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노태우 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 전 총리( 사진)가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4일 국민의힘 등에 따르면 노 전 총리는 23일 오후 10시 10분 경 서울성모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노 전 총리는 1년 전 혈액암 판정을 받고 혈액투석 등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제정치학자다. 미국 암스트롱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서울대 재직 당시에는 보수 성향 정치사상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대통령 직선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 사면·복권을 골자로 하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작성에도 참여했다. 1988년 노태우 청와대 외교담당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 등 이른바 '북방정책' 추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1991년 22대 국무총리직을 맡았다. 취임 후 명지대 강경대 학생 사망사건이 전국적인 시위로 번지며 책임을 지고 4개월만인 같은해 5월에 사의를 표명했다. 총리직 이후에도 민주자유당에서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무위원과 고문으로 활동했다. 명지대 교양교수와 서울디지털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에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엄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한 바 있다. 여러 차례 ‘각하’라고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노 전 총리의 유족으로는 부인 지연월(88)씨, 딸 모라(62)씨, 아들 진(57)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발인은 27일 오전이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2024-04-24 15:31:40[파이낸셜뉴스] 미국 국무부가 27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내고 전날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련해 조의를 표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27일(현지시간)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노 전 대통령 별세와 관련해 한국 국민들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라고 밝혔다. 프라이스는 "노 전 대통령은 복잡한 유산을 남겼지만, 재임 기간 한국의 민주적 전통 공고화와 유엔 가입,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강한 헌신이 포함됐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70년이 넘는 기간 한·미 동맹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와 다자 기구 강화,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등의 평화와 안보, 번영 증진이라는 공동의 약속을 위해 분투해 왔다"라고 했다. 국무부는 실형 선고 등 노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과거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6일 지병 악화로 향년 89세에 별세했다. 한국 정부는 고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내란죄 실형 등을 감안해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지 않을 계획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1-10-28 09:22:27[파이낸셜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여야 정치권에서 조의 메시지를 내고 있는 가운데 호남 지역구 여당 의원들이 국가장 예우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청와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절차에 따라 내부 논의를 거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갈리면서 정치권에서 국가장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예우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국가장 논란이 예고됐다. 국가장 실시 여부는 행안부 장관 제청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다. 광주를 지역구로 둔 조오섭·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노태우씨의 국가장 예우와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조오섭·윤영덕 의원은 "한 개인의 죽음 앞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 하지만 5월 학살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만으로 국가장 예우와 국립묘지 안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가장은 법에 따라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하는 것'인데, 노태우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한 책임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노태우씨는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2인자로 전두환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책임자 중 한 명"이라며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의 협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받은 적 있는 중대 범죄자"라고 규탄했다. 조오섭·윤영덕 의원은 "국민이 용서하지 않고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광주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 일부도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국가장 언급이 나왔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가장 예우 대상인지에 대해 유 실장은 "현재로서는 국가장 대상이지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영덕 의원이 국가장 예우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하자, 유 실장은 "법만 두고 보면 사면, 복권, 예우 박탈 등을 국가장 제한 사유로 명시해놓지 않았다"면서 "국가장이 가능하지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유 실장은 이어진 질의에서 "이 자리에서 예단은 적절치 않다. 논의를 하도록 할 것"이라며 "여러가지 정무적 판단도 필요할 수 있을 것 같다. 절차에 따라 내부 논의를 하겠다"고 했다. 청와대가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이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어 국가장 예우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2021-10-26 18:27:33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89)이 26일 오후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희소병인 소뇌위축증과 천식 등으로 오랜 병상생활을 해왔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집중치료를 받아왔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씨, 아들 재헌씨 등 1남1녀가 있다. 