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마이크를 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인사한 더불어민주당 서울 도봉갑 안귀령 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았다. 26일 선관위에 따르면 도봉구선관위는 최근 안 후보의 행위에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서면으로 이같은 조치를 내렸다. 안 후보는 지난 13~14일 지역 내 한 주민센터에서 열린 노래 연습 교실에 방문했다. 그는 노래 ‘당돌한 여자’를 부르기 전 전주 단계에서 앉아 있는 유권자들에게 인사하면서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안 후보는 당시 선거운동 점퍼를 입고 있었고,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안 후보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는지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민원이 접수됐다. 현행 공직선거법 59조에 따르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닐 때는 마이크 등 확성장치를 사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오는 28일부터 내달 9일까지다. 이 규정 때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유세 현장에서 육성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예비후보였던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도 선거운동 기간 전 마이크를 잡고 “정권 교체를 해내겠다”고 말했다가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다만 선거목적이 아닌 기자회견이나 간담회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에 매번 발언이 선거운동과 관련됐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안 후보 측은 당시 노래 교실을 방문해 육성으로 인사를 했고, 노래를 잘 못하지만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는 입장이지만, 선관위는 안 후보가 선거 운동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발언이 선거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 운동복에 기호나 이름이 다 쓰여 있기 때문에 선거 운동복 착용을 선거운동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YTN 앵커 출신인 안 후보는 지난 2022년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해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지난달 23일 전략공천 된 뒤 안 후보는 과거 한 유튜브에 출연해 “차은우보다 이재명이 외모 이상형”이라고 말한 영상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3-26 06:47:50▲ 사진: 방송 캡처 '라디오쇼'에 출연한 서주경이 솔직한 입담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일 방송된 KBS 쿨 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는 트로트 가수 서주경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서주경은 행사비 질문에 대해 "관계자들에게 내 페이 맞추느라 후배들 페이 깎지 말라.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서주경이 '당돌한 여자'를 열창하자, 박명수는 "목소리가 정말 섹시하시다"라며 칭찬했다. 한편, 서주경의 '당돌한 여자'는 지난 1996년 발표한 곡으로 19년 동안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hanew@fnnews.com 한은우 기자
2016-06-10 11:57:00▲ 슈가맨 서주경 '슈가맨'에 전국민의 애창곡 '당돌한 여자'를 부른 서주경이 등장했다. 29일 방송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서 유재석 팀의 슈가맨으로 등장한 가수는 다름아닌 '당돌한 여자'의 주인공 서주경이었다. 서주경의 등장에 1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관객이 불을 켜, MC들을 놀라게 했다. '슈가맨' 방송 사상 최초의 올 불을 달성한 것. 서주경이 1996년에 발표한 트로트곡 '당돌한 여자'는 18년 동안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 상위권을 기록한 히트곡이다, 이날 20대의 한 남성은 “노래방 가면 여자애들이, 많이 불러서 이름이랑 노래 제목까지 다 알고 있었다. 잘 노는 여자 친구들이 많이 불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유희열팀의 슈가맨으로 출연 가수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 임주리였다. /fnstar@fnnews.com fn스타
