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대평리 고분군 2호분 전경 양평 대평리 고분군 2호분 항공사진 출토 유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중부고고학연구소가 발굴조사 중인 경기 양평군 소재 '양평 대평리 고분군 2호분'이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중부 지역 최상위 계층의 신라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됐다. 굴식돌방무덤이란 돌을 쌓아 묘를 만들어 시신을 넣고, 한쪽 벽 또는 그 벽의 일부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흙으로 덮은 무덤을 말한다. 조사 결과, 고분은 봉분 지름 19.2m, 높이 4.7m에 이르는 원형의 봉토분(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만든 무덤)으로, 가로?세로 2.9m, 높이 3.3m 규모의 사각형 돌방의 남쪽 중앙에 무덤길을 갖춘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되었다. 돌방과 무덤길에는 회칠을 하였으며, 고분 전면과 측면 일부에 석축 시설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고분의 돌방 입구에서는 잘 다듬어진 2매의 문비석(門扉石, 문짝으로 사용하게 만든 돌)과 함께 문지방석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경주 지역의 최고급 고분에서 확인되는 문의 구조이다. 무덤이 이미 도굴된 관계로, 이번 조사에서는 철로 만든 관 고리와 관 못만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이 시기에 관을 사용한 사례는 신라 금귀걸이가 출토된 경주 부부총(夫婦塚)을 제외하면 신라 권역에서는 확인된 예가 드물다. 고분의 규모와 구조,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양평 대평리 2호분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조성된 중부 지역 최고 수준의 삼국 시대 굴식돌방무덤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9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일반 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이 (사)한국매장문화재협회를 통해 위탁 추진 중인 비지정 매장문화재 학술조사사업의 하나이다. 문화재청은 매장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앞으로도 중요 비지정 매장문화재 조사에 대한 지원을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5-09-08 09:16:16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경기도 양평에서 신라 돌방무덤이 발견돼 화제다. 지난 13일 문화재청은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돌방무덤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이번에 발견된 돌방무덤은 그동안 발견된 신라시대 고분군 중 최대 규모로, 판 모양의 돌과 깬돌(할석)을 이용해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면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봉토를 씌운 무덤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장은 조임식(사방의 벽을 좁혀 쌓은 방식)으로 구성됐으며, 내부는 시신을 올려놓는 시상대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연구소 조사단측에 따르면 이 무덤들은 양평군 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어 이미 30년 전부터 도굴된 것으로 추측 되고 있다. 연구소 조사단은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한 6세기 중엽 이후에 만들었다고 추정된다"라며 "무덤 주인공은 이 지역 수장층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도굴이라니"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무덤 주인은 궁금하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모양신기해"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편집부 news@fnnews.com
2014-11-14 14:32:23경기도 양평에서 신라 돌방무덤이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문화재청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해 신라 시대 굴식돌방무덤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이번 발굴조사에서는 1·2호분의 무덤이 발견됐으며, 이들 봉분(封墳)은 무덤의 외부를 보호하기 위한 내호석(內護石)과 외호석(外護石)의 2중 구조로 돼있다.돌방무덤은 방형의 평면 구조에 천장은 조임식(穹?形:사방의 벽을 좁혀 쌓은 형식)으로 이뤄져 있으며 내부에는 바닥에 시체를 올려놓는 시상대(屍床臺)를 갖췄고 벽에는 회를 바른 흔적을 발견했다.또 돌방무덤의 입구에서 널방에 이르는 통로인 널길과 외부에서 무덤방으로 향하는 무덤길을 설치해 추가 매장이 가능토록 설계돼 있다.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미뤄 6∼7세기에 만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무덤은 지방 호족이나 중앙 정부인 경주에서 파견된 고위급 지방관의 것으로 추정된다.한편 문화재청은 14일 오후 2시 이번 발굴과 관련된 현장설명회를 열 예정이다.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요즘 유적발견이 잦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거의 1500년 된 거구나"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수능 끝나고 발견되서 다행"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신기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onnews@fnnews.com 온라인뉴스팀
2014-11-14 09:55:41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경기도 양평에서 신라 돌방무덤이 발견돼 관심이 뜨겁다. 문화재청은 13일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돌방무덤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 무덤은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고분군으로는 신라 최대 규모로 전해졌다. 이번에 조사된 1·2호분의 봉분은 원형으로 봉분에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돌담 시설인 호석(護石)을 이중으로 갖췄으며, 무덤 바깥과 통하는 무덤방은 아치형이다. 그러나 무덤들이 30년 전 이미 도굴이 진행돼 내부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연구소 측은 전했다.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볼 때 6∼7세기에 만든 것으로 연구소는 추측하고 있다. 무덤의 주인공은 지방 호족이나 중앙 정부인 경주에서 파견된 고위급의 지방관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대박"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와우"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도굴꾼들 빠르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다 파갔어?"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편집부 news@fnnews.com
