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가결’로 마무리된 가운데, 김남국 무소속 의원은 이날 가결표를 던진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신의 없는 모사꾼”이라 표현하며 날을 세웠다. 거액의 가상자산 보유 의혹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은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자 일부 의원들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결과”라며 “대표가 공천권을 완전히 내려놓고, 과거처럼 계파별로 지분을 인정해주었다면 체포동의안은 부결되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 의원은 “어느 정도 힘 있는 현역 의원 공천은 확실히 보장해주고, 복잡한 지역은 적절하게 미리미리 경쟁자들을 교통정리 해줬다면 당연히 부결되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그럴 수 없었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에서는 정의로운 척 온갖 명분을 가지고 떠들며, 뒤로는 모사를 꾸미는 협잡꾼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이 대표의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을 탈당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을 더 사랑하는 당원들이 민주당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구태정치와 모사꾼들은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의석수가 한두 자리 줄어들더라도 없는 것이 더 나은 사람들은 이번에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큰 대의와 민주당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공천 받아서 국회의원 한번 더 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다. 없어도 전혀 티가 안 나지만, 있으면 민주당에 해가 되는 존재”라며 “이런 구태 정치와 신의가 없는 모사꾼들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해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110명), 여권 성향 무소속(2명), 정의당(6명), 한국의희망(1명), 시대전환(1명)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무효와 기권을 포함해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최소 39표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2023-09-22 06:34:38[파이낸셜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광주를 찾은 가운데 "이번 선거를 끝으로 호남의 표심을 독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민주당에게 경종을 울려달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 충장로에서 가진 유세를 통해 "이번 선거를 끝으로 광주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전통적인 보수층의 편견을 부러뜨려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강조한 이 대표는 호남 표심을 향해 "여러분의 가장 강한 권리를 행사할 5년에 한번 있는 기회"라면서 "후보와 제가 목이 쉬어가며 외치는 정치의 변화를 저 멀리 떨어져 팔짱끼고 합류를 주저하는 국민의힘의 나머지 배 11척이 합류하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지역주의에 기대는 토호들과 정치를 다시 과거의 문법으로 되돌리려는 모사꾼들이 우리의 새로운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물살을 타고 몰려든다"며 "저는 물살이 바뀔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저는 정치를 하는 동안 광주와 호남에 대한 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광주와 호남을 위해 하는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복합쇼핑몰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우파 포퓰리스트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특히 30대 당대표로 선출된 자신을 언급한 이 대표는 "어느 누구도 정치권에서 2030의 목소리를 더이상 가볍게 보지 않는다"며 "광주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주인공이 되어달라. 대선에서 여러분이 보여주시는 한표한표의 숫자는 기록에 남아 광주의 토호 정치인들을 떨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번에 광주와 호남을 볼모잡고 광주정신을 복합쇼핑몰 문제에 끌어붙이는 지역 토호 정치인들의 카르텔을 깨지 못한다면 그 기회는 다시 몇년 뒤에 올지 모르는 문제"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광주의 시민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막연한 관성 속에 이어져가는 광주의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며 "내일을 준비하는 국민의힘은 절대 광주와 호남을 빼놓지 않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2022-02-24 19:36:40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다시 읽었다. 임진왜란 6년(1592~1598년)을 뒤돌아본 반성문이다. "뒷날에는 이런 낭패스러운 일이 없도록 미리 조심하자"는 뜻을 담았다. 일본과 다시 맞붙은 지금, '징비록'을 훑어보는 것은 후손된 자의 도리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이순신이다. 깜짝 놀랄 대목이 많다. '징비록' 속 이순신은 내가 겉핥기로 아는 이순신이 아니다. 