2015-12-30 13:36:28▲ KBS 2TV 방송화면 캡쳐딕펑스가 서주경의 노래 '당돌한 여자'를 개성넘치게 소화했다. 7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2' 국제가요제 특집에 출연한 딕펑스는 더원에 이어 두번째로 무대에 올라 서주경의 노래 '당돌한 여자'를 선택했다. 딕펑스는 "오늘은 차분한 분위기의 무대를 준비했다"고 말한 뒤 보컬 김태현의 노래에 맞춰 김현우의 피아노 연주와 베이스의 김재흥, 드럼의 박가람의 연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원곡과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딕펑스는 명곡판정단으로부터 382표를 받아 더원을 꺾고 1승을 차지했다. 한편 이날 '불후의 명곡2'에는 딕펑스를 비롯해 비스트 장현승, 서문탁, 이세준, 베스티 유지가 출연했다. /여창용 기자 news@fnnews.com
2014-06-07 18:58:51온라인 상에 당돌한 유치원생들이 쓴 답안이 누리꾼들 사이서 화제다. 유치원생들이 질문에 당돌한 답안을 쓴 사진이 여러 장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 유치원생은 '미래에 하고 싶은 일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첫 번째로 "여자친구를 만들겠다"고 답했다. 이어 해당 아동은 "여자친구에게 키스하겠다"고 다소 당돌한 답안을 적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아이는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적어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 다른 아이는 지역 신문에서 유치원생들에게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우주로 나가서 세상을 부셔버리겠다(I would destroy it from outer space)"라고 답해 다소 엉뚱한 면을 보였다. 또 다른 아이는 수업시간에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대해 배운 뒤 '내가 미 대륙을 발견했다면…'이라는 주제로 글을 적었다. 플레나라는 이름의 사진 속의 글을 적은 아이는 "내가 미 대륙을 발견한다면 나는 내 동상을 세우겠다"며 "그래야 사람들이 그 동상을 보고 나를 기억할 것"이라고 답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돌한 유치원생들이 써낸 답안을 접한 누리꾼들은 "당돌한 유치원생들, 역시 애들이 예전과 다르다" "당돌한 유치원생들, 세상을 지배하는 법을 만화영화로만 배웠나보다" "당돌한 유치원생들, 그저 뭘 해도 귀엽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onnews@fnnews.com 온라인뉴스팀
2013-06-26 15:48:52팬엔터테인먼트는 18일 공시를 통해 SBS와 20억원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를 제작하게 된다. 제작회수는 100회다. /yscho@fnnews.com 조용성기자
2010-03-18 11:33:42[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명나라 때 장경악(張景岳)이란 의원이 있었다. 이름은 개빈(介賓)이고 호가 경악(景岳)이어서 주로 장경악이라고 불렸다. 장경악(1563~1640년)은 조선의 허준(1539~1615년)과 동시대의 인물로 중국 최고의 명의 중에 한 명으로 칭송된 인물이다. 장경악은 절강성 회계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영특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책을 읽을 때는 경서(經書)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또한 책에 적힌 장구(章句)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비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장경악의 당돌한 질문에 주위의 어른들이 당황하기 일쑤였다. 장경악은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서 북경으로 갔다. 장경악의 아버지 장수봉(張壽峰)은 아들이 총명한 것을 보고 보다 큰 곳에서 학문을 닦기를 바랐던 것이다. 