 사회와 언론, 그리고 개인들 모두가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거대한 거짓의 장막을 벗겨버리면 한 '노인'이 보일 것이다. 오직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대한민국 국민만을 사랑했던 한 노인, 그의 이름이 이승만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2-18 18:42:49배우 이영애씨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기부했다가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지난달 그는 이를 위한 범국민 모금에 5000만원을 냈다. "이 초대 대통령이 과도 있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분"이라고 하면서다. 하지만 이후 강성 진보좌파 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그에게 쏟아진 비난 중 "역사의식이 없다"는 정도는 약과다. 일부 극렬 야권 지지층은 "삼중수소 같은 여자"라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한때 '산소 같은 여자'라는 화장품 광고 카피로 인기를 끌었던 그를 핵 오염물질에 빗댄 것이다. 일종의 '집단 린치'나 다름없었다. 한 진보매체는 이영애에게 "이승만의 과거를 꼼꼼히 보라"고 '훈계'했다.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에 미온적이었거나, 좌우가 격돌했던 해방공간에서 과오를 저질렀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한 좌파 유튜브는 그의 기부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연관돼 있다는 가짜뉴스까지 내보냈다. 그러면서 황당하게도 기부 취지인 '자유민주주의'가 평소 윤 대통령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는 정황을 근거로 제시했다. 물론 야권 일각의 주장처럼 이 전 대통령은 정부 수립 초 친일 부역 혐의자를 요직에 기용하거나, 장기집권을 꾀한 과오는 있다. 그러나 인재풀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던 북한 김일성 정권 초대 내각엔 친일파 인사들이 더 많았다. 특히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독재의 결과로 북한이 지금 세계 최빈국이라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선진국을 향한 기틀을 세운 그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도 "우리 당에서 누구도 이영애씨가 이승만(기념관)에 기부했다고 해서 크게 당 차원에서 문제 삼거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은근히 이번 기부가 못마땅하다는 투다. 하지만 이영애는 그간 장애인단체, 보육원, 산불 피해 주민들에게도 온정의 손길을 보냈었다. 심지어 박정희·김영삼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단에도 후원한, 한결같은 '기부 천사'였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그랬던가. "인간은 감정으로 믿음을 정하고 난 뒤에 그 합당한 근거를 찾는다"고. 이번에 이영애의 '비좌파적 기부'가 마음에 들지 않자 '선택적으로' 공세를 퍼붓는 야권이 그 짝이다. 다행히 이영애는 이에 주눅 들진 않았다. "우리나라가 (북한 같은) 독재 공산국가가 됐다면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사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을 '딴따라'라며 얕잡아 보는 풍조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과연 정치권에서 이영애만큼 '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를 제대로 실천해온 인사가 있나. 당 대표 부인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휘말려 있는 터에 이념적 확증편향에 갇혀 이영애의 기부를 매도하는 야권은 논외로 치자. 윤 대통령을 포함해 여권 지도층 중에도 누가 그만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줬나. 그러긴커녕 최근 요직 개편 때 용산의 용인술은 이를 철저히 역행한 꼴이다. 대법원장 후보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등에 도덕성에 하자가 있는 인사를 발탁해 국민의 부아만 돋우면서.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는 그 대가였다. 그러니 여태껏 여야 지도부가 상대의 실책과 부도덕성에 따른 반사적 지지에만 기대 비호감 경쟁을 벌이고 있을 법하다. 그래서 "여야 어느 쪽도 도덕성과 능력의 우위를 보여줄 자신이 없으니 상대에게 '종북 좌파' '꼴통 보수'라는 꼬리표를 붙여 정쟁만 벌이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김경률 회계사)는 분석이 그럴싸하다. 이쯤 되면 여야 모두 "너나 잘 하세요"(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란 말을 들어야 할 판이다. 제발 한국 정치가 이영애 기부 선행의 반만 닮아도 좋겠다. 극단적 '갈등 공화국'의 수렁에서 헤어나 품격 있는 나라로 발돋움하려면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2023-10-30 18:13:47여야가 9월 정기국회의 관문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첫날부터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등 주요 현안을 두고 정면 충돌했다. 운영위에서도 채수근 상병 사건을 둘러싼 대통령실 개입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이에 따라 내달 1일부터 본격 시작되는 정기국회 내내 주요 현안 등을 둘러싼 여야 간 날선 공방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30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중국혁명운동가 정율성,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두고 이념 공방을 벌였다.