용맹하다. 그러나 무모하지 않다. 한마디로 그는 용의주도한 사람이다. 몇가지 사례를 보자. 정유재란이 일어난 해(1597년), 이순신이 옥에 갇힌다. 나가서 싸우라는 임금(선조)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어떤 장군이 감히 대통령의 명을 어기고 전투를 거부할 수 있을까. 조선 조정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하다. 한 유생은 "이순신의 목을 치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나마 선조가 이순신의 죄를 백의종군으로 감형한 것이 다행이다. 이순신은 왜 싸우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아래 요시라라는 모사꾼이 있었다. 요시라는 우리편 장수를 찾아가 "아무날에 일본 수군이 바다를 건너올 테니 조선 수군이 기다리고 있다가 치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꼬드긴다. 요시라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간질이다. 우리편 장수는 이 정보를 부리나케 조정에 알렸다. 임금은 이순신더러 나가 싸우라고 명한다. 이순신은 이를 거짓정보로 의심했다. 그래서 뭉그적댔다. 손자병법은 "싸울지 말지 그 여부를 아는 자가 승리한다"고 했다. 이순신은 병법을 아는 장수였다.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을 대하는 이순신의 태도는 더 놀랍다. 진린은 마치 상전이라도 되는 양 난폭하게 굴었다. 그래서 서애는 "진린 때문에 장차 이순신이 싸움에서 지겠구나"하고 걱정했다. 웬걸, 이순신은 진린과 완벽한 콤비를 이룬다. 진린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이순신은 진수성찬을 차렸다. 왜군 목을 베어와서는 죄다 진린에게 바쳤다. 감복한 진린은 그 뒤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이순신부터 찾았다. 임진왜란의 대미를 장식한 노량해전(1598년)도 조·명 연합수군이 왜적을 무찌른 전투다. 슬프다, 바로 이 해전에서 이순신은 목숨을 조국에 바친다. 원래 이순신은 나긋나긋한 인물이 아니다. 무과에 붙고 첫 벼슬을 할 때 병조판서가 제 서녀를 첩으로 주려 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어찌 권세 있는 집안에 기대어 출세하기를 바라겠는가"하고 단박에 거절했다. 이렇듯 심지가 굳은 인물이 진린 앞에서는 기꺼이 몸을 낮췄다. 제 일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그러했겠는가. 일본 아베 정권이 과거사를 핑계로 경제전쟁 시비를 걸었다. 마땅히 힘을 모아 맞서야 한다. 하지만 감정을 앞세워 무턱대고 싸우진 말자. 이순신은 싸우기 전에 군량미를 확보하고, 장정을 모으고, 대포를 주조하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런 뒤에도 싸움터에 나설 땐 빈틈이 없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 '12척'도 이순신 정신이지만 용의주도함 역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충무공 정신이다. 이순신은 죽창 들고 조총에 맞설 사람이 아니다. 진린은 조선 임금에게 글을 올려 "통제사(이순신)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가 있다"고 칭송했다. 하늘과 땅, 곧 세상을 다스릴 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더 많은 사람이 '징비록'을 읽고 영웅 이순신의 참모습을 알면 좋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2019-08-12 17:15:28연구년으로 미국에 있을 때이니 2013년의 일이다. 도서관에서 컴퓨터로 신문을 검색하던 중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왼쪽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오른쪽에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논의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의 제목이 맘에 들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3인'. 세계를 움직이는 세 사람 중 두 명이 한국인이라니. 미국 국적인 김용 총재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한국인 아닌가. 기사를 읽어보니 기자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국제기구를 하나는 한국인이, 또 다른 하나는 한국계(미국인)가 이끌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게 '코리아'에 주목한 이유가 있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war-torn)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은 오늘날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 반 총장과 김 총재 모두 한국의 발전과정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함께 협력하면 가난한 나라들을 도우려는 국제기구들의 노력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 요지의 글이었다. 내가 괜히 으쓱해지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유엔 무용론 등이 무성하지만 유엔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기구다. 사무총장 역시 반기문 전 총장의 말마따나 세계 지도자들과 개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자리다. 전직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쌓아온 각국 지도자들과의 친분 관계는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너무 크다. 반 전 총장의 처신에 대한 말이다.