장경악은 북경에서 경서와 사서에 해박한 명의 김몽석(金夢石)으로부터 의술의 이론과 실기를 전수받았고, <황제내경>을 배우고 익혔다. 이밖에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경서와 역사에 깊이 통달했으며 천문, 지리, 병법, 역리 또한 탐독했다. 장경악은 30세에 북동부 지역을 유람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때 한반도에는 일본이 15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명나라를 침략하고자 하는데, 조선이 길을 비켜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바로 임진왜란이었다. 조선의 선조 왕은 의주로 파천을 해서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명나라는 조선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병하게 되는데, 이때 장경악은 명나라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경악은 명나라 군대를 이끌던 총지휘관 송응창(宋應昌)의 젊은 참모로 활약했다. 조선 땅 의주에서는 어의 허준이 선조를 돌보고 있었다. 허준은 당시 54세였고 장경악은 30세였다. 훗날 당대 최고의 명의가 되었던 장경악이 만약 의주에서 허준을 만났다면 무슨 대화를 했을까? 그러나 사실 장경악은 당시에 의학에 매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허준과 장경악과의 만남은 흥미로운 상상일 뿐이다. 당시라면 허준도 <동의보감>을 집필하기 전이었다. 장경악은 군대에서 7년간 머물렀다. 그러나 그는 군인으로서도 성취욕이나 보람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임진왜란도 끝났고 아버지가 연로하고 가세가 빈곤해져서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게다가 귀국길에 요동 백성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목격하고 명나라 조정의 당파싸움을 보고서는 그때까지 품었던 공명심(公明心)이 모두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경악은 이때부터 의학에 매진했다. 그때 나이 37세였다. 어려서부터 이미 의서를 읽기 시작했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내경>과 함께 동원(東垣), 단계(丹溪)의 의서를 읽으면서 그 세밀한 뜻을 탐구하고 신묘함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동원(李東垣)은 금나라 때 명의로 비위의 기능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보토파(補土派)의 창시자로 <비위론(脾胃論)>을 저술했고, 주단계(朱丹溪)는 원나라 때 명의로 자음파(滋陰派)의 대가로 <단계심법(丹溪心法)>을 저술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이론이라면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 날 장경악은 어느 한 의서를 읽으면서 손을 입에 대고 키득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한 의원이 물었다. “의원님은 무슨 즐거운 일이 있으신 겁니까?” 그러자 장경악은 “내가 동원이나 단계가 <내경>의 군화(君火)와 상화(相火)를 해석한 이론과 주장을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비웃게 되었소. 그들의 불찰이 매우 심하구려.”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 의원은 장경악이 동원이나 단계의 주장을 읽고서 비웃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해 여름, 깊게 사귀었던 한 의원이 “‘양(陽)은 항상 남아돌고 음(陰)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은 단계로부터 나온 확고한 이론인데, 자네는 반대로 ‘양(陽)은 항상 부족하고 음(陰)은 항상 남아돈다’는 말을 하니 어떻게 이렇게 상반되는 것인가? 이를 통해 자기가 옳다고 억지를 부려 스스로를 뽐내려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단계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은데, 단계가 살아 돌아온다면 자네와 같은 후학의 경망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하고 핀잔을 주었다. 장경악은 속으로 ‘슬프구나. 이 친구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쉽게 현혹이 되어 감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쁘구나. 