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에 따르면 정율성은 독립운동 행적도 불확실한 데다 친북 행적이 뚜렷이 드러나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독립운동가로 서훈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안병길 의원도 "어떻게 김일성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인물을 자유 대한민국의 한복판에 역사공원을 세울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며 "(광주시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적인 것 같은데 이를 위해 역사를 깡그리 무시해도 되느냐"고 했다. 반면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립군은 독립군으로, 음악가는 음악가로 기리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이고 본질이라 생각한다"며 "그것을 포기하면 전체주의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도 "국가보훈부 장관이 광주에 이념의 색깔을 덧씌우려고 한다"며 "(대통령이) 역사에 대한 기준과 원칙 없이 마구잡이로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을 죽이는데 응원가를 부르고 나팔수 역할을 한 사람인데 그게 무슨 음악가냐"고 응수했다. 잼버리 대회 파행과 관련해 책임 공방도 벌어졌다. 김수흥 민주당 의원은 "정치권이 책임을 전라북도에 다 돌리니까 책임규명을 하겠다는데 이것이 왜 문제냐"라며 "전북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 사는 지역 중 하나다. 파행됐으면 전북도민을 위로하는 것이 중앙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 총리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전북도민을 향해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여가부에 책임이 있다고 일부 인정하면서도 "잼버리 같은 국제행사는 한 사람만의 탓이 아니라 공동 책임이라고 본다"고 했다. 한편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격돌이 이어졌다. 지난 기록적인 수해에서 발생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 대통령실 개입 의혹과 탈북어민 강제북송을 둘러싸고 여야가 맞붙었다. 김영배 의원은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법률적 권한도 없는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리고, 군사법원법에 따라 민간 경찰에 이첩하기로 돼있던 자료를 국방부 검찰단이 사실상 무단으로 탈취했다"며 "국가안보실이 조직적으로 수사 과정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고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정민 의원은 "긴급구제 안건 처리가 인권위원회 본연의 업무인데 계속 지연됐다고 보여진다"며 "상임위원회를 지연시키고 그 사이에 박 대령이 견책 처분을 받은 것을 핑계로 긴급구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추측되는데, 처음부터 긴급구제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고 절차를 운영한 거냐"고 비판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정경수 기자
2023-08-30 18:09:52[파이낸셜뉴스] 23일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모친인 김오복 여사가 광주광역시가 조성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철회를 촉구하며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항의했다. 김 여사는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37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 올해 2월 정년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군가 만든 정율성, 전쟁 부추긴 사람" 강조한 어머니 23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강 시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호국 유공자는 무관심하면서 북한·중국 공산 세력을 도운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보훈 가족에게 피눈물 나게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업”이라며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김 여사는 “정율성이라는 분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하고, 6·25전쟁 위문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하고, 중국으로 귀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국민 수백만 명이 희생되고 국토가 폐허가 된 전쟁을 부추긴 사람, 김일성에게 상장까지 받은 그런 사람을 위해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여사는 자신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 강 시장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라 중단하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달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했다. 