대통령 재임 기간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였다. 1932년생인 고인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에서 태어나 육사 11기로 임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육사 동기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명암이 가장 뚜렷했던 대통령으로 불린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직접선거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었으나 12·12 군사쿠데타와 이듬해 5·17 내란을 주도해 전두환 신군부의 주축이라는 낙인으로 퇴임 이후 활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별세로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2015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2018년) 등 3김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 '1노 3김'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장남 재헌씨는 최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하며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유족은 성명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평소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유족은 이어 "장례는 국법에 따라 최대한 검소하게 해주시길 바라셨다"며 "자신의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
2021-10-26 18:23:51노태우 전 대통령(89)이 26일 오후 별세한 가운데, 여야는 노 전 대통령의 치적을 평가하면서 고인을 애도했다. 노 전 대통령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의 핵심인물 이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달리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신중한 반응 속에 일정부분 평가하는 분위기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당 대선주자들도 고인을 애도하면서 5.18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해선 과오임을 언급, 과거사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다. 노 전 대통령 별세 소식 이후 민주당은 이날 공식적인 논평은 자제했으나, 고인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은 삼가면서 집권당시 치적과 퇴임 이후 반성 행보에 대해 평가했다. 이용빈 민주당 대변인은 파이낸셜뉴스와 통화에서 "전두환씨는 5.18 학살 만행의 책임자로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자기부정을 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책임의식을 갖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가족들도 광주를 찾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두환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 일정부분 평가 받을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6월 항쟁 이후 만들어진 직선제 개헌 이후 첫 대통령이었으니 대통령으로서 공도 있다"며 "남북기본합의서도 만들었고 IT 산업 혁명을 이끌 이동통신사와 토지공개념도 만드는 등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도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7일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할 예정으로, 민주당은 이에 맞춰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 별세 이후 빠르게 입장을 내놓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공식 선언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키면서 지금의 국민의힘으로 보수정당 명맥을 잇게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라고 강조한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북방외교 등의 성과도 거두었다"며 노 전 대통령 당시 성과를 부각시켰다. 다만 허 수석대변인은 "하지만 12.12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점,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민간인 학살 개입 등의 과오는 어떠한 이유로도 덮어질 수 없다"며 "국민의힘은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들도 일제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현충원을 방문한 뒤 "재직 중에 국방정책이라든가, 냉전이 끝나갈 무렵에 우리나라 외교에 지평을 열어준 것은 참 의미있는 그런 성과였다. 우리 노태우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노 전 대통령 시절 가장 잘한 정책은 북방정책과 범죄와의 전쟁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보수진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던 북방정책은 충격적인 대북정책이었고, 범죄와의 전쟁은 이 땅의 조직폭력배를 척결하고 사회 병폐를 일소한 쾌거였다"고 평했다. 김학재 기자
2021-10-26 18:19:33【파이낸셜뉴스 서울·베이징=안승현 기자 정지우 특파원】재계는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에 대해 "고인의 재임기간에 대해 여러 가지 상반된 평가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외교적 지위 향상과 국가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6일 "고인은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 중 하나로 평가되는 '서울올림픽' 개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우리나라의 외교적 지위 향상과 국가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무역협회도 "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88년은 서울 올림픽 개최로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흔을 딛고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해"라고 회고했다. 