다행히도 이러한 논박이 있어 내가 다시 의혹을 풀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요즘 보면 단계의 이론 때문에 의원들이 너도나도 남아도는 양(陽)을 치료한다고 해서 습관적으로 고한(苦寒)한 약을 남발하고 있으니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매한 병자들이 용렬한 의원들에게 차디찬 황련(黃連)을 처방받고서도 하소연을 못하는 것이 400년이 되었네. 아무리 단계의 이론이라도 비판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친구 의원은 창피해서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경악은 의학에 있어서 확고한 관(觀)이 생겼다. 의술에 있어서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자만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동쪽 변방을 유람을 하던 중에 그곳에서 어떤 기인을 만났는데, 기인이 “당신도 의도(醫道)를 공부하는가? 의도는 어려우니 신중하게나.”라고 했다. 장경악은 “의(醫)는 비록 소도(小道)라도 성명(性命)이 관계되는데, 저라고 어찌 신중함을 모르겠습니까?”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기인이 장경악을 꾸짖으면서 “내가 보니 자네는 의(醫)를 알지 못하네. 성명이 관계된다고 해 놓고 의를 어떻게 소도(小道) 운운하는가? 먼저 참된 사람이 있는 후에야 참된 지혜가 있고 참된 지혜가 있는 후에야 참된 의사가 있는 법인데, 어찌 의도(醫道)를 이처럼 어떻게 쉽게 말하겠는가? 의도(醫道)는 어렵고도 크니 어찌 자신의 편협한 경험만으로 소도(小道)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네는 큰 의도를 얻기 위해서 더욱 힘써야 할 것이네.”라고 하였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장경악은 기인의 가르침을 듣고 부끄러워 물러나 몇 개월을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장경악은 61세(1624년)에 <내경(內經)>을 재편집해서 <유경(類經)>과 <유경도익(類經圖翼>을 지었다. 주위의 의원들은 장경악이 저술한 책들을 필사해서 금궤옥함(金匱玉涵)으로 여겨서 소중히 간직했다. 이 후 장경악은 1636년 73세에 이르러 그동안 연구한 의술을 한데 모아서 책으로 엮어 완성을 했다. 바로 그 유명한 <경악전서(景岳全書)>다. 누군가 “장경악은 평소에 병서에 능통했는데 어려서 배워 나이가 들어 사용하고자 했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그 이론을 의학으로 옮겨서 오화팔문(五花八門)의 기이함을 털어놓고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오화팔문(五花八門)은 본래 고대 병법의 명칭으로 변화무쌍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말한다. <경악전서>의 전충록(傳忠錄) 편에 보면 ‘옛날에 병법의 팔문(八門)이 있다면, 내게는 의가(醫家)의 팔진(八陣)이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장경악은 의서를 쓰는 것을 마치 병서를 쓰는 것처럼 했다. 그러나 당시는 명나라 말기로 어지러운 정세와 재정 문제가 겹쳐 있어서 장경악은 책의 집필을 끝내고 나서도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서 출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정리본을 결혼한 딸에게 물려주고서는 1940년 78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장경악의 딸도 출판할 만한 여력이 없어서 딸은 아들 임일위에게 물려주었다. 임일위는 1700년에 외할아버지의 <경악전서> 정리본을 들고 광동성 광주지역으로 가지고 가서 그 지역의 포정사(布政使) 직책을 맡고 있던 노초(魯超)에게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노공이 “이 책은 세상을 구하는 자비로운 배와 같다. 천하의 보물은 당연히 천하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녹봉을 기부해서 책으로 출판하자고 했다. 드디어 장경악이 <경악전서>를 완성한 후 60여년 만에 초간본이 간행되었다. 그래서 이 초간본을 요즘 노본(魯本)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경악전서>는 불세출의 명작으로 칭송받으며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의 허준은 <동의보감>을 지으면서 당대까지 쓰인 많은 의서를 참고했다. 