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 국제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현직일 때는 강대국 역학관계를 살피느라 제대로 일을 못했을 수도 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전직 프리미엄을 가지고 움직였다면 현직 때보다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난민 문제, 빈국 개발 문제 등에서 국제적 특사 역할 등도 생각할 수 있다. 좀 다른 차원이지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예도 있다. 처음부터 전직 대통령이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 아닌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처신했다면 그가 칭찬하던 새마을운동 전파도 훨씬 수월하게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거의 위인 반열에 올랐던 반 전 총장이다. 장차 국제기구에서의 활약을 기대하며 공부하는 수많은 '반기문 키즈(kids)'들도 그의 후광 덕분이다. 반 전 총장은 불과 20여일 만에 그 같은 자산의 대부분을 까먹어버렸다. 국내외 사람들이 본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한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소중한 인물을 우리 스스로 깎아내리기 바빴던 것도 그 결과물이다. 최악의 사무총장, 보이지 않는 인물, 우려만 하는 사람(concern-man) 등 서방 언론의 평가를 우리가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적대적인 한국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이제는 거의 기정사실화돼 버렸다. 전직 유엔 사무총장의 금의환향 길이 진창길이 된 걸 이제 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언론과 정치판의 '나쁜×'들을 비난해봐야 더 누추해질 따름이다. 뜬구름 같은 여론조사와 정치 모사꾼들의 등에 업혀 춤춘 것은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정신이 들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걱정은 그가 아직도 무언가 국내 정치판에 '기여하려는' 생각을 내비친다는 점이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에게 걸었던 국제사회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이제라도 다시 상기해야 한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국제무대의 주요 국가로 성장한 한국의 비결이 무엇인가. 몸소 겪은 그 경험을 국제사회와 나누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김용 총재와 함께라면 더 좋은 일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17-02-02 16:50:46진(秦)나라의 시황제를 도와 중국 통일의 과업을 이룬 최고의 공신은 한비자(韓非子)와 이사(李斯)였다. 한비자가 이론을 제공했다면 이사는 이를 적용시킨 실천가였다. 이사는 초나라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젊은 시절 지방관청의 문서 담당으로 일했다. 하급관리로서 인생의 목표도 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쥐들의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뒷간의 삐쩍 마른 쥐는 더러운 오물을 먹으면서도 사람에게 들킬까봐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데 곳간의 통통한 쥐는 풍족하게 널린 곡식을 먹으면서도 사람이 오건말건 여유작작이었다. 순간, 이사는 인간도 어떤 환경 속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길로 하급관직을 박차고 나와 큰물에서 놀기 위해 당대 최고의 학자인 순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제왕의 도에 뜻을 두고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한비자와 더불어 순자의 수제자에 오르게 되었다. 이사는 자신의 꿈을 펼칠 나라로 '진'을 주목했다. 그는 진의 최고권력자인 여불위의 식객으로 들어가 때를 기다렸다. 여불위의 눈에 띈 그는 진왕의 시종으로 천거돼 조정에서 일하게 되었다. 진왕이 천하를 평정할 야심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이사는 신속하게 다른 제후국을 제압할 방안을 보고했다. 각 나라로 모사꾼을 보내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중신들은 매수하고, 거부하는 자는 몰래 처치한다. 군신들을 이간시켜 국력을 약화시킨 후, 재빨리 6국을 쳐들어갔다. 이에 진왕은 이사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측근으로 중용했다. 이 무렵, 진나라는 한나라 출신 기술자의 권고로 관개수로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공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것이 진나라의 국력을 소비시키려는 한나라의 모략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러자 진나라 대신들이 들고일어나 외국인 관료들을 추방하는 법령을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추방의 위기에 몰린 이사는 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문을 올렸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클 수 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거절하지 않았기에 깊을 수 있으며, 임금은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 상소로 축객령은 철회되고 그는 더욱 왕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기원전 221년 마침내 진나라는 이사의 도움으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사는 각종 문물을 통일시키고 지방통치제도를 확립하는 등 통일제국을 굳건히 만들었다. 