2014-11-14 09:41:19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양평에서 신라의 돌방무덤이 발견되면서 화제다.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돌방무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로 굴식돌방무덤이란 판 모양의 돌과 깬돌(할석)을 이용해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봉토를 씌운 무덤이다. 천장은 조임식(사방의 벽을 좁혀 쌓은 형식)으로 이뤄져 있으며 내부에는 바닥에 시신을 올려놓는 시상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조사팀은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미뤄 6∼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돌방무덤 발견 소식에 누리꾼은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대체 언제 적 무덤이야?”,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유물은 없다고?”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편집부 news@fnnews.com
2014-11-14 08:14:51[파이낸셜뉴스] 부여 왕릉원, 동고분군에서 백제 왕릉급 고분이 추가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부여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여 왕릉원 동고분군 발굴조사’에서 백제 고분의 축조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고분 2기가 확인되어 오는 4일 오후 2시 발굴현장을 공개한다. 부여 왕릉원은 일제강점기에 3차례(1915년, 1917년, 1938년) 조사가 이뤄진 바 있으며, 조사구역인 동고분군에서도 5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새로운 고분 1기(6호분)를 추가로 발견하였고, 일제강점기에 확인되었던 고분 1기(1호분)의 실체를 재확인했다. 조사된 고분은 모두 원형의 봉분과 지하에 매장주체부를 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새롭게 발견된 6호분은 동쪽 능선 남사면에 입지하며, 고분 축조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백제 사비기 왕릉급 고분의 조성과정과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봉분은 지름 20m 정도로, 외부에는 경계석렬(호석, 護石)이 확인되었고, 고분 외곽의 사면부 하단에는 2단의 축대도 설치하여 묘역을 조성했다. 돌방무덤 앞 무덤길은 두 차례에 걸쳐 조성되어 추가 매장의 흔적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봉분 내 추가 매장 흔적은 부여 왕릉원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왕릉급 고분의 매장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바 있는 1호분은 재조사를 통해 고분의 위치와 규모를 명확히 확인했는데, 고분 조성 전에 땅을 반반하게 고른 후 쌓아올린 봉분과 돌방무덤 앞에 매장을 위해 길게 조성된 무덤길(묘도)을 새롭게 확인했다. 4일 발굴현장 공개 후에도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조사기간 중 상시로 현장을 개방하여 백제문화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높여 나갈 예정이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과 부여군은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부여 왕릉원 동고분군의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05-03 09:15:23[파이낸셜뉴스] 신라 왕경오악이자 사령지로서 신라사의 중요한 공간인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이 사적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북 경주시에 자리한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신라 왕경오악(王京五岳)의 북악(北岳)이자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던 사령지(四靈地)로서 신라의 신성한 공간이며, 신라사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유적이 밀집된 장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다. 경주 금강산은 신라건국과 국가 형성단계의 중요한 신성한 공간일 뿐 아니라 삼국유사 기이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기록된 진한 6촌 중 3개의 촌의 천강설화와 연관된 역사적 공간이다. 신라의 신성한 공간으로서의 역사적 상징성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신라 불교공인의 계기가 된 이차돈 순교와 관련된 신라의 불교성지의 공간이다. 신라 불교공인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차돈과 연관된 백률사와 이차돈순교비 등 불교 수용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며, 주변으로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유형문화재) 등 신라 불교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화재가 산재돼 있다.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왕경인의 사후 안식처이자 신라의례의 공간으로도 이용됐다. 탈해왕릉(사적)을 비롯해 금강산 표암봉 일원에 입지한 동천동 고분군(굴식 돌방무덤)은 왕경의 매장공간이 도심 중심에서 주변 산지구릉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처럼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은 신라의 정치·종교·의례와 관련한 중요한 문화유산이 밀집한 지역으로 신라형성의 터전인 신성한 역사적 공간성과 신라불교 성지로의 상징성, 신라 의례의 장소성 등 신라사의 중요한 전환기 모습이 잘 드러나는 유적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가곡’ 보유자로 이동규씨를 인정 예고하고, 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전승교육사 이호원씨 등 16명(13개 종목)의 전승교육사를 명예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04-22 09:09:03[파이낸셜뉴스] 부여 왕릉원에서 백제 왕실의 장례문화 흔적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시행해온 부여 왕릉원 4호분의 발굴조사 결과, 백제 장례문화의 일면을 밝혀줄 수 있는 토기 2점을 새롭게 확인했다. 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1915년, 1917년)에 확인된 6기의 고분과 1966년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는데, 당시 고분들의 조사내용이 빈약하고, 사진과 도면자료도 매우 부족한 편이어서 백제 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4호분의 경우에는 도면조차 남아 있지 않고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가장 먼저 재조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사 결과, 4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 연도, 묘도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됐다. 