그런데 참고문헌에 <경악전서>는 없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1610년에 완성이 되었고, 장경악의 <경악전서>는 1636년에 완성이 되었지만 1700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출판이 되었기 때문에 <동의보감>에는 <경악전서>를 참고문헌으로 찾아볼 수 없는 당연했다. 허준은 죽을 때까지 장경악과 <경악전서>의 존재를 모르고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장경악은 <동의보감>의 존재를 앓고 있었을까? 이들이 서로의 의서를 읽었다면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 * 제목의 ○○은 ‘군인’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악전서> 全書紀略. 先外祖張景岳公, 名介賓, 字會卿. 先世居四川綿竹縣, 明初以軍功世授紹興衛指揮, 卜室郡城會稽之東. 生穎異, 讀書不屑章句, 韜ㆍ鈐, 軒岐之學尤所淹貫. 壯歲遊燕冀間, 從戎幕府, 出楡關履碣石經鳳城渡鴨綠, 居數年無所就, 親益老ㆍ家益貧, 翻然而歸. 功名壯志, 消磨殆盡, 盡棄所學而肆力於軒岐, 探隱硏神, 醫日進名日彰, 時人比之仲景ㆍ東垣云. 苦志編輯《內經》, 窮年縷析하여, 彙成《類經》若干卷問世, 世奉爲金匱玉函者久矣. 중략. 是書也, 繼往開來, 功豈小補哉? 以兵法部署方略者, 古人用藥如用兵也. 或云: "公, 生平善韜鈐, 不得遂其幼學壯行之志, 而寓意於醫, 以發洩其五花八門之奇", 余曰: 此蓋有天焉. 特老其才救世, 而接醫統之精, 傳造物之意, 夫豈其微歟? 是編成於晩年, 力不能梓, 授先君, 先君復授日蔚, 余何人斯而能繼先人之遺志哉? 歲庚辰, 携走粤東, 告方伯魯公, 公曰: "此濟世慈航也. 天下之寶, 當與天下共之", 捐俸付剞劂, 閱數月工竣. 不肖得藉慰先人, 以慰先外祖於九原, 先外祖可不朽矣. 外孫, 林日蔚, 跋. (돌아가신 외조부인 장경악의 이름은 개빈, 자는 회경이다. 선대부터 선조들이 사천성 면죽현에 살다가 명초에 전쟁에서 세운 공이 있어 전공으로 소흥 위지휘의 지휘사란 벼슬을 제수받고 회계 동쪽 군성으로 집을 정해 거처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영특하여 책을 읽을 때에 경서에만 얽매이지 않고 선현의 장구를 중시하지 않았고, 특히 병서인 <육도>, <옥검>과 의서인 헌기의 학문에도 박통하였다. 30세 장년에 하북성 북부, 요녕성의 남부, 하북성 지역을 유람하였는데 돌아다니다가 서쪽 융 지역의 막부에서 출발하여 군대에 지원하여 유관을 나와 갈석을 거쳐 봉성을 지나 압록강을 건넜는데, 수년간 머물렀는데도 성취한 바가 없이 아버지가 더욱 연로하고 가세가 빈곤해져 갑자기 돌아왔다. 이즈음 젊은 시절에 공명심은 없어져 그간 공명을 위해 배웠던 학문을 모두 버리고 헌기의 학문에 진력하여 은미한 뜻을 탐구하고 신묘함을 연구하였는데 날로 의술이 발전하고 명성을 떨쳐 사람들은 중경, 동원과 비교하곤 하였다. <내경>의 편집에 고심하여 한평생 자세히 분석하여 몇 권의 <유경>으로 출간하니 세상 사람들이 금궤옥함으로 여긴지 오래되었다. 중략. 이 책은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를 열었으니, 그 공이 어떻게 작겠는가? 병법에서는 각각 역할을 분담시켜 방법과 전략을 세우는 바, 고인은 용약을 병법을 운용하듯이 하였다. 혹자는 “경악은 평소 병서인 <육도>, <옥검>에 능통했는데 어려서 배워 나이가 들어 사용하고자 했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의학으로 슬쩍 뜻을 돌려 오화팔문의 기이함을 털어놓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말하노니, 이는 하늘의 뜻이리라. 하늘이 그 재능을 높이 사서 세상을 구제하고 의통의 정수를 이어 조물의 뜻을 전하도록 했으니, 어떻게 그 뜻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공이 만년에 완성했지만, 출판할만한 힘이 없어 아버지에게 내려왔고, 내 아버지가 다시 내게 내려주었는데,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선인의 유지를 이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경진년에 광동으로 책을 가지고 가서 관찰사 노공에게 알렸더니 “이 책은 세상을 구하는 자비로운 배와 같다. 천하의 보물은 당연히 천하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하면서 녹봉을 기부하여 책으로 출판하도록 하여 몇 달 동안 글을 교정하고 검열하여 작업을 마쳤다. 불초한 사람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편하게 해드리고 구천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위로하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외손주 임일위가 발한다.) ○ 君火相火論. 余向釋《內經》, 於'君火以明, 相火以位'之義, 說固詳矣, 而似猶有未盡者. 及見東垣云"相火者, 下焦包絡之火, 元氣之賊也", 丹溪亦述而證之. 予聞此說, 嘗掩口而笑, 而覺其不察之甚也. 