그러나 진시황이 여행 중 죽은 후, 이사는 후임 황제에게 간신 조고 등을 탄핵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모반 혐의로 체포되어 그의 아들과 함께 거리에서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사는 미천한 신분의 외국인으로 진나라 최고의 권력가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스승 순자의 예감대로 지나치게 권력을 탐내고 과시하는 바람에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됐다. 순자의 제자로 수학할 때 스승은 이사가 총명하고 재능이 있어 높이 오를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순자는 "안타깝게도 세상에 대한 원한이 많고 권세를 너무 탐내는구나. 또한 스스로를 감추지 못하니 나중에 좋은 끝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역사가 사마천은 이사에 대해 "이런 결점만 없었다면 그의 공적은 주공단(周公旦)이나 소공석(召公奭)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2015-06-29 17:10:19채동욱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한 가운데 채 총장을 사실상 퇴진시킨 법무부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13일 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의 후퇴로 비칠 수 있는 총장사퇴를 재고해 달라"는 성명을 낸데 이어, 14일에는 김윤상 대검찰청 감찰 1과장(44·사법연수원 24기)가 사의를 표명했다. 김 과장(부장검사급)은 이날 검찰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경솔하지만 창피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려 한다"면서 사퇴의사를 밝혔다. 김 과장은 "총장의 단호한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면서 "차라리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아들딸이 커서 2013년 초가을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도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어 볼 때 대답하기 위해 물러난다"고 언급하는 등 채 총장이 부당하게 물러나게 됐음을 강조했다. 아울러 "후배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장관)직을 걸 용기없는 장관과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이라는 표현으로 법무부의 채 총장에 대한 감찰지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과장은 윌 스미스가 주연한 'Enemy of State'를 언급하며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에 짓눌려서는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혔다. 또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한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면서 "어떤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과 대검 감찰1과장 등 채 총장을 전격 퇴진시킨 법무부와 청와대의 결정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이 잇따르면서 검찰 내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김윤상 과장의 사의표명 전문-내가 사직하려는 이유> Ⅰ 또 한번 경솔한 결정을 하려 한다.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어리석음과 미숙함까지 더해져 매번 경솔하지만 신중과 진중을 강조해 온 선배들이 화려한 수사 속에 사실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기억이 많아 경솔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억지로 들릴 수는 있으나, 나에게는 경솔할 수 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 상당 기간의 의견 조율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본연의 고유업무에 관하여 총장을 전혀 보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는게 맞다. 둘째, 본인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게 낫다. 셋째,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왔으니까 이쁘게 봐줘'라고 해야 인간적으로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 Ⅱ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속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딸이 'Enemy of State'의 윌 스미스처럼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미련은 없다. 후회도 없을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난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어나갈 것이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기자