또 "올림픽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무대 등장과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고, 중국·구소련 등 국가들과 수교를 맺으며 북방외교를 추진해 오늘날 신북방 정책의 초석을 마련했다"며 "무역업계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재계 총수들의 방문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빈소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인 만큼 재계 인사들과의 교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례 절차등이 확정되는 대로 기업들의 조문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노 전 태통령 별세 소식을 긴급히 전하면서 공산권과 수교를 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는 노 전 대통령이 집권 5년 동안 북방외교를 통해 공산주의가 붕괴된 옛 소련과 동유럽국가들과의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성과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AP는 노태우정부 때 반공국가인 한국이 독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1989년 공산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를 시작으로 1990년과 1992년 각각 옛 소련, 중국과도 수교를 맺었으며 남북한이 1991년 동시에 유엔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최대 경제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남북한 긴장완화와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형성에 힘썼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냉전체제 붕괴에 기반, 구 공산권 국가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외교를 전개했으며 옛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중화권 매체들도 발 빠르게 보도했다. 한중 수교와 북방정책 등은 공로로 인정하면서도 군사쿠데타와 뇌물수수 등은 오점으로 평가했다. 중국신문망은 26일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한중 수교를 실현했다고 전했다. 중국청년망과 신랑 등 다른 매체들도 비슷한 소식을 타전했다. 대부분 한중 수교 주역이었다는 평가를 내렸고, 일부 매체는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선조의 뿌리를 찾기 위해 2000년 산둥성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올렸다. 대만 자유시보는 재임기간 동안 북방외교 정책을 통해 옛 소련, 중국,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국교를 정상화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군부쿠데타로 민주화를 역행시켰으며 뇌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정치적 오점을 많이 남겼다고 덧붙였다. ahnman@fnnews.com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2021-10-26 18:13:23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서울대병원 측은 "27일 오전 10시에 병원 장례식장 2층에 빈소가 차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현재 가장 큰 빈소인 3층의 1호실이 사용 중이다. 그 다음 크기의 빈소가 있는 2층도 모두 사용 중이나 27일 오전 비는 곳이 발생해 이곳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하면서 '국가장(國家葬)' 여부와 '국립묘지 안장'에 관심이 쏠린다. 우선 국가장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국가장법에 따르면 국가장은 전·현직 대통령이거나 대통령 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에 해당할 경우 치를 수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하며 별다른 예외 규정도 없다. 국가장을 집행하기 위해선 장례위원회가 설치되고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는다. 집행위원장은 행안부 장관이 된다. 국가장이 결정되면 정부는 빈소를 설치해 운영하며 운구와 영결식 및 안장식을 주관한다. 이 기간 중에는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지금까지 치러진 국가장은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가 유일하다. 노 전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될지는 미지수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반란을 주도한 혐의(내란죄)가 인정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후 복역하다 특별사면됐기 때문이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상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은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 내란죄를 저지른 자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다. 한편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과 관련, "현재로서는 국가장 대상이지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 출석해 "법만 두고 보면 (노 전 대통령이 내란죄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사면 복권이나 예우 박탈 등을 국가장 시행의 제한 사유로 명시를 안 해놨다"며 이같이 말했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
2021-10-26 18:13:21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명암이 뚜렷했던 지도자로 불린다. 헌정 이래 첫 직선제 투표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자 북방외교 강화·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든 사상 첫 대통령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전두환 신군부의 주축이라는 낙인이 마지막까지 따라다녔던 점에서다. 고인의 별세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했던 '1노 3김' 시대도 역사 속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12·12주축서 정권 2인자로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고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육사 11기 동기다. 전 전 대통령의 하나회는 군권 장악과 정권찬탈을 위해 '12·12'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 5공화국의 주축세력이 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쿠데타 거사일 절체절명의 순간에 휘하 9사단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 성공의 결정적 역할도 했다. 이후 고인은 5공화국에서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 보안사령관 근무 뒤 1981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면서 민주정의당에 입당했다. 이후 정무1장관을 거쳐 체육부장관, 내무부 장관,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거쳐 권력의 후계자로 발돋움하면서다.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선출되며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집권여당 당권도 쥐게 된다. ■6·29선언으로 승부수 DJ·YS 단일화 실패로 대통령 1987년에는 6월 10일 잠실 체육관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 뒤 격화되는 시위에 6·29 선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이 개헌 요구를 거부한 4·13호헌 조치를 발표해 민심이 들끓자 6·29선언으로 김대중 사면 복권 등 8개항의 유화조치 선언문이었다. 선언문에는 개헌과 대통령 직선제, 민주화 요구도 담겼다. 