由此興感, 因再繹之. (내가 전에 <내경>을 해석할 때, ‘君火以明, 相火以位’의 뜻을 자세히 말했지만, 그래도 미진한 점이 있는 듯하다. 동원은 “상화는 하초포락의 화로, 원기의 적이다.”고 하였고, 단계 역시 이를 글로써 입증하였다. 내가 이 설을 듣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는데, 그들의 불찰이 심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내가 느낀 바를 다시 풀어서 말한다.) ○ 予出中年, 嘗遊東藩之野, 遇異人焉. 偶相問曰: “子亦學醫道耶? 醫道難矣, 子其愼之”, 予曰: “醫雖小道, 而性命是關, 敢不知愼, 敬當聞命”, 異人怒而叱曰: “子非知醫者也. 旣稱 ‘性命是關’, 醫豈 ‘小道’云哉? 중략. 醫道難矣, 醫道大矣. 중략.” 予聞是敎, 慚悚應諾, 退而皇皇者數月, 恐失其訓, 因筆記焉. (내가 40세가 넘어 동쪽 변방을 유람할 때, 어떤 기인을 만났다. 우연치 않게 “당신도 의도를 공부하는가? 의도는 어려우니 신중하라.”고 하여, 나는 “의가 비록 소도라도 성명이 관계되는데, 어찌 신중함을 모르겠습니까? 삼가 가르침을 듣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성내며 꾸짖기를 “당신은 의를 알지 못한다. ‘성명이 관계된다’고 해 놓고 의를 어떻게 ‘소도’ 운운하는가? 중략. 의도는 어려운 것이고 큰 것이다. 중략.”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가르침을 듣고 부끄러워 응낙하고 물러나 몇 개월을 전전긍긍하며 보냈는데, 그 교훈을 잃을까 우려되어 여기에 글로 적는다.) ○ 陽不足再辨. 予自初年, 嘗讀朱丹溪'陽有餘陰不足'論, 未嘗不服其高見, 自吾漸立以來, 則疑信相半矣, 又自不惑以來, 則始知其大謬矣. 故, 予於《類經ㆍ求正錄》中, 附有〈大寶論〉一篇, 正所以救其謬也. 중략. 玆於丙子之夏, 始得神交一友, 傳訓數言, 詢其姓氏, 知爲三吳之李氏也. 誦其指南則曰: "陽常有餘, 陰常不足, 此自丹溪之確論, 而玆張子, 乃反謂'陽常不足, 陰常有餘', 何至相反若此? 중략. 以是知先賢之金石本非謬, 而後學之輕妄何容易也?". 予聞此說, 益增悲嘆, 悲之者, 悲此言之易動人聽, 而無不擊節稱善也. 紫可亂朱, 莫此爲甚, 使不辨明, 將令人長夢不醒, 而性命所係非渺小, 是可悲也. 悲已而喜, 喜之者, 喜至道之精微, 不經駁正, 終不昭明, 幸因其說, 得啓此端而得解此惑, 是可喜也. 今卽李子之言以辨之. (양부족론에 대해 다시 한번 변론하다. 내가 젊어서 단계의 ‘양유여음부족론’을 읽었을 때는 그 고견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점차 30세가 되면서부터는 의심과 믿음이 절반씩이었고, 다시 40세가 되면서부터 큰 오류를 알게 되었다. 이에 내가 <유경:구정록> 중에 〈대보론〉을 부기하여 그 오류를 바로 잡았다. 중략. 병자년 여름에 어떤 친구를 깊게 사귀어 몇 마디의 가르침을 전했는데, 그 성을 물어 삼오의 이씨임을 알았다. 그 요점을 외워주자 이씨는 “‘양상유여 음상부족’은 단계로부터의 확론인데, 당신은 반대로 ‘양상부족 음상유여’를 말하니 어떻게 이렇게 상반되는가? 이를 통해 자기가 옳다고 억지를 부려 스스로를 뽐내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근본의 이유가 있는가? 중략. 이로써 단계의 금과옥조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니, 후학의 경망을 어떻게 용납하겠는가?”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자 슬펐는데,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쉽게 현혹되어 옳다고 감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도가 정도를 어지럽힘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명확히 변별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오랜 꿈속에서 헤매게 만들어 성명과의 관련이 작지 않을 테니, 이것이 슬펐다. 그러면서도 기뻤는데, 지도의 정미를 논박하여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분명히 밝힐 수 없었을 텐데, 다행히 이 말 때문에 단서를 밝혀 이런 의혹을 풀 수 있을 테니, 이것이 기뻤다. 이제 이자의 말로 이를 설명하겠다.) <논문> Building the Database with Herbal Formulas Based on the Korean Medical Classics. Herbal Formula Science. 2015. Dec, 23(2): 209-224 : 본서는 대략 1636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나, 장개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거하고 명말의 어지러운 정세와 재정 문제로 인하여 간행되지 못하였다. 