2013-09-14 17:17:17'혼외 아들' 의혹을 받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김윤상(44·사법연수원 24기) 대검찰청 감찰1과장이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부당한 감찰 압박을 비판하며 14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 과장은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내가 사직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김 과장은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며 법무부의 감찰 결정을 비난했다. 대검에서 감찰 업무를 담당한 그는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 상당 기간 의견 조율이 선행된다"면서 "그러나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 착수 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본연의 고유 업무에 관해 총장을 보필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김 과장은 "차라리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며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물러난다"고 덧붙였다. 서울 출신으로 대원외국어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김 과장은 1998년 수원지검 검사로 임관해 법무부 법무심의실 검사, 서울중앙지검 검사, 법무부 상사법무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을 거쳐 대검 감찰1과장으로 보임됐다. onnews@fnnews.com 온라인뉴스팀
2013-09-14 15:36:58비제이 싱은 무명 시절의 오점이 있다. 부정행위를 했다는 얘기다. 피지 출신인 싱은 이름으로 보아 인도계이자 시크교도의 후예인 것 같다. 과거 영국은 많은 인도인들을 피지 개발을 위해 이주시켰다. 그러나 사소한 실수나 인간성의 편린만 가지고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조건’의 작가 앙드레 말로는 젊은 시절 앙코르와트 사원을 뒤적거리다 도굴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다. 말로는 몰락 부르주아 가문의 출신으로 고고학 전공자였다. 작품 소재를 위해서였는지, 고고학적 관심 때문이었는지, 돈벌이를 위해서였는지, 혹은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범법을 행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드골 정권 때 문화부 장관을 지낸 그는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문화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도굴범과 문화 장관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나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인간의 역할은 달랐던 것이다. 쉰들러리스트로 영화화된 유태인의 구세주 오스카 쉰들러는 주방 기구를 군납하는 장사꾼이었다. 그는 독일군 고위층에 뇌물을 뿌려 자기 공장의 유태인들을 구했다.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암거래의 명수였다. 그리고 그는 바람둥이였다. 그의 부인은 “정부(情婦)가 한명이면 질투라도 하겠지만 100명의 여자를 일일이 질투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라고 푸념했다. 닉슨 대통령은 불세출의 전략가였다. 소련과 대립한 중공을 유인해서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펼친 현대판 제갈량이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때문인지 인간 닉슨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역사가 대니얼 쇼는 “위대한 비전을 가졌지만 모사꾼”이라고 비평했고, 연설문 담당자였던 윌리엄 사파이어는 “7층짜리 케이크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했다”고 회고했다. 쉰들러나 닉슨이나 가치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가치 혼돈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공도 했고 실패도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명나라의 여곤(呂坤)은 “난국에는 파탄자를 쓰는 것이 인사 원칙”이라고 극언을 한 것 같다. /김철대표이사(뉴서울CC)
2005-05-10 13:04:04침팬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호기심과 모욕감이 뒤섞여 있다. 먼 옛날 우리와 조상이 같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침팬지는 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반면 흉한 털북숭이 몰골에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성행위를 일삼는 이따위 동물을 만물의 영장(靈長)과 비교하는 데는 수치심을 느낀다. 싫든 좋든 침팬지는 사람과 아주 가까운 동물이다. 둘 다 영장류에서 유인원(類人猿)으로 분류된다. 유인원 중에서도 사람은 고릴라?오랑우탄?보노보?침팬지와 함께 대형 유인원에 속한다.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은 오래 전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에서 침팬지가 도구(나뭇가지)를 써서 개미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달은 또 침팬지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두 패로 나뉜 곰베의 침팬지들은 땅을 놓고 한쪽이 사실상 전멸할 때까지 죽고 죽이는 4년 전쟁을 치렀다. 도구를 쓰거나 집단끼리 전쟁을 벌인다는 점만을 놓고 침팬지가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단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싶다. 그러나 침팬지가 고도의 정치행위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란스 드 발이 쓴 ‘침팬지 폴리틱스’는 그런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린다. 드 발은 1970년대 중반부터 6년 동안 네덜란드 아넴에 있는 대규모 침팬지 사육장을 관찰했다. 결론은 이렇다. 