또 상부구조인 봉분도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백제 시대 왕릉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확인됐다. 특히, 4호분 무덤 입구(묘도)의 바닥 양쪽에서는 매납(埋納)시설 2기가 처음 확인되었는데, 매납시설 안에는 토기를 똑바로 세워 넣은 뒤 편평한 판석(쪼갠 돌)을 뚜껑으로 덮은 형태로 확인됐다. 묘도 내부에서 토기에 돌을 덮은 시설은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백제 시대 장례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 묘도를 축조한 뒤에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매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의과정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토기에 담긴 내용물을 밝힌다면, 당시 제의과정을 보다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되어,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토기 내부에 쌓인 흙에 대한 유기물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 3월부터는 3호분(서하총)의 발굴조사를 추진한다. 3호분 역시 4호분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 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음이 확인돼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 3호분은 2021년에 조사됐던 4호분의 남쪽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 부여 왕릉원 내 고분의 입지와 조영 순서 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성과가 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3호분의 조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4호분의 상시 현장공개를 병행하고, 전체 조사과정을 영상으로 제작·공유하여 조사 성과를 신속히 공개할 계획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02-23 09:05:20[파이낸셜뉴스] 충남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새로운 명문 벽돌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21년 상반기부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추진하여 왕릉급 고분을 재확인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무덤 입구를 폐쇄하는데 사용한 벽돌을 전량 수습해 정리한 결과, ‘조차시건업인야’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을 새롭게 확인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는 굴식돌방무덤과 벽돌무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이 중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 벽돌이 이미 출토된 바 있어 당시 대외교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비교 평가되고 있다. 이번 29호분 벽돌에서 처음 확인된 명문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것으로서 당시 제작자의 출신지가 기록된 매우 중요한 자료다. 29호분에서 확인된 명문은 반으로 잘려진 연꽃무늬 벽돌의 옆면에 새겨져 있으며, 글자는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로 판독된다. 그 내용은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로 해석된다. 이 명문은 다음과 같은 학술적 가치가 있다. 건업인(建業人)은 중국 남조의 남경 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제작자의 출신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출신의 명시는 제작자가 외부인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당시 벽돌과 무덤의 축조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음을 더욱 분명하게 알려준다. 명문의 서체 및 내용이 6호분 명문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어, 당시 제작과정에서 상호 연관성이 주목됨에 따라 추가적으로 관련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6호분 명문의 경우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 또는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 등으로 판독된다. 명문에서 표기된 ‘양(梁)’은 중국 양나라(502~557년)를 가리키는데, 이번 29호분 명문 역시 제작자의 출신지가 남조의 도성인 ‘건업(建業)’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두 고분의 명문을 통해 벽돌무덤이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제작에서도 중국 남조의 기술자들이 직접 참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01-27 09:13:58[파이낸셜뉴스] 가야 내륙지역 정치체의 성립부터 소멸까지 전 과정 볼 수 있는 고분군인 ‘합천 삼가 고분군’이 사적으로 지정됐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소가야, 대가야, 아라가야와 신라지역의 토기가 다양하게 출토되고, 제가야와 신라 토기 특성이 융합된 토기들의 생산 양상, 삼가식 고분의 축조방식 등을 통해 가야권역 내륙지역 정치체의 변천이 잘 드러나는 유적이다. 문화재청은 경남 합천군에 자리한 ‘합천 삼가 고분군(陜川 三嘉 古墳群)’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330여기의 고총고분으로 구성된 가야 내륙지역의 중심 고분군이다. 1~7세기 사이 널무덤(목관묘) → 덧널무덤(목곽묘) →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에 이르는 가야 고분의 구조, 규모의 변천 과정과 함께 외형과 부장품 품목 구성의 변화를 통해 가야권역 내륙지역에서 가야 소국으로의 정치체 성립과 성장, 발전, 소멸의 전 과정을 드러내는 학술·역사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고분의 입지, 매장주체시설의 수, 봉분 규모, 부장품 품목 구성 등에서 고분군을 형성한 집단의 사회 위계를 짐작할 수 있으며,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걸쳐 형성된 다수의 매장시설이 중첩 확장된 구조인 ‘삼가식 고분’의 분포 범위를 통해 가야 내륙지역 정치체의 규모와 존재 양상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토기 양식의 변화를 보면 소가야 양식 토기와 대가야 양식 토기가 병존하다가 6세기 전반부터는 대가야 양식 토기가 부장되어 있다. 1~7세기에 걸쳐 고식 와질토기 → 신식 와질토기 → 고식 도질토기 → 소가야 양식 토기 → 대가야 양식 토기로의 점진적인 변화상이 뚜렷하여 가야의 문화 변천과 특정 가야로의 문화적 귀속을 보여준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11-24 09:0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