이후 강희 39년인 1700년에 초간본이 간행 되었는데, 이는 당시 광동성 광주 지방의 포정사 직책을 맡고 있던 노초가 장개빈의 외손인 임일위가 소장하고 있던 유고를 간행한 것으로 노본이라 불린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6-27 09:54:39[파이낸셜뉴스] 이찬원의 전국투어 콘서트 ‘ONE DAY’ 대전 공연이 마무리됐다. 22일 대박기획에 따르면 이찬원은 지난 20,21일 양일간 충남대 대덕캠퍼스 국제문화회관 정심화홀에서 ‘2023 이찬원 콘서트 ONE DAY’(이하 ‘ONE DAY’) - 대전을 진행했다. 이번 대전 콘서트는 지난 티켓 오픈과 동시에 총 3600석 전석을 빛의 속도로 매진 시켰다. 이찬원은 ‘나와 함께 가시렵니까’를 부르며 오프닝을 열었다. 이어 ‘밥 한번 먹자’, ‘좋아좋아’, ‘트위스트 고고’ 등의 신명나는 선곡들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높였다. ‘대전부르스’, ‘낭만에 대하여’를 연달아 부른 이찬원은 '왜 돌아보오'와 '님은 먼 곳에', '꿈 트롯 메들리'(당돌한 여자, 우연히, 자기야, 너는 내 남자) 등 간드러지는 트로트 무대를 선사했다. ‘시절 인연’과 ‘참 좋은 날’로 부드러운 감성을 선사한 이찬원은 걸그룹 뉴진스의 ‘Hype Boy’, 지코의 ‘새삥’ 무대까지 소화했다. 이찬원은 '편지'를 비롯해 '토요일 밤에', 길가에 앉아서', '사랑하는 마음' 등을 어쿠스틱 버전의 무대로 선보이며 계절과 어울리는 산뜻한 무대를 꾸몄다. 이찬원은 ‘풍등’, ‘망원동 부르스’, ‘바람 같은 사람'을 열창했으며’ 자신의 애창곡으로 꼽는 10곡의 메들리(영동부르스, 잃어버린 30년, 이태원연가, 울긴 왜 울어, 태클을 걸지마, 내장산, 미운사내, 짠짜라, 남자다잉, 남자라는 이유로) 무대를 통해 다채로운 콘셉트와 선곡의 알찬 공연을 완성했다. 그는 공연 말미 ‘진또배기’를 부르며 관객들과의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처녀 뱃사공', '눈물을 감추고', '잘있거라 부산항', '섬마을 선생님', '소양강 처녀'로 구성된 5곡의 메들리 무대도 이어졌다. ‘소양강 처녀’ 무대에서는 관객들의 떼창이 더해졌다. 특히, 21일 진행된 공연에서는 기존 메들리에 '내 고향 충청도', '추풍령', '울고 넘는 박달재' 3곡을 추가 선곡해 깜짝 선보이며 색다른 무대를 꾸몄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대전 공연의 마지막을 알린 이찬원은 ‘오내언사’를 열창하며 이찬원 콘서트 ‘ONE DAY’ 대전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찬원은 양일간 트로트, 댄스, 발라드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선곡과 알찬 무대구성, 최첨단 무대장치를 활용한 화려한 공연을 선사하며 팬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대전 공연을 마친 이찬원은 6월 9,10일 부산, 6월 24,25일 고양에서 전국투어 콘서트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3-05-22 19:59:14가수 하이량이 박군과 다정한 투샷으로 훈훈함을 자아냈다. 하이량은 지난 13일 밤 방송된 KBS1 '가요무대' 신나는 겨울밤 편에 출연한 가운데 자신의 SNS를 통해 대기실 비하인드 컷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가요무대' 녹화에 함께 한 트로트 특전사 박군, 히트곡 '당돌한 여자' 서주경 등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하이량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하이량은 동료, 선배 가수들과 엄지 척 포즈와 브이(V) 포즈를 취하거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등 사진만으로도 따뜻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사진과 함께 “지금껏 가수의 길을 걸어오면서 포기하지 않도록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찐 의리 서주경 언니, 오랜만에 만난 박군 오빠, 성격 최고인 건 보면 볼수록 알겠더라는”이라며 “사진은 정신없어 다 못 찍었지만 이번에도 많은 선배님께 인사드리고 좋은 말씀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라며 진솔한 마음을 밝혔다. 이날 하이량은 금사향의 '홍콩 아가씨'를 선곡해 열창했다. 블랙과 레드가 매치된 세련되고 럭셔리한 복고풍 스타일링으로 무대에 오른 하이량은 독보적인 허스키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을 과시하며 귀 호강을 선사했다. 하이량은 완벽한 라이브는 물론, 자연스러운 제스처가 돋보이는 노련한 무대매너와 남다른 끼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불러일으켰다. 하이량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활약한 이후 지난 2021년 EP 앨범 'My Destiny'로 가요계 정식 데뷔했다. '신청곡', '꺼져', '사랑품' 등 다수의 트로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 KBS 부산 '아침마당' 스페셜 고정 MC로 대중을 찾았다. 한편 하이량은 다양한 무대 및 방송을 통해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seoeh32@fnnews.com 홍도연 기자 사진=하이량 인스타그램