한중 우호 상징인물로 선정하고 공원 추진했던 광주시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인물이다. 그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 활동을 한 후 중국으로 귀화했다. 2009년 중국 정부가 선정한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광주시는 정율성을 한중 우호 교류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고 2020년 5월 동구 불로동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광주시는 총 48억원을 들여 올해 연말까지 공원 조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이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자신의 SNS에 ‘48억원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려 “안중근, 윤봉길도 못 누리는 호사를 누려야 할 만큼 그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느냐”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하늘에서 정율성 찬양미화작업을 지켜 보고계실 독립지사와 호국, 민주화 영령들이 얼마나 통탄할지 솔직히 부끄럽다”며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강 시장도 SNS를 통해 “정율성 선생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자,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반박했고, 박 장관은 재차 “호남에 정말 기념할 인물이 없나. 돈이 되는 일이면 국가정체성도 필요 없나”라고 반박하며 설전을 벌였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2023-08-23 10:39:17[파이낸셜뉴스] 주한미군 장병이 월북하는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과거 비슷한 선택을 했던 이들의 결말은 어땠는지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19일(현지시간) 미군 병사가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밝혔다. 매체는 "이전까지 5건, 어쩌면 6건의 미군 월북 사례가 있다"라고 소개했다. 대마초·서명위조 등 범죄 저지르고 월북 알려진 첫 번째 사례는 1962년 5월 월북한 래리 앱셔 일병이다. 앱셔는 한국에서 대마초 관련 문제가 있었고 군법회의에 회부돼 군에서 쫓겨날 상황이 되면서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같은 해 8월 월북한 제임스 드레스녹 일병이다. 드레스녹은 상관의 서명을 흉내 내 외출증을 위조했다가 처벌받게 되자 월북을 선택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주한미군에 배속된 이래 실의에 빠져 홍등가를 전전했다고 털어놨다. 3년 뒤에는 제리 패리시 상병과 찰스 젠킨스 병장이 월북해 이들과 합류했다. 패리시는 개인적 이유로, 젠킨스는 베트남 전쟁에 차출될 것이 두려워 월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아비판'에 하루 10시간씩 김일성 교육.. "거대한 정신 나간 감옥" 북한은 당시 "미군 병사들이 서방의 자본주의적 삶을 버리고 사회주의 낙원을 택했다"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북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1966년 주북한 소련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매체는 "미국인들은 (북한에서의) 첫 몇 년의 상당 부분을 자아비판으로 보냈으며, 하루 10시간 넘게 김일성의 지독하게도 지루한 가르침(주체사상)을 강제로 배워야 했다"라고 했다. 월북한 미군 병사 중 유일하게 2004년 고향으로 돌아온 젠킨스는 "북한 당국이 자신들에게 감시역을 겸한 '여성 요리사'를 배정하고 성관계를 강요했으며 자신이 이를 거부하자 드레스녹을 시켜 수차례 폭력을 가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젠킨스에 따르면 이들 여성 요리사는 불임을 이유로 전 남편과 이혼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1978년 앱셔의 요리사가 임신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북한 당국은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서 납치한 여성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거기 가면 절대로 나오지 못한다" 월북 장병 모두 비참하게 사망 젠킨스의 부인인 소가 히토미도 1978년 일본에서 납치된 여성이다. 젠킨스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은 히토미는 2002년 다른 납북 일본인 4명과 함께 귀국했고, 젠킨스도 2년 뒤 풀려날 수 있었다. 젠킨스는 "나는 너무나도 무지했다"라면서 "임시 피난처로 찾았던 나라가 말 그대로 거대하고 정신 나간 감옥이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 그곳에 가면 거의, 절대로 나오지 못한다"라고 했다. 앱셔와 패리시는 1983년과 1998년 병사했고, 드레스녹도 북한에서 201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정착한 젠킨스는 2017년 노환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NK뉴스는 이밖에도 1982년에는 조지프 화이트 일병이 월북했으나 젠킨스 등과는 접촉한 적이 없고 3년 뒤 익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측은 1979년 재미교포 출신인 로이 정 일병도 월북했다고 주장하지만 가족들은 납치라고 주장해왔다. 그 역시 2004년 전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3-07-20 1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