이후 야권의 정치 라이벌이던 DJ(김대중)·YS(김영삼)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가 두 사람을 누르고 13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집권 2개월 만에 총선에서 패배하며 여소야대 정국이 도래, 국정에 제동이 걸리자 또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과 함께 3당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노태우정부 5년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 시대를 뒤로하고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던 시대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신군부 세력 독자적으로 국정운영이 쉽지 않았던 점도 있다. ■재임 중 공산권 수교 강화, 남북기본합의서 마련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최대 업적은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과의 수교가 꼽힌다. 1990년 12월에는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갖고 한·러 간의 국교를 회복시켰고 중국과도 국교를 수립, 북방외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수교국가가 공산권을 포함해 45개국이었다. 또 다른 성과는 북한과 함께 유엔 동시 가입이었다. 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고 문화·체육의 교류를 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 외교에 나섰다. 1991년 11월13일에는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채택했다. 남북 고위급 회담에선 남북한 화해, 상호 불가침, 교류 협력을 골자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 현재 남북 회담의 골간이 되고 있다. ■퇴임 이후 구속수감에 건강 악화로 투병의 연속 퇴임 뒤 삶은 구속 수감과 투병의 연속이었다. 1995년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억원설'을 폭로했고 이후 검찰 수사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항소심을 통해 징역 15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으로 감형됐다. 노 전 대통령은 또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비자금 사건 등으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1997년 김영삼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석방됐다. 2002년 이후 전립선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되며 칩거와 투병을 이어왔다. 공식 활동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 마지막이었다. 2008년에는 희귀병 소뇌위축증 진단을 받아 투병했고, 수차례 폐렴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유족은 배우자 김옥숙 여사와 아들 재헌, 딸 소영씨가 있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
2021-10-26 18:13:17[파이낸셜뉴스]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사인은 다계통 위축증과 폐렴, 봉와직염 등 숙환이다. 이날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 전 대통령 사인에 대해 이처럼 설명했다. 김 원장은 "고인은 다계통 위측증 투병과 폐렴, 봉와직염 등으로 수차례 진료를 받아왔다"면서 "심부정맥혈전증 치료를 계속해왔고 최근에는 와상 형태로 서울대병원 재택의료팀 돌봄 하에 자택에서 치료를 받다가 하루 전부터 저산소증과 저혈압 증세를 보였다. 오늘 오후 12시 45분경 응급실을 방문했으나 1시46분에 서거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빈소는 27일 오전 10시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이후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고 1987년 대선에서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퇴임 이후 군사쿠데타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 받았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대비해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여왔고 최근에는 투병 생활을 계속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아들 재헌이 있다. 소영 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사위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박지연 기자
2021-10-26 18:00:03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뒤 군부 쿠데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13대 대통령(1988~1993년)으로 재임했다. 퇴임 후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는 등 역사의 심판을 받았으나 1998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삶엔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이 새겨져 있다. 노태우정부는 적어도 두가지 일로 역사에 남을 만하다. 먼저 북방정책이다. 취임 이듬해인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노태우정부는 1990년 소련(현 러시아), 1992년 중국과 잇따라 국교를 트는 데 성공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났다. 사상 첫 한·소 정상회담이었다. 사회주의 양대국과 국교를 맺은 덕에 한국 경제는 탄력을 받았다. 주택 200만호 공급 정책도 잊을 수 없다. 집권 초 한국 경제는 이른바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과 서울올림픽 특수로 흥청거렸다. 집값은 다락같이 치솟았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전례없는 공급 카드로 시장을 제압했다. 분당, 일산, 평촌, 중동 등 1기 신도시들이 다 이때 나왔다. 특히 서울 강남 바로 아래 지은 분당 신도시는 서울 집값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보수 노태우정부가 개발이익환수제 등 토지공개념 3법 도입을 시도한 것도 이채롭다. 이 덕에 김영삼정부 시절 집값은 유례없는 안정세를 보였다. 이른바 6·29 선언도 기억에 남는다. 1987년 4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정국은 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 이때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는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0월 27일 국민투표로 개헌이 이뤄졌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가 핵심이다. 이때 들어선 이른바 87년 체제가 아직도 한국 정치의 뼈대를 이룬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마음의 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 노재헌씨는 부친을 대신해 몇차례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사죄했다. 늦게나마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2021-10-26 17:3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