2023-02-15 11:04:51[파이낸셜뉴스] 김호중·송가인의 특급 역조공 프로젝트 ‘복덩이들고(GO)’가 첫 해외 역조공을 떠난 복덩이 남매의 '가슴 뭉클' 복 전달 현장을 그려내 감동을 선사했다. 11월 30일 방송된 TV CHOSUN ‘복덩이들고(GO)’에서는 지난 주 '백년의 약속'에 이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열창한 김호중의 감성 충전 무대와 '가인이어라'를 통해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몰아 '당돌한 여자', '너는 내 남자' 등으로 객석을 들썩이게 한 송가인의 흥 폭발 무대가 '여주 한글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해외 애청자들의 성원과 수많은 사연에 힘입어 하늘길까지 건너간 복남매표 글로벌 역조공이 성사됐다. 이들의 첫 행선지는 바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라 태국이었다. 송가인의 공연 스케줄로 하루 먼저 방콕행 비행기에 오른 김호중은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도 기내식으로 나온 불고기 쌈밥을 폭풍 흡입한 뒤 행복한 단잠을 청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송가인은 어떤 화폐를 원하는지 묻는 환전소 직원의 질문에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등 공항의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여행 신생아'의 면모로 재미를 이끌어냈다. '여행 초보' 누나를 위해 든든한 동생 김호중은 "송가인을 모셔와라"라는 특명과 함께 깜짝 가이드 허경환을 파견해 송가인의 어설픈 셀프 출국을 도우며 '남매 케미'를 자랑했다. 태국의 아침을 맞이한 김호중은 '최애템' 후추를 비롯해 컵라면, 과자, 통조림 반찬 등 한국 편의점을 방불케 하는 먹거리들로 가득한 캐리어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김호중이 챙겨온 특식들을 뿌듯한 듯 자랑하자 카메라 감독은 "이거 다 태국에도 파는 건데?"라고 말해 김호중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곧 "한국이 좀 더 싸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웃픈' 장면을 연출했다. 잠시 후 유튜버로 변신한 김호중은 카메라를 들고 방콕 거리를 누비며 브이로그를 찍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 미리 외워온 태국 필수 단어 '헝남(화장실)'을 외쳐 폭소를 자아냈다. 둘째 날 드디어 '완전체'를 이룬 복덩이 남매 송가인, 김호중과 자칭 '동남아 전문' 가이드 허경환은 태국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사연자들을 만나 복 전달에 나섰다. 복남매의 노래를 들으며 어려운 시기를 버텼다는 교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 도착한 곳은 방콕 한인타운이었다. 코로나 이후 무너진 상권에도 이 악물고 일궈놓은 터전을 지켜낸 상인들, 타국에서 생활하느라 어머니의 임종조차 보지 못한 딸 등 여러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복남매는 '태국 교민 대축제'를 열어 타국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에게 기운을 북돋았다. 김호중은 "한국에 있는 저희도 힘든데, 타국에 계신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안좋으실지 느낀 시간이었다"라고 교민들을 만난 소감을 밝히며 나훈아의 '고향역'으로 교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자신의 곡 '서울의 달'을 부른 송가인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애절한 가사에 따뜻한 목소리를 더해 훈훈한 온기를 전했다. 방콕 시내 한가운데 울려 퍼진 복남매의 '위로송'으로 객석 곳곳에는 교민들이 눈시울을 붉히거나 휴지를 들어 눈물을 닦기도 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12-01 08:4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