침팬지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적 또는 동료와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때로는 피비린내나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관찰 초기 아넴 사육장은 수놈 침팬지 이에론의 통치 아래 있었다. 다른 수놈들과 암놈들은 이에론 앞에서 ‘인사’를 잊지 않았다. 헐떡이는 것처럼 짧고 빠르게 ‘아하아하’ 소리를 내면서 연신 절을 하는 게 침팬지식 인사법이다. 상대방이 굽신거리는 동안 1인자 이에론은 거드름을 피우며 왕처럼 인사를 받는다. 이에론에게 털을 곧추세우고 도전장을 내민 건 또다른 수놈 루이트였다. 혼자가 아니라 니키(수놈)와 연합전선을 폈다. 판세를 지켜보던 암놈들도 슬슬 루이트 쪽으로 옮겨붙었다. 권력투쟁은 이에론이 루이트와 니키에게 인사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서열은 루이트-니키-이에론 순으로 바뀌었다. 권력을 쥔 루이트는 뜻밖에 니키가 아니라 앙숙이던 이에론과 손을 잡았다. 니키로서는 ‘팽’을 당한 셈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루이트가 바라는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니키는 이에론과 반(反) 루이트 연합전선을 짰다. 결국 루이트가 손가락과 다리 한쪽에 상처를 입는 한바탕 싸움 끝에 권력은 니키에게 넘어갔다. 서열은 니키-이에론-루이트 순이 됐다. 표면상 권력은 니키가 잡았지만 교활한 이에론은 막후 실력자로 위세를 떨쳤다. 인사를 받는 빈도도 니키를 앞섰다. 드 발은 “니키는 때로 이름만 두목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경험 많고 교활한 이에론이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침팬지 정치판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이에론은 암놈과 교미하는 걸 니키가 방해하자 즉각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그 틈을 비집고 루이트가 다시 1인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루이트의 재집권은 ‘10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이에론과 니키가 다시 힘을 합쳐 루이트를 죽도록 두들겨팼기 때문이다. 고환까지 잘린 루이트는 결국 수술대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루이트가 죽자 젊은 수놈 댄디가 두각을 나타냈다. ‘킹 메이커’ 이에론은 잽싸게 댄디와 반 니키 연합을 형성했다. 기세에 눌린 니키는 도랑으로 도망치다가 그만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침팬지 정치와 휴먼 정치의 차이라면 침팬지들은 권력을 향한 ‘천박한’ 자신의 동기를 아주 뻔뻔스럽게 알린다는 점이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의도를 은폐하는 데 달인이기 때문에 개인적 야망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쓴다. ‘천박한’ 권력욕을 뻔뻔스럽게 드러내 인간을 침팬지 수준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바로 마키아벨리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인간 존엄성을 모욕한 모사꾼으로 욕을 먹는다. 바라건대 17대 국회에는 진심으로 마키아벨리를 꾸짖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한발 더 나아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相生)의 정치, 참된 휴먼 정치로 침팬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2004-04-22 11:05:24경상도 말도 아니고 서울말도 아닌 묘한 말씨였다. 대박이 그제사 녀석을 자세히 보니 뱁새눈에다 볼이 쏘옥 들어간 게 모사꾼이라 별명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형씨가 맘에 들어 갈키주는데 탕에 들어가면 재빨리 사타구니와 머리에 비누를 칠하고 샤워를 하시오. 안 그라마 비누거품이 채 씻겨나가기도 전에 밖으로 나와야 할끼요. 빌빌거리며 다 씻고 나오려다가는 몽둥이 찜질이오.” 목욕탕은 40여명 정도가 들어갈만 했으나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기였다. 요령 있는 작자들은 모사꾼의 말처럼 비누에다 물을 먼저 묻힌 다음 사타구니와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재빨리 샤워를 했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은 비누거품도 씻어내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대박도 들은 바가 있는 터라 몸에 묻은 비누거품은 겨우 정리하고 나왔다. 목욕을 끝내고 나니 어쨌든 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대충 정리가 되자 교도관이 한 사람씩 불렀다. 그리곤 팔뚝에다가 매직으로 방 번호를 써주었다. 그리곤 플라스틱 그릇 두 개와 수저를 지급했다. 복대박이 그걸 들고 있자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처량하다 못해 눈물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이것들이? 앉아!” 어영부영하고 있는데 교도관이 소리친다. 모두들 엉겁결에 앉았다. “너 퍼지고 앉은 놈 이리 나와.” 앉으라는 소리에 방석 위에 앉듯 퍼지르고 앉던 사내가 불려나가 몇방 맞고 돌아왔다. “앞으로 동작을 정지할 때는 무조건 쭈그려 앉는다. 아시겠습니까?” “예에….” “복창소리 보소. 사흘에 피죽 한 그릇 못먹었나? 아시겠습니까?” “예!” 모두들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고함을 질렀다. “좋습니다. 그런 지금부터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갑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일렬종대로 따르기 바랍니다.” 모두들 교도관의 뒤를 따랐다. 사방으로 주욱 걸어가다가 한 사람씩 입방시켰다. /주다운 글, 이여